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아오지 탄광이 있다면 남한엔 상하차가 있다. 온라인 검색창에 ‘상하차’를 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웃픈’ 소리다. 혹독한 노동강도로 유명한 상하차 작업은 대부분의 노동자가 일용직으로 고용돼 있고, 근로기준법이 묵살되는 노동법 사각지대로도 알려져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8일 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작업을 체험했다.

문자 한 통에 바로 구직… 상호는 대기업, 고용은 파견업체에

“9만~10만 당일 지급 / 택배상하차 / 야간 / 용인 XX 물류센터” 알바몬에 올라온 상하차 일용직 구인 기간은 모두 ‘상시모집’이다. 알바몬에서 확인된 인력 파견 업체 수만 13개, 한 업체를 골라 ‘여잔데 내일 가능한가요’ 문자를 넣었다. 곧 담당자가 전화해 신분증을 지참할 것과 출근버스 정류장을 고지했다. 구직은 문자 혹은 전화 한 통이면 끝난다.

▲ 대기하던 상하차 일용직노동자들이 상봉역 인근 정류장에서 출근버스를 타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18일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봉역 정류장엔 오후 5시부터 사람이 모였다. 출근 버스가 출발할 오후 5시30분이 되니 40~50명이 인도에서 서성였다. 1시간 여를 달려 물류센터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런 버스만 최소 9대다. 서울에서는 상봉, 구로디지털단지, 사당 등에서 일용직 노동자를 가득 싣는다. 동인천, 수원, 오산에서도 버스가 출발한다.

물류센터엔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 상호가 걸려있다. 그러나 택배물류 상하차 작업은 센터관리를 도급 위탁한 ‘2차 밴더’ 업체가 맡는다. 일용직 인력 파견은 다수의 ‘3차 밴더’가 한다. 2층 도급파트너사에서 지문을 등록하고 3차 업체와 일용직 고용계약서를 썼다. 관리자는 물량이 적은 목요일은 오후 7시30분부터 익일 오전 6시30분까지 기본급 7만 원, 연장근로시 시급 8000원이 책정된다고 고지했다. 상하차 작업에서 제외되는 여성은 5000원 적게 받는다. 두 달 전 등록해 일을 시작한 A씨는 “고용계약서 안 쓰는 경우도 많은데 신기한 일”이라고 말했다.

“어제 헬이었어.” “살아있었네.” “죽는 줄 알았는데 내일만 나오면 만근이다.” 작업 개시를 기다리던 상하차 작업자들이 전날 잔업으로 오전 9시30분까지 일했다며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주말과 월요일 광복절 연휴 동안 물량이 쌓여 화요일, 수요일 이틀 간 14~15시간 작업을 한 것이다. 주 5일 출근할 시 지급되는 만근 수당은 4만~4만5천원이다.

▲ 물류센터 내부 모습.

20분 만에 옷이 땀에 절고 팔 다리 검게 변해… 잠시 앉아서 쉴 여유도 없어

“넌 대전서로 가.” 이날 ‘대전서’(대전으로 가는 상차 트럭 라인) 상차라인팀은 총 3명이었다. 화물차 내 상차를 맡은 50대 노동자 B씨는 5년 근속의 베테랑이었고 일한지 6개월 됐다는 50대 노동자 C씨도 상차를 맡았다. C씨는 “또 경험없는 여자를 보냈냐”고 불평했다.

미숙련 여성은 대부분 ‘스캔’을 맡는다. 상차되는 물류 바코드를 스캐너로 읽는 일이다. 물류센터는 하나의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다. 내부는 물류를 운송하는 트레일러로 가득 차 있다. ‘하차’된 물류는 배송지를 향하는 화물트럭에 ‘상차’될 때까지 수차례 분류 작업을 거치며 쉬지 않고 트레일러를 돈다. 스캔 작업자는 마지막 분류를 마친 물류가 수동 트레일러로 전달되는 동안 떨어지지 않게 중앙 정렬하고 지역 코드번호가 잘못 찍힌 물류를 가려내는 일도 맡는다. 일은 알아서 보고 배워야 한다.

작업한 지 20분도 지나지 않아 온몸이 땀에 젖었다. 이동량은 많고 냉방시설은 없다. 저녁 8시를 향하면서는 주변의 모든 작업자들의 머리가 땀에 흠뻑 젖었다. 옆 라인의 한 상차 작업자 머리카락에서 땀방울이 연신 뚝뚝 떨어졌다. 작업자 대부분이 남성이고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반바지만 입고 일을 한다. 목장갑으로 땀을 닦는데 장갑에 검은 때가 묻어 나온다. 내부에 먼지가 많아 얼굴, 팔, 다리가 때가 낀 것처럼 검게 변했다.

▲ 상차 라인. 좌측 붉은색 기구가 물류를 옮기는 수동 트레일러다. 화물차 내부까지 깊숙이 연결된다. 사진=손가영 기자

물량이 쉬지 않고 들어오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볼 여유도 없었다. 3시간 쯤 지났나 싶어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밤 11시50분까지 휴식은 없었다. 15m 가량 되는 대전서 라인 트레일러를 쉬지 않고 오가며 바코드를 찍었다.

“이 정도로 힘들어하냐. 월, 화는 한가하게 걸을 시간도 없다. 물건이 미어터져서 화물차에 그냥 던져버려야 할 정돈데.” 주말 물량이 쏟아지는 월요일은 잔업시간이 평소보다 2~3시간 길고 기본급도 1만~2만원 더 비싸다. C씨는 많을 땐 하차 차량이 270개고 물량 적은 날은 240~250개 차량이 하차한다고 말했다. 월요일엔 6000여 개 이상 택배를 상차하고 목요일엔 4000~5000여 개 수준이다. 월요일엔 어깨와 허리 통증도 더 심하다고 말했다.

쌀가마니 수백개 몰리면 다음 날 몸져 누워… 매일 중도 하차자 생긴다

트레일러는 0시부터 0시35분까지 멈춘다. 공식적인 휴식시간이다. 옆 건물 식당에서 야참을 먹는다. 김치, 감자샐러드, 계란말이, 된장국, 밥 등 오찬이다. 대부분이 밥이 국 칸으로 넘어 갈 정도로 많은 밥을 받았다. C씨는 10분 만에 밥을 먹고 일어났다.

담배를 피우거나 화장실을 가는 게 휴식시간이다. 대부분 물량이 조금 천천히 올 때 쯤 화물차 뒤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 분을 쉰다. 팀 내 연장자가 “담배 피우고 와라” “화장실을 다녀 와라”고 일부러 지시하기도 한다. C씨도 이날 3번 잠시 쉬고 오라고 지시했다.

상차와 하차 모두 허리를 굽혀 무거운 짐을 드는 작업으로 체력 소진이 크다. C씨는 가장 힘들 때가 물이나 쌀이 한꺼번에 몰릴 때라고 했다. 2L 생수가 6개 묶인 택배는 무게가 최소 12kg이다. 이것이 수십, 수백개가 쌓였을 때 몸에 무리가 가 통증이 커진다는 것이다. 13번 정도 상하차 작업을 나온 D씨는 상차는 지역 별로 분류가 돼서 개수가 분산되지만 하차의 경우 수백개를 한꺼번에 내려야 하니 그 통증이 상당하다며 그래서 중도 포기하는 일용직들이 매일 있다고 말했다. 이 날도 한 3차 업체 관리자가 “2명이 도망갔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3~4시 경에 생수 택배 수십개가 한꺼번에 몰려와 몸이 바빴다. 물류를 잘못 정렬해 물을 쏟아 혼이 난 적이 있어서 트레일러에서 추락하지 않게 일일이 정렬을 맞춘다고 왼쪽 팔에 무리가 왔다. D씨는 한계 시간이 새벽 4시 경이라고 말했다. 긴장이 풀려 졸음이 쏟아지거나 누적된 피로가 몰려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벽 4~5시 사이에 다리가 욱신 거리고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화물차 3개를 채워 보냈던 시점이었다. 화물차 1칸에 1000~1300개 물류가 들어간다.

긴장이 풀려 수동 트레일러의 롤러를 손으로 굴리고 있는 것을 보고 C씨가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소리쳤다. 그는 그렇게 손을 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자동 트레일러는 손이 바로 기계에 휘말려서 더 크게 다친다고 경고했다. 알바몬 구인광고 후생복지란엔 고용보험, 산재보험 가입이 적혀있다. 이 산재보험 가입 여부는 어떻게 될까. B씨는 “그런 거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상하차 라인에 주차돼있는 화물차. 모든 짐이 하차되거나 상차되면 배송지로 이동한다. 사진=손가영 기자

컨베이어 속도가 휴식보다 중요하다

작업은 새벽 6시30분 경에 마쳤다. 화물차 네 대를 꽉 채워 대전서 지역으로 보냈다. 물량이 적은 날엔 오전 5시30분을 넘길 즈음 운반되는 물류가 확연히 준다. D씨는 노동시간 11시간, 물량 5000여 개 이하를 처리하는 날은 노동강도가 매우 낮은 날이라고 말했다.

6시46분 퇴근등록지로 가 지문을 찍었다. 이날 화장실을 간 횟수는 1번이다. 그것도 지시를 내리던 C씨가 쉬고 오라고 해 일부러 라인을 비웠던 때다. D씨는 상하차 작업은 땀을 그만큼 흘려서 용변이 마려울 때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등록한 20대 여성 노동자 E씨는 영양사로 일하고 있는데 월급이 낮아 가끔씩 파견근로를 뛴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인력사무소를 통했는데 연락 즉시 구직을 할 수 있는 물류센터로 바꿨다고 말했다. 등록금을 버는 대학생, 생활비를 벌러 온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업체 관계자는 “일하는 사람들 80%가 신용불량자”라고 말했다.

▲ 퇴근 후 물류센터 주차장에서 퇴근 버스를 기다리는 상하차 작업자들. 사진=손가영 기자

“업무 강도에도 인권 필요하지 않나”

19일 오전 11시경 7만7000원이 입금됐다. 11시간을 일한 값이었다. 퇴근 버스는 오전 7시20분 물류센터를 출발해 8시30분 경 상봉역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 근무날이 월요일이었다면 오전 9시 경에 퇴근해 오전 11시 쯤 귀가했을 것이다. 만근 수당을 받는 일용직들은 5시 출근버스를 타기 위해 11시에 잠들어 오후 4시에 일어날 것이다. 5시간 취침 후 상하차 야간 노동을 하는 생활을 일주일에 다섯 번 반복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등록된 물류창고는 전국에 4174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수천명의 노동자가 파견업체를 통한 일용직으로 택배를 옮긴다. 근로조건이 더 나아지는게 필요치 않냐는 말에 A씨는 “일할 때마다 내가 컨베이어 벨트가 된 느낌이다. 업무 강도에 있어서도 인권을 지키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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