통합방송법 개정과 관련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방송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 재벌에 대한 방송 불하 논리가 국민들의 지지를 전혀 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정부가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지도는 비교적 낮은 편(34.2%)이었으나 방송법 개정 방향을 묻는 질문엔 응답자의 63.4%가 공영체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정부가 방송개혁 국민회의 등 시민단체와 방송사 노조의 한결같은 반대, 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내의 이견 및 여권 일각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방송법안을 강행처리 하려는 것이 국민들의 눈에 잘못된 것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또 재벌들의 방송사업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부정적인 것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71.9%라는 높은 비율의 ‘반대’의견이 담겨 있다. 이 역시 정부가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미명아래 공공의 재산인 방송을 재벌에게 건네준다는 사실에 대다수 국민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재벌들이 특히 최근의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 수사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권력과 야합하는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고 있어 정부의 입지를 더욱 옹색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여론 외에도 각종 인허가와 관련한 공보처의 ‘독점’에 가까운 권한이 명문화된 관련법 조항들은 정부 내에서도 상당한 반발을 사고 있다. 정보통신부마저 통합방송법 제정 과정에서 공보처의 방송업무 간섭이 ‘정부조직법’에 규정된 공보처의 직무를 넘어서는 ‘월권행위’라는 의견을 강력히 제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통부가 공보처에 전달한 것으로 밝혀진 ‘공보처 방송법안의 문제점과 대책검토’라는 문건에 의해 최근 밝혀진 이같은 정부내 이견은 공보처의 입지를 더욱 좁혀놓고 있다.

11월21일에는 민자당 문공위 간사 박종웅 의원이 방노위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재벌에 대한 전 국민적인 지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 법안을 갑작스럽게 국회에 상정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여권 일각에서도 이견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해주기도 했다. 11월16일 공동파업을 결정한 방노위 소속 4개 방송사 노동조합은 12월5일부터 일제히 파업찬반투표에 돌입한다. 정부 여당이 방송법안을 강행 처리하고자 할 경우 이들 방송노조들과 극한 대립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공보처가 강행처리라는 ‘무리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계속될 선거국면 등과 관련, 권력핵심부의 이해와 맞물려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한 것이다. 공보처의 입장은 현재로서는 ‘강행처리’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을 듯한 태도이다.

국민적인 여론을 묵살하기에는 그러나 정부로서도 많은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당장 방송사들의 연대파업도 ‘발등의 불’이지만 이같은 방송법 저지투쟁이 국민적인 저항국면으로 까지 비화될 소지도 적지 않아 공보처가 과연 ‘강경입장’만을 고수할 것인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정국의 경색까지도 예견되는 상황에서 여론의 지지없이 강경책으로 일관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도 ‘한계’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