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후원하는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된 넥슨 성우 교체 사건 이후 논란을 일으킨 ‘남성 혐오’와 ‘미러링(대항 표현)’을 ‘혐오 표현(hate speech)’이라고 볼 수 있을까.

‘혐오 표현’에 대한 국제사회와 시민사회·학계의 논의를 연구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에 따르면 ‘혐오’는 일시적이고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소수자 집단에 대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관념이나 감정을 뜻한다. 예컨대 인종주의,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자민족중심주의, 반유대주의, 백인우월주의, 성차별주의 등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3일과 24일 언론중재위원회가 ‘사이버공론장에서의 혐오와 모욕표현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 발제자로 참석한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은 소수자(집단)에 대한 차별과 구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혐오 감정과 구분되며, 부정적 의견 표시부터 소수자를 모욕·조롱·위협하는 것,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대·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고취·선동하는 것 등이 혐오 표현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메갈리아 논란에 비춰볼 때 ‘여성 혐오’는 혐오 표현이 될 수 있지만 ‘남성 혐오’는 혐오 표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홍 교수는 또 “혐오 표현은 표적 집단인 소수자를 향한 공격이기도 하지만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면서 “혐오 표현은 선동(incitement)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서 일반 청중들을 향해 ‘소수자를 차별하라’고 하고 실제로 그런 결과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자연 성우는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고 자신의 트위터에 인증했다. 이후 넥슨은 김자연 성우의 게임 내 목소리를 삭제하고 성우를 교체했다.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노동자가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내보였다고해서 노동환경에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논평을 발표했다. 정의당은 당내 논란이 일자 당차원에서 이 논평을 철회했다. 사진=김자연 성우 트위터
토론자로 나온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메갈리아로 대변되는 남성 혐오의 표현들은 일베가 대변하는 혐오 표현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메갈리아 게시물들이 남성을 혐오하는 감정을 표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남성을 소수자 집단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hate speech’를 지칭하는 혐오 표현의 개념에서는 주류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백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 불가능한 것처럼, ‘남성에 대한 혐오표현’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혐오 표현’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공격적 발언이라고 해서 모두 혐오 표현으로 보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일례로 성차별적인 모든 발언(sexist remarks)을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misogyny)으로 규정하고 규제를 시작한다면, 너무나도 넓은 범위의 표현들을 금지하게 돼 오히려 실제로 금지할 필요가 있는 표현들을 적절히 규제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지난 6월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들이 유럽에서 ‘혐오표현 확산 금지를 위한 행동강령’을 제정한 것처럼 이러한 자율규제가 국가에 의한 형벌 규정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혐오 표현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온 소수자 집단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발언에만 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모욕과 의견표현 자유의 한계’를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 두 번째 세션에서는 모욕적인 언사가 담긴 의견표현이라도 공인이나 공적 사안에 관련된 것일 경우 더욱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선희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언론중재위 서울제5중재부장)는 “모욕적 표현이 담긴 소셜미디어 글이나 댓글이 ‘사회상규’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서 판단하며 의견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면 비평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 판사는 “충분한 기본적 사실관계가 전제돼 있으면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의견표현으로서 존중된다”며 “모욕적 표현이 담긴 글을 쓰게 된 동기와 경위가 어떠한지 고려하고, 특히 공인이나 공적 사안에 관련된 것일 경우 의견표현으로 더욱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3년 형법상의 모욕죄가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이라며 청구된 헌법소원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결정문의 반대 의견을 보면 헌법상 보호받아야 할 표현으로 ‘상대방의 인격을 허물어뜨릴 정도로 모멸감을 주는 혐오스러운 욕설’ 외에 △현실 세태를 빗대어 우스꽝스럽게 비판하는 풍자·해학을 담은 문학적 표현 △부정적인 내용이지만 정중한 표현으로 비꼬아서 하는 말 △인터넷상 널리 쓰이는 다소 거친 신조어 등이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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