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탈북 이후 ‘탈북 도미노’ 등 추측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 외교관들은 탈북이 쉬운 집단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통일부도 “취재경쟁이 과열돼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 소식을 처음 보도한 곳은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16일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영사업무 담당 외교관이 이달 초 탈북 망명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태 공사의 실명은 이후 BBC를 통해 알려졌다. 그제서야 정부는 태 공사의 국내 입국 사실을 발표했다. 

북한 고위 외교관의 탈북은 기사 가치가 있다. 하지만 보도 행태는 어뷰징에 가깝다. 17일 정부 발표 이후 19일 오후 4시까지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태영호’로 검색되는 관련 기사는 989건에 이른다. 이 중 대다수가 같은 내용을 반복하거나 확대해석하며 흥미를 유발하는 식이다. 

▲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태영호' 검색결과. 1000건에 가까운 기사가 검색된다.
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을 ‘북한 체제의 균열’로 연결시키는 해석이 대표적이다. 세계일보는 18일 “북한 내 핵심 엘리트 계층으로 분류되는 고위급 해외 외교관의 탈북은 엘리트 그룹 내 심리적 동요가 확산하고 김정은 체제의 구심력이 흔들리는 방증”이라고 보도했다. 

서울신문도 18일 “북한 체제를 지탱해 온 ‘엘리트’들마저 등을 돌릴 정도로 김정은 체제의 균열이 커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해석했다. 아시아경제는 “앞으로 주목할 점은 고위계층의 탈북 도미노 현실화”라며 “결과적으로 김정은 체제 균열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지금껏 북한 고위급의 탈북은 꾸준히 있었다. 오히려 1990년대에 비하면 그 수가 줄었다.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1990년대 고위급 탈북자는 황장엽 노동당 비서 등 18명에 이르지만 2000년 이후로는 태 공사가 세 번째다. 

▲ 세계일보 8월18일 보도
또한 해외에 머무는 고위급 외교관은 애초부터 탈북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해외에 체류하면서 남북한을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북한 외교관이 자유롭고 발전된 나라를 동경해 탈북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전문기자로 평가받는 익명의 통일부 출입기자는 “외교관들은 아무래도 시야가 넓어지고 해외에 있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경우 이번에 태 공사 사례처럼 아이 학교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탈북이 쉽다”고 전하며 “최근 경향을 보면 북한 내부 탈북보다 북한 외부로 파견 간 사람들의 탈북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을 볼 때 태 공사의 탈북을 북한 체제 균열로 연결시키는 건 자극적인 흥밋거리 수준에 그치기 쉽다. 정성장 실장은 “고위급 엘리트 몇 명이 탈북 한다고 김정은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고 본다면 매우 성급한 판단”이라고 지적한 뒤 “1997년 황장엽 같은 부총리급 인사의 망명도 김정일 체제의 안정성에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19일자 사설에서 김정은 정권에 대해 “크게 보면 지금이 가장 안정됐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라고 밝히기도 했다.

▲ 미주중앙일보 19일 기사

상황을 확대해석하며 흥미를 유발하는 식의 보도만큼 문제는 보도의 기본인 사실관계조차 확인이 안 된 기사가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이는 크로스체크가 사실상 불가능한 북한 뉴스의 특수성 때문이다. 가령 TV조선은 19일 “김씨 일가 해외 비자금을 관리하고 핵심 정보를 꿰찬 고위급 북한외교관들의 탈북은 매달 한 두 명 꼴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근거는 없다.  

중앙일보는 19일 “올해 국내에 입국한 고위 외교관들은 태 공사 외에도 최소 6명이 더 있다고 정부 고위 당국자가 말했다”고 보도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해당 보도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확인해줄 수 없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외교나 신변 문제 등으로 확인이 안 되는 경우 보도를 안 하면 되는데 언론의 취재가 과열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일부 출입기자는 “정부가 최소한의 팩트 확인도 해주지 않고 언론은 이를 빌미로 오보를 생산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언론의 과열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정부부처마저 오늘날 상황에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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