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원영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계모가 게임에 빠져 수천만원을 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유치장에서도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등 반성의 기미나 죄책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지난 3월15일 TV조선 뉴스쇼판 보도다. 언론은 아동이 피해자인 만큼 심혈을 기울여야할 아동학대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본질과 무관하게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온갖 가이드라인과 윤리강령, 준칙에서 관련 보도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23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소통학회와 함께 ‘아동학대사건보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세미나’를 열고 이 같이 밝혔다. 표창원 의원은 “언론 보도는 표면적으로는 아동학대를 방지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고 있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피해자의 처참한 모습, 가해자의 악마 같은 특성을 상품화하고 소비하게 만들면서 시청률, 클릭수를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 원영이 사건을 다루면서 범죄와 무관한 내용을 보도한 지난 3월15일 TV조선 뉴스쇼판 화면 갈무리
정의철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지난 3월8일부터 3월27일까지 ‘원영이 사건’ 보도 모니터링 결과 인권에 둔감한 보도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상파3사와 종합편성채널 메인뉴스 보도의 공통적인 문제는 △인권침해 △선정적 묘사 △자극적 표현 △사생활 폭로 △불필요한 내용 △고정관념 확산 등이다.

‘인권에 둔감한 보도’는 원영이 생전모습 사진을 보여주거나 멍든 사진을 내보낸 보도가 많았다. 특히 채널A는 피해아동의 개인정보가 담긴 상담일지 내용을 지난 3월11일 공개하기도 했다. ‘선정적 묘사’는 ‘락스’ ‘찬물’ ‘구타’ ‘알몸’ 등의 용어와 함께 범죄방법 사진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뻔뻔한’ ‘인면수심’ ‘악마계모’ ‘(피의자가) 끼니를 꼬박꼬박 먹는다’ 등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표현도 많았다. MBC, SBS, 채널A, TV조선은 원영이의 장례식 장면을 내보냈고, TV조선은 화장되기 직전 상황까지 보도하는 등 불필요한 장면도 반복적으로 나왔다.

특히 ‘계모의 악마화’는 고정관념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MBC와 SBS는 3월27일 ‘계모 김씨’등의 표현을 반복했고 3월15일 JTBC는 가해자가 노래방도우미로 일했다는 불필요한 사생활도 언급했다. TV조선은 3월12일 “‘고문같았던 학대’... 계모 욕실 감금에 락스 붓고, 굶겨”와 3월15일 “‘원영이 굶긴 악마계모’ 게임엔 수천만원 쏟아부어”등 계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정의철 교수는 “가정에 불화가 있거나 친부모가 아니라고 해서 범죄로 이어지는 건 아니고, 그들이 게임을 했다는 건 사건 본질과 무관하다”면서 “계모, 계부에 대한 이 같은 보도가 과연 국민의 알권리가 맞는지, 아니면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번 사건이 터지면 관련 보도가 쏟아지는 것도 문제다. 원영이 사건 관련 TV조선 뉴스쇼판은 지난 3월8일부터 20일까지 13일 동안 18건의 보도를 내보냈는데, KBS 뉴스9에 비해 2배가량 많다.

신수경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사업지원팀 변호사는 “피해아동의 신변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사건이 마무리 됐을 때 일회적 단신으로만 보도하고, 후속보도는 예외적인 보도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철 교수는 “BBC는 ‘진전된 팩트가 없을 땐 가급적 재보도를 자제한다’는 내규가 있다”면서 “이는 어느 사안이든 반복적으로 보도되면 해당뉴스의 가치가 과잉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 조치”라고 말했다.

▲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23일 국회에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소통학회와 함께 ‘아동학대사건보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지켜야 할 기준이 없어서 언론이 이 같은 보도를 쏟아내는 건 아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언론은 피해아동, 아동학대 행위자, 고소인 고발인 등의 성명 나이 직업 등을 방송할 수 없다. ‘아동권리헌장’에서도 아동은 “개인적인 생활이 부당하게 공개되지 않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역시 “13세 미만의 어린이는 부모나 기타 보호자 승인 없이 인터뷰나 촬영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규정 역시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기준에 보완할 점으로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피해아동에 대한 인터뷰는 아동에게 피해상황을 떠올리게 하면서 2차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피해아동이 다니는 학교나 기관을 찾아가서 피해아동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도 자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의 신원도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창호 선임연구원은 “아동대상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변인물이나 부모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피해아동에 대한 정보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가장 큰 문제는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잘 지키게 할 것인가”라며 “보도준칙을 어긴 경찰, 언론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언론 역시 범죄예방을 하고, 시스템을 점검해야 하는데 현상을 좇기 바쁘다”고 말했다. 이창호 선임연구원은 ‘저널리즘 교육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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