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사태로 전기요금제가 도마에 오른 지금이 왜곡된 전기요금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때라는 주장이 나왔다. 산업용 전기 요금 대폭 인상과 가정용 전기요금 형평성 증진을 통해 보다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전기 요금제를 구축할 때라는 것이다. ‘전기요금 인하’에 초점을 맞춘 누진제 완화는 변죽만 울릴 것이란 관점이다.

녹색당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전기요금체계 개편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탈핵·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전기요금 체계개편 방안’을 발표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개편의 방향성을 정리했고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 사진=녹색당 보도자료

언론·정치권 '누진세 완화' 집착 … 본질적 논의 협소화돼

먼저 짚고 넘어 갈 문제는 현재 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 정치권이 ‘전기요금 폭탄’ 문제만 강조하며 논의를 ‘누진제 완화를 통한 전기료 인하’로 협소화시키면서다.

▲ 2016년 7월 25일 이후 언론의 '누진제' 언급 추이. 자료=이헌석 대표 발제문 '탈핵·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 방안'

섣불리 누진제를 손봤다간 결국 부담은 저소득층에 전가될 수 있다. 누진제는 전기 다소비가구에게 최고 11.7배 높은 전기요금을 받아 저소비가구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11.7배의 전기요금을 내는 가구는 1년 평균 1.2%, 8월 평균 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6단계 중 저소비단계인 1~3단계 구간에 속하는 납부자는 71.7%다. 소득과 전기사용량은 정비례의 상관관계를 띈다. 누진제가 완화되거나 없어지면 이 1~3단계에 속하는 71.7% 납부자들의 전기요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누진제에서 전체 전기요금체계로 논의 번져야한다”

두 발제자는 문제는 ‘어떤 누진제냐’가 아니라 ‘어떤 원칙에 의한 전기요금체계냐’고 지적했다. 현재 전기요금체계는 불투명한데다 불공평한 측면이 있다. 원가산정 방식은 철저히 비공개로 가려져 있다. 그동안 가정용·일반용 전기요금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교차보조한 부분이 크고 대기업에게 원가보다 저렴한 ‘경부하 전력’이 집중적으로 공급돼 왔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전기요금 산정 원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 부소장은 ‘에너지 대책’과의 연동을 강조했다. 전기요금은 전기수요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때문에 전기요금 체계는 에너지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 등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그는 “한국 전력(에너지) 시스템은 기후변화와 핵 위험에 비춰 봤을 때 지속불가능하며 위험하다”면서 “전력 소비를 점차 줄이면서 소규모 분산적인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이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형평성’도 중요한 전제다.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최소 비용으로 ‘최소필요전력’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부소장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요금을 차등하면서 상위 소득 계층이 하위 소득 계층의 요금을 지원하는 사회적 연대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핵발전 비용 계산의 확대 필요성. 자료='원자력 발전비용의 쟁점과 과제'(허가형, 국회예산정책처, 2014.3)

사회적·환경적 비용도 재검토돼야 한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비용, 이산화탄소 저감 비용, 미세먼지 건강피해 비용, 초고압 송전선로에 대한 보상비용 등은 원가산정이 비공개인 현 전기요금 체계에서 어떻게 반영되는 지 알 수 없다. 개선될 방향은 전력 생산과 관련한 숨겨진 비용을 전기요금 원가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용 전기요금는 ‘정상화’, 가정용은 ‘정의로운 분배’

한 부소장은 ‘투트랙’을 제안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 산업용 전기요금제의 불공정함을 대폭 손보고 형평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정용 누진제를 개선하는 방식이다.

한 부소장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5여 년 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꾸준히 인상됐으나 그 이전부터 원가 이하로 공급돼 전력수요를 필요이상으로 증가시켜 왔다는 점에서다. 기업의 부담 측면에서도 그는 “기업들의 제조업 제조원가 중 전력비 비중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대를 유지하면서 계속 낮아지고 있다”면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기업의 부담도 그리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 20개 대기업은 한전으로부터 원가에 미달하는 요금으로 할인을 받아왔다. 사진= 한재각 발제문 '녹색당의 전기요금제 개편방향의 구상' 내 자료 일부

대기업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경부하요금 정상화’도 주요한 방법이다. 산업용 전기 중 ‘산업용(을)’은 소비 시간대에 따라 경부하, 중간부하, 최대부하로 나눠 요금에 차등을 둔다. 한 부소장은 “2012년 기준, 경부하요금은 구입단가 81.8 원/kWh보다 낮은 판매단가 61.8 원/kWh로 공급되고 있어서 –20원/kWh의 단가 손해를 보고 있다”며 “한전은 2조 2,331억원의 판매액 손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요금을 원가를 반영할 만큼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정용 누진제 개선안은 모두에게 ‘최소필요전력’ 공급을 보장하는 것을 중심으로 저렴하게 공급받는 구간, 원가 수준에서 공급받는 구간, 누진제가 적용돼 원가 이상의 요금이 부과되는 구간 등 3원화 시킨 요금 체계다. 최소비용으로 최소필요전력을 공급받는 1단계 전력소비 가구 수를 41.4%, 가장 많은 가구 수가 해당되는 200~400kWh 소비 2단계는 가구 수가 30.3%, 그 외는 원가보다 높은 누진제를 적용하는 식이다.

현행과 다른 것은 ‘1구간’의 폭을 넓히면서 사회적 형평성을 끌어 올린 것이다. 한 부소장은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정확한 원가 산출과 손실 정도 등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충분히 실현가능한 대안임을 제시한 것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원가 등 자료가 공개되면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 한재각 부소장이 제안하는 가정용 누진제 개정안. 사진= 한재각 발제문 '녹색당의 전기요금제 개편방향의 구상' 내 자료 일부

원가 정보, 숨기지 말고 공개하라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위해서 선행돼야 할 점은 정보공개다. 전기원가, 산출방식 등을 정확히 알아야 매매가를 제대로 산정할 수 있다. 원가회수율이 적절한지, 회사들이 부당이익을 얼마나 거두었는지 등도 알 수 있다. 이헌석 대표는 시민사회 및 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전기요금 평가 및 산정위원회’ 구성을 주장했다.

‘전기세 신설’ 방안도 제기됐다. 현재 전기요금에는 별도 세금이 붙지 않아 다른 에너지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많이 지적받아 왔다. 이 대표는 “현재 전기요금에 3.7% 전력산업기반기금이 부과되고 있고 여유자금만 2조 3900억원에 이른다”면서 “전력기금은 사실상 준조세적 성격을 갖고 있기에 이를 ‘전기세’ 논의와 연동해 재생에너지 확대, 석탄-핵발전으로 인한 환경 문제 해결, 방재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논의가 폭넓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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