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이철성 후보자를 신임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청와대는 24일 경찰청장에 이 후보자를 공식 임명했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4시 취임할 예정이다.

이 후보자는 음주운전을 하고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이 드러나면서 자격에 문제가 제기됐고 야당의 반대로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다.

야당은 공직자로서 이 후보자에게 낙제점을 준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공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이 후보자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발탁한 인사다.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우 수석의 인사라는 점에서 부실검증 잣대도 엄격했다. 이런 가운데 음주운전 신분 은폐 사실이 터져 나왔다. 사퇴 요구가 거셀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박 대통령이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 것도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돼 있는 인사이기 때문에 야권의 공세에 밀리면 안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가 낙마하게 되면 우병우 수석의 인사 검증 실패를 시인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 수석의 사퇴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이철성 후보자는 발탁 때부터 우병우 민정수석과 공동운명체였던 셈이다.

1993년 11월 22일 이 후보자는 강원지방경찰청 상황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점심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경기도 남양주 별내면 도로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켰다. 이 후보자는 중앙선을 침범해 차량 2대를 들이박았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09%로 나왔고, 약식 기소돼 벌금 100만원을 처벌받았다.

문제는 이 후보자가 사고 당시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사고 당시 부끄러워 신분을 밝히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징계 받은 기록이 없다"고 털어놨다.

공무원이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면 엄한 처벌이 이뤄지는 게 상식이다. 신분을 숨기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이지만, 신분을 감추면서 결과적으로 문제 없이 승진을 경찰청장 후보자가 된 것이다.

야당은 이 후보자의 해명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이상한 대목이 많다. 피해차량은 2대로, 700만원이 넘는 피해액이 발생했다. 경찰청은 봉고차의 뒷부분을 박은 뒤 속도가 줄어 2차로 승용차를 박았다고 설명했지만 차량의 피해액만 보면 상당한 충격이 있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경찰은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액면 그대로 해명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제보 내용이 있다고 밝히면서 임명 후에도 논란이 일 수 있음을 예고했다.

법원의 기록과 보험사 기록의 사고 장소가 다른 것도 미스터리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의정부지법 약식 명령서에는 이 후보자가 미금시 금곡동 산 32번지 앞길에서 엑셀 승용차를 운전해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보험사 사고 기록에는 법원의 기록상 사고 장소와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남양주군 별내면 부근 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명시돼 있다. 행정구역 표기 오기일 가능성도 있지만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음주운전측정 장소와 사고 장소가 다를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이다.

우병우 민정수석도 이 후보자의 음주운전 경력은 물론 신분을 은폐한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부실검증 논란도 커졌다.

지난 7월 이 후보자는 민정수석실에 음주운전 및 신분은폐 여부를 체크하는 고위 공직 후보자 사전 질문서에 모두 '예'라고 표시해 제출했다. 하지만 8월 2일 민정수석실은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신분 은폐 사실을 누락하고, 약식 기소로 음주운전 1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사실만 기재했다. 신분 은폐 문제가 논란이 될 것임을 뻔히 알고도 국회에 제출한 임명동의안에는 관련 내용을 숨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가 청문 보고서를 송부하지 못할 경우 대통령은 10일 이내 범위에서 기간을 정해 보고서 송부를 다시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임명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발빠르게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면서 야권의 반발도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안전행정위원은 임명 강행 소식을 접한 직후 공동 성명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많은 허물을 덮어주면서까지 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청장을 대통령의 입맛에 따라 임명 강행한 것을 우리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고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들은 "경찰청장 후보자의 이런 수많은 의혹에 대해 청와대 인사검증을 담당한 민정수석은 검증과정에서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문제 수석의 문제 인사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고 비난했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연결짓지 않더라도 음주운전을 하고 신분을 은폐한 것이 드러나면서 경찰 조직의 공직 기강을 세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당장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파면을 당한 하위직 경찰관들의 부당하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음주운전을 하고 사고를 내 파면 당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지난 3월 부산에서 A 경위는 음주운전을 하고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79%. 경찰은 A경위가 과거에도 음주운전 경력이 있어 파면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에 따른 애도 분위기 속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냈다며 경찰은 한모 경사에 대해 파면 결정을 내렸다.

특히 지난해 11월 인사혁신처는 다양한 공무원 징계 사례를 묶어 비위유형별 징계 사례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이 후보자의 음주운전 후 신분 은폐와 비슷한 사례도 거론돼 있다.

사례집에 따르면 공무원 A는 약 100km를 혈중알코올농도 0.132%의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다가 적발돼 면허취소 및 벌금 300만 원의 구약식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A는 공무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정부의 신분 은폐 의혹 음주운전 공무원 조치계획에 따라 발각돼 징계를 받았다.

인사혁신처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음주운전 사실이 나중에 밝혀져 징계처분이 늦어지면 승진임용 제한기간이나 승급제한 등 인사상 불이익 효과 및 말소제한 기간에 대한 기산일도 늦어지게 됨, 음주운전 적발 후 공무원 신분을 은폐했으나 나중에 음주운전한 사실이 밝혀져 징계를 받게 되면 오히려 더 손해가 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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