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 지시에 대한 보도는 마치 우리 언론이 갑자기 ‘순진무구’해진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란 지적이 많다. 어떤 사건, 특히 정치적 사건을 보도할 경우 겉으로 드러나 사실보다 그 이면의 속셈과 함수관계를 더 중요시하던 우리 언론의 태도가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의 말이면 곧이 곧대로 믿고 따르는 순진한 태도로 돌변한 것이다.

김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 지시 하루 전인 11월23일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5·18불기소 처분 취소 결정을 먼저 내렸다는 사실을 보도한 25∼27일자 언론의 보도태도가 대표적이다.25일 방송 뉴스들은 헌법재판소가 23일 이미 ‘불기소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는 내용만을 단순 전달하는 것이었다. 23일 헌재의 결정과 24일 김대통령의 돌연한 특별법 제정 지시 사이에서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는 관련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26일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27일자 한국일보 또한 “김대통령의 지시로 헌재의 독자적인 결정이 빛을 바래게 돼 헌재 관계자들이 아쉬워 하고 있다”는 스케치 기사와 함께 “헌재가 불기소 처분에 대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린 마당에 그걸 기다리지 않고 정치적으로 앞질러 특별법 제정을 내린 게 온당하느냐”고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26일자 한겨레신문 1면 머릿기사는 김대통령의 지시가 헌재의 결정이 이뤄진 다음날인 점에 유의해 “헌재가 이런 결정을 내린 사실을 김대통령이 파악하고서 5·18 피고소·고발인들에 대한 처벌을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아무런 법률적 준비없이 특별법 제정지시를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전면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다른 언론들과 대조를 보였다

한겨레는 그 근거로 “청와대가 그동안 일관되게 특별법 제정요구에 난색을 표했다”는 점과 “청와대의 치밀한 정보 수집력에 비추어 볼 때 헌재의 결정내용을 몰랐을 리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같으날 경향신문은 <‘5·18특별법’ YS와 헌법재판소 ‘위헌결정’미리 알았을까>기사에서 김대통령의 사전인지설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또 같은 날자 조선일보는 “(김대통령의 발표가)특별입법 선언이 헌재의 결정에 끌려가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 급히 이뤄졌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물론 김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일일이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까지 불기소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을 이끌어낸 5·18불기소의 일등공신 김도언 전 검찰총장을 민자당 부산 금정을지구당 위원장으로 임명했던 사례에 비춰보더라도 김대통령의 갑작스런 태도변화는 정치적 결단과는 무관하게 정치인으로서의 ‘일관성문제’를 제기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정치인의 입장이 갑작스레 1백80도 선회한 데는 필시 까닭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기조차 하다. 일부 언론들은 이같은 상식적인 문제제기 조차 철저하게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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