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우병우 민정수석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배후에 야당이 있다는 근거없는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여권 내 갈등을 여야 갈등으로 치환하려는 ‘물타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2일 MBN은 “이석수-조응천 인연 ‘눈길’”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김주하 MBN 앵커는 “이석수 특별감찰관 뒤에 조응천 더민주 의원이 있다는 배후설이 불거졌다. 과거 박 대통령 비서관으로 있다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청와대로부터 국기문란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만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MBN 리포트는 “일부 매체에서 (이 감찰관 배후로)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을 지목했다”며 “이 감찰관이 조 의원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감찰 내용을 외부에 흘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서울법대 81학번 동기, 사법연수원 18기로 검찰 재직 시절 동고동락했다”고 전했다.

▲ 22일자 MBN 리포트 갈무리
MBN이 언급한 보수매체는 뉴데일리, 미디어펜 등이다. 뉴데일리는 지난 19일 기사에서 “이번 사건을 두고 정치권에선 ‘특별감찰관이 이 기회에 이름을 날려 야당 공천 받으려 하는지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만약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기밀(機密) 누설 배후에 야당이 있다면, 쉽사리 덮을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뉴데일리는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대 법대 81학번,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라며 조 의원이 이 수석의 배후인 것처럼 언급한다. 기사 부제도 “‘이석수 일병 구하기’ 野 작전 돌입, 알고보니 조응천 친구”다.

미디어펜은 18일 ‘박한명 칼럼’에서 “이 감찰관은 서울대 법대 81학번으로 조응천 의원과 동기”라고 강조했다. 박한명씨는 이 칼럼에서 “필자는 구글을 검색하다 뜻밖에도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학교 같은 학번에 조응천 의원과 이러저러하게 관련이 있는 언론계 저명인사들이 몰려 있다는 점”이라며 “우선 우병우 죽이기에 앞장선 조선일보의 A씨는 서울대 법대 81학번 동기다. 그러니까 조응천-A씨-이석수 모두 서울대 81학번”이라고 밝혔다.

이 감찰관의 배후가 있다는 주장은 청와대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19일 입장문을 통해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어떤 경로로, 누구와 접촉했으며 그 배후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 수석에 대한 첫 의혹 보도가 나온 뒤로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우 수석 의혹에 대해 입증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 19일자 뉴데일리 기사 갈무리
 청와대 관계자가 언급한 ‘일부 기득권 세력’은 연일 우 수석 관련 의혹을 보도하고 있는 조선일보를 지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은 건 ‘좌파세력’이다. 몇몇 매체를 통해 이 ‘좌파세력’이 야권, 나아가 조응천 의원으로 지칭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조 의원이 배후라는 근거는 ‘서울법대 81학번 동기, 사법연수원 18기’라는 것 뿐이다. 당사자인 조 의원은 22일 CBS 김현정의뉴스쇼 인터뷰에서 “도대체 야당 의원이 어떻게 특별감찰관의 배후가 될 수 있겠나. 좀 상상력이 과한 것 아니겠나”라고 반박했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더민주 의원 역시 23일 TBS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 인터뷰에서 “(이석수 감찰관은) 공안검사출신이고 청와대에 본인이 지원을 해서 특별감찰관으로 갔다. 그동안 해온 일이나 이런 것을 봤을 때 다른 데도 물론이고 야당하고 어떻게 연락을 하거나 짜서 청와대를 공격한다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려운 분”이라며 “최소한 근거를 제시해야지 아무런 근거 없이 ‘야당하고 이렇게 짰을 것이다’라는 것은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아는 사람이라면 웃음이 나올 정도의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금 의원이 말한대로 이 감찰관은 야권과 연계했다고 보기 어려운 성향의 인물이다. 이석수 감찰관은 3명의 감찰관 후보 중 새누리당이 추천한 인물이다. 2015년 3월 당시 새누리당은 검사 출신의 이석수 변호사를, 새정치민주연합은 부장검사 출신의 임수빈 변호사(연수원 19기), 여야 합의로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를 역임한 이광수 변호사(연수원 17기)를 추천했다. 새누리당은 정연복 변호사를 추천했다가 막판에 이석수 변호사로 후보를 교체했다.

2015년 3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 세 명 중 이석수 후보를 감찰관으로 발탁했다.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이석수 변호사는 감찰업무의 전문성과 수사경험을 두루 갖추는 등 최초로 시행되는 특별감찰관의 적임으로 판단했다”고 발탁 이유를 밝혔다.

이석수 감찰관의 발탁에 우병우 수석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석수 감찰관이 당시 민정비서관이던 우병우 수석의 서울대 법대 3년 선배였고, 1990년대 초반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근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감찰 관련 직무상 기밀누설 의혹을 받고 있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특별감찰관 사무실로 출근 중에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이런 이유로 지난해 3월24일 열린 이석수 감찰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민정수석의 비위가 포착된다면 제대로 감찰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감찰관은 청문회에서 “민정수석의 명백한 비위행위가 포착된다면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이 감찰관은 청문회에서 밝힌대로 우 수석에 대해 감찰을 맡았고 “이 수석이 적임자”라던 청와대의 입장은 “국기를 흔들었다”로 바꾸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추천하고 검증한 이석수 감찰관이 우 수석의 비리에 대해 감찰하자 ‘좌파세력’에 동조한 인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 감찰관의 배후에 대한 각종 음모론에는 여권 내부의 균열 양상을 여야 간 정쟁으로 치환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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