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의 정치인일까 불통의 정치인일까” 지난 1월27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으로 김종인 대표가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직을 맡았을 때부터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 나온 반응이다. 김종인 대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대변한다. 8월27일 퇴임을 앞둔 김 대표, 그리고 7개월간의 김종인 체제에도 이러한 두 가지 평가가 공존한다.

김종인, 소신과 불통 사이에서

김종인 대표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조부인 가인 김병로를 꼽는다. 따라서 김 대표의 리더십에 조부 김병로의 정치를 따라 배웠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김병로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을 변론하면서 민족 변호사로 명성을 얻었고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이승만 정권과 맞선 것으로 유명하다. 이승만 대통령이 법원 판결을 비난하자 김병로 대법원장은 “억울하면 절차를 밟아 항소하면 될 일”이라고 받아쳤다.

김종인 대표도 경제관료, 경제전문가로서 정권과 각을 세운 경험이 있다. 부가가치세 도입에 반대하며 박정희 대통령과 맞섰고 전두환 정권 때는 국보위에 참여해 부가세 폐지에 반대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지만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버리자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급기야 야당을 선택했다.

소신의 뒷면에는 ‘불통’이 자리 잡고 있다. 김병로는 1960년 총선에서 고향인 순창군에서 민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한다. 선거벽보만 붙이고 선거운동을 안 했기 때문이다. 김병로가 “어떻게 아랫사람들한테 표를 달라고 고개를 숙이나?”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4월 1일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공원을 방문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겸 선대위원장이 김 대표의 조부인 가인 김병로 선생 등 '법조 3성'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포커스뉴스
이런 김병로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손자인 김종인 대표에게 오버랩 된다. 그는 5선의 국회의원이지만, 비례대표만 다섯 번을 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적이 있으나 이해찬 평민당 후보에게 패해 낙선했다. 관료에 이어 비례대표로, 김 대표는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민심이나 여론을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이유도 지지층 여론을 잘 신경 쓰지 않는 모습 때문이었다. 김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 시키자 이런 여론은 폭발했다. 정 의원이 SNS의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최근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유행이어서 마치 SNS에서 소란스러우면 당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엔 당에 질서가 없다. 몇몇 의원이 이러쿵저러쿵한다고 해서 내가 추종하고 따라갈 것 같은가”라고 말했다. 당내 의원들까지 SNS 여론을 전달했지만 김 대표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실제 김 대표는 인터넷으로 기사를 잘 안 봐서 인터넷 여론은 진짜 잘 모르는 것 같다. 당직자들이 기사를 요약해서 갖다 줘도 비판이든 찬성이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이라며 “팩트만 틀리지 않으면 해석은 언론의 영역 아니냐는 입장이다. 언론 보도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과거 대표들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목표는 오로지 ‘수권정당’

김종인 대표가 야권 지지층의 비판을 민감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이유는 야권의 고정적인 지지층만을 고려한 행보로는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겨냥한 대상은 ‘새누리당을 완전히 지지할 순 없지만 더민주는 믿지 못하는’ 중도성향의 유권자였다. 김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당 지지자들이 수용할 수 없는, ‘당 정체성’을 건드리는 행보를 이어갔다.

2월 9일 경기도 파주의 군부대를 방문한 김종인 대표는 “장병들이 국방 태세를 튼튼히 유지하고 우리 경제가 더 도약적으로 발전하면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야당 대표의 입에서 햇볕정책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북한 붕괴론’이 등장하자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더민주 지도부는 2월18일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FTA의 주역이던 김현종 전 
교섭본부장을 영입했다. 그러자 당내에서 불공정, 불평등 해소를 내세우는 더민주의 행보와 맞지 않으며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한미FTA 비준을 반대했던 입장과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었다.

▲ 김현종 전 UN대사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을 열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임당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 대표는 더민주의 행보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에 “일관성은 무슨 놈의 일관성. 세상이 바뀌면 당도 바뀌어야지 무슨 일관성이 밥 먹여주는 줄 아느냐”고 일축했다. 김 대표는 “세상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적응하고 살아야지”라며 “정당은 세상이 변하는 것에 따라 국민들이 변하면 국민을 쫓아다녀야지 ‘나는 과거에 이랬기 때문에 영원히 이렇게만 산다’고 하면 영원히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중도층 외연 확장을 통한 수권이 정체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김 대표의 생각이 드러난 대목이다.

같은 선상에서 김종인 대표에게 국민을 절반으로 가르는 이념논쟁, 정치공방은 ‘불필요한 것’이 된다. 지지층만 규합해서는 ‘수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세월호 2주기 때도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도부 차원에서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가, 결국 참석했다. 더민주가 ‘노동자 강령’을 삭제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당 대표 후보 3인이 모두 반대 뜻을 밝히자 김 대표는 “다른 특별한 얘기를 할 게 없으니 그런 걸 갖고 (당 대표 후보들이) 마치 선명성 경쟁하듯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킨 것도 같은 이유다. 지난 2월 테러방지법의 국회통과를 막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은 160여 시간 동안 필리버스터,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실시했다. SNS에서 폭발적 반응이 일어났고,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모처럼 야당 노릇한다”는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김종인 대표가 이끄는 비대위는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켰다. 지금 중단시키지 않으면 국정을 발목 잡는다는 ‘역풍’이 오고, 정부의 경제실정이 부각되지 못한 채 또 다시 정국이 이념대립으로 나아간다는 이유 때문이다.

결국 김 대표가 주창하는 수권정당이란 정부정책에 무조건 반대만 하지 않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그래서 지지층을 넘어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정당이다. 김 대표에게 그 대안은 ‘경제민주화’다. 김 대표의 4‧13 총선 유세는 ‘경제민주화’로 시작해 ‘경제민주화’로 끝났다.

이는 214일 간 이어진 김 대표의 행보에 드러난다. 더민주가 집계한 김종인 대표 주요 일정에 따르면, 김 대표는 취임기간 동안 총 45회 ‘민생현장’을 다녔다. ‘민생현장’에는 일자리 정책콘서트, 경제민주화 간담회, 워킹맘 도시락 간담회 등 정책 관련 행사와 구조조정 토론회, 저출산 포럼 등 각종 토론회가 주를 이뤘다. 그 외 안보 일정이 7회, 안전문제 관련 일정이 5회였다. 4월29일 UN기념공원 참배와 6월8일 합동참모본부 방문은 야당 당대표로는 최초였다. 안보 및 안전 분야는 진보진영이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분야다.

김 대표의 ‘수권정당’ 전략은 총선 이후에도 이어졌다. 사드 배치에 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은 ‘신중론’을 취한 것이 대표 사례다. 더민주 지도부가 내세우는 신중론의 근거는 수권정당으로서 함부로 반대를 표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7월1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드 신중론에 대해 “‘더민주가 변화했구나’라는 징표로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민주가 수권정당으로서 정부여당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뜻이다. 이런 전략은 당 안팎에서 수많은 반발에 부딪쳤다. 더민주의 한 의원은 “그런 논리라면 야당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3월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잔류와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그 뒤로 수권정당이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포커스뉴스

수권정당의 길, 너희는 따라와라?

사드 신중론을 비롯해 김종인 체제의 방향에 대해 당 안팎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김 대표는 ‘마이웨이’를 고집했다. 김 대표는 2월22일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정당이란 걸 하다보면 말이 원래 말이 많은 거다. 그걸 일일이 다 머릿속에 담고 있으면 골치 아파서 아무것도 못한다”며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저런 소리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그냥 지나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정당 내부의 다른 목소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김 대표의 별명은 러시아의 절대군주, ‘짜르’였다. 더민주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추미애, 김상곤, 이종걸 후보는 22일 CBS 노컷뉴스 토론회에서 ‘김종인 체제의 과오’를 묻는 질문에 모두 독선적 리더십, 당 내 소통 부족을 꼬집었다.

김 대표의 독선적 리더십이 7개월 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리더십이 사회 일각의 시선을 반영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야권 지지층조차 야당을 향해 ‘무능하다’ ‘지리멸렬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일치단결’하는 새누리당의 모습과 달리 더민주에서는 이미 결정된 사안이 당내에서 뒤집히고, 부정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독재국가, 더민주는 부족국가”라 불리는 이유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한 김 대표 체제는 ‘새누리당’스럽다. ‘더민주를 새누리당처럼 만들어야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인 대표가 여러 차례 ‘당의 체질’을 바꿔야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실제 김 대표의 요청에 따라 문재인 전 대표는 비대위에 막강한 권한을 실어줬고, 총선 공천을 전부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새누리당처럼 권한을 하나로 모아, 책임도 명확히 하는 방식이다.

김 대표가 ‘셀프공천’이라는 말까지 들은 비례대표 공천 파동 때 대표직 사퇴까지 걸며 칩거에 들어간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김 대표의 칩거에 대해 몇몇 언론은 노욕과 고집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지지층 여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대표가 분노한 이유를 단순히 셀프지명으로 인해 욕을 먹게 된 상황에 대한 분노라고 보기는 어렵다.

▲ 3월 14일 SBS 비디오머그 영상 갈무리
김 대표가 분노한 이유는 자신이 우려를 표명했음에도 비대위원들의 강한 의사가 반영된 비례대표 공천이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 비대위로 인해 자신이 비대위원들이 결정한 내용에 대한 책임까지 떠 앉게 된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김 대표가 칩거에 들어가면서 비대위원들은 사표를 들고 김 대표를 찾아갔다. 상황을 수습하며 비대위원들의 항복 선언을 받아낸 것이다.

 
김종인 이후의 더불어민주당

보수언론은 김종인 대표가 물러나면 더민주가 ‘도로 민주당’이 될 것이라 관측한다. 조선일보는 22일 사설에서 “지금 당 대표에 나선 세 후보는 경쟁적으로 철 지난 선명성 경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 사람 모두 당선되면 사드 배치를 뒤집겠다고 했고 대통령 탄핵 얘기까지 꺼냈다”며 “민생은 아랑곳없이 눈앞의 정치적 이득에 눈이 멀어 이념 싸움이나 하는 체질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더민주는 김종인 체제 하에서 잠깐이나마 원내 제1당을 경험했다. 김종인 대표의 ‘수권정당’ 전략을 체화하고, 계파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시기를 경험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더민주의 한 의원은 “사드 관련 의원간담회 때 (김 대표 체제에서 들어온) 비례들이 ‘신중론’을 취하더라”고 전했다.

이런 의미에서 김종인 대표가 21일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당 대표를 내려놓은 이후에도 저는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김 대표는 “그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그 어떤 책임이라도 떠맡겠다”고 밝혔다. 김종인 대표가 당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그의 ‘수권정당’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종인 체제’는 아직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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