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씨 비자금 사건의 파장이 한달 이상 계속되고 있다. 이제 며칠 뒷면 노씨가 기소되고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1월24일 김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민자당에 지시하는 바람에 노씨 문제는 5·18과 전두환씨 사법처리 문제에 상당부분 가려질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 여론의 감시가 소홀해지고 이 틈에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중차대한 이 두 문제를 동시에 보도해야 할 언론의 책임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재벌총수들의 전례없는 검찰 출두가 있은 이후 상당수 우리 언론들은 비자금 문제로 나라경제가 걱정된다는 보도나 논평을 했다. 검찰에 소환된 재벌 총수들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에 대해 주목하면서 재벌 총수가 구속되고 실형을 선고받는 일은 되도록 없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한 언론도 다수 있었다. 이들 언론의 주장에 의하면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인 소환 등으로 해외로부터 건설수주가 잘 안되고 수출 신용장 내도액 증가세가 둔화되는 등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으며 국가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엔 경기가 불황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우려하는 언론도 눈에 띈다.

필자는 이런 언론의 보도태도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또 이러한 다수 언론의 보도태도가 옳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우선 이같은 보도를 경제의 비용(cost)과 편익(benefit)측면에서 따져보자. 지금 언론은 우리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며 비용 측면만 제시하고 긍정적 효과 측면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언론의 나라 걱정이 경제논리로 성립되지 않음을 뜻한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던 전임대통령을 구속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죄에 대한 처벌일 뿐 아니라 현재의 대통령과 미래의 대통령에게도 권한을 이용, 뇌물을 받거나 특혜를 주면 예외없이 처벌대상이 된다는, 법치국가에선 지극히 당연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다. 6개월이 걸리든 일년이 걸리든 노씨의 모든 범법사실을 밝혀내고 법대로 처리해야 미래의 대통령들도 제대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제대로 하면 그가 임명한 장차관, 청와대 비서진들도 잘하게 될 것이고 국회와 법원도 잘하게 될 것이다. 이 한가지 효과만으로도 언론이 우려하는 모든 부작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다음으로 언론이 제시하는 부작용이 대부분 과장된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싶다. 노씨가 스스로 축소 발표한 5천억원마저도 검찰이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서둘러 종결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나라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우리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재벌총수가 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있는 존재로 대접을 받으면 국민들의 수치감과 좌절감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노동자들의 근로의욕저하, 성실한 중소기업인들의 낙담 등 오히려 우리 경제를 위축시킬 요소들이 양산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언론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않는 잘못된 태도가 이번 보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음을 지적할 수 있다. 어느 재벌, 어느 총수든 법을 어겼으면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가 구속됐을 때 재벌이 망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재벌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국민경제에는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우선 재벌의 행태가 달라져 법을 존중하고 공정하고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재벌 위세에 눌려 불리한 환경에서 경쟁하던 중소기업에 숨통을 틔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해당재벌 노동자의 실업문제는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것도 국민경제라는 숲에서 보면 다른 업체로의 전직 등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의 경제문제 보도가 불편 부당한 자세로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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