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통해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 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4년, 당시 KBS 보도국장이던 김시곤에게 전화해 KBS 보도에 대해 항의하고 심지어 기사 논조를 바꿔달라고 하는 등 보도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사다.

당시 이 의원은 “지금 나라가 어려운데 (KBS가) 해경과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게 맞느냐”, “하필이면 대통령이 KBS 뉴스를 봐버렸네”, “해경 비판을 자제해 달라” 등의 발언을 했다. 이를 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의원의 행위를 ‘신 보도지침’으로 규정하고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이정현 의원을 편성개입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고, 중앙지검은 이를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해 수사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이 집권여당 대표로 당선됨으로서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언론개입이라는 중대한 의혹에 ‘면죄부를 쥐어 준 것’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언론개입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태고, 이 의원의 ‘전화’는 수사 대상이 된, 언론개입 여부에 대한 ‘혐의’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의원이 당 대표로 당선된 것을 정작 언론은 어떻게 봤을까?

8월10일, 대부분의 언론은 새누리당에 호남 출신 비주류 당 대표가 당선된 사실에 무게를 싣거나 결국 새누리당이 ‘도로 친박당’이 된 것을 비판했다. 이날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경향신문을 비교해 보면 1면에는 이 대표 당선소식과 그 의미, 그리고 이 의원의 인생역정, 당내외가 보는 시선으로 지면을 채웠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9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당선되 당직자들과 손잡고 인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 중 KBS 보도개입 의혹에 대한 문제로 제목을 뽑은 언론은 없었다. 대신 제목에서 이 대표 당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언론사 별로 문제의식이 갈렸다.

조선일보는 1면 톱기사 제목으로 ‘보수정당 사상 첫 호남 당대표’, 동아일보는 1면에 ‘보수 여당에 호남대표 깃발 꽂다’는 제목을 뽑았다. 중앙일보도 ‘새누리 사상 첫 호남대표 이정현’, 경향신문도 ‘새누리당 대표에 친박 이정현 보수여당 최초 호남 출신 선출’을 제목으로 뽑았다. 모두 ‘호남 출신 당 대표 선출’에 무게를 실은 보도였다. 반면 한겨레의 1면 기사 제목은 ‘새누리 대표 이정현…총선 참패 넉 달 만에 ‘도로 친박당’’이다.

하지만 그 내용에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KBS 보도개입 논란을 언급했다.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한국방송(KBS)의 세월호 보도에 적극 개입했던 사실이 지난 6월말 녹취록 공개로 알려지며 파문을 낳았다”고 보도했고, 이와 함께 이 전 대표의 정치사를 들여다본 4면 기사에서도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인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는 한국방송의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보도 통제에 나섰던 통화 녹취록이 지난 6월 말 전국언론노동조합에 의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의 경우 2면 기사에서 “청와대 홍보수석 당시 KBS 세월호 보도 개입 논란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며 “이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사설 ‘이정현 신임 새누리당 대표 앞에 놓인 과제들’에서는 “이 대표는 또한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에 개입한 정황을 담은 녹취록이 공개돼 논란을 빚은 바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사과하고 사법적 판단을 받을 부분이 있다면 응해야 옳다”고 비판했다.

반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8월10일자 지면에는 이정현 대표 선출 관련 기사에 KBS와 관련 된 부분은 한 건도 나오지 않는다.

동아일보 8월10일자. 3면.
8월10일 이후에는 관련 보도가 있을까? 한겨레는 11일 5면 ‘‘수사 대상’인 여당 대표’ 기사를 통해 짧지만 KBS 보도개입 논란으로 이정현 대표가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고 수사 중이라는 별도의 기사를 냈다. 같은 날 김보협 한겨레 디지털 에디터는 ‘대통령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다’ 칼럼에서 이정현 대표가 언론을 대하는 방식을 지적했다. 김 에디터는 이 대표를 향해 “그 당(새누리당)의 대표까지 된 그의 무기는 열정과 충성심이었다”며 “어쩌면 자신보다 더 소중한 ‘그분’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퍼부어댔다”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도 한 번 언급되긴 한다. 동아일보의 경우 8월11일 박제균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이 대표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시절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건 것이 문제가 됐지만, 한나라당-새누리당 출입기자나 담당 데스크를 하면서 이정현의 전화 한 통 안 받아본 기자가 있을까”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당 칼럼이 이정현 대표를 무턱대고 비호하는 칼럼은 아니다. 중앙일보는 15일 이철호의 시시각각 칼럼을 통해 언급된 수준이다.

조선일보 8월10일자. 3면.
KBS 외 보도의 차이점.

KBS 보도개입 논란을 다뤘느냐 아니냐가 아니더라도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경향신문이 각각 대비되는 점은 있다.

우선 눈에 띄는 특징은 1면에서 조선일보의 어조가 한겨레와 비교적 가깝다는 것이다. 이날 조선일보는 이정현 대표의 당선이 “당청 간 신 밀월시대”를 열 것으로 내다봤으며 새누리당에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영향력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친박 패권’ 심판이라는 4월 총선 민심과는 정반대로 친박계가 당 지도부를 더욱 강력하게 장악하게 된 것”이라거나 “당의 친박 색채가 훨씬 강해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가 보다 더 직설적이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가 이정현 대표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반면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는 ‘대의원의 선택’이라는데 무게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대통령의 레임덕을 우려한 친박 성향 당원들의 전략투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지적했고 “이 대표의 당선으로 당청관계는 공조 면에서 더욱 긴밀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당심은 박근혜 정부의 ‘안정적 마무리’와 호남 공략 가능성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평했다.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란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이정현 대표를 상징하는 노래도 차이가 있다. 동아일보·중앙일보는 이정현 대표의 통화연결음이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 노래가 이 대표를 상징하듯 기사를 쓰며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라는 가사를 집어넣었다.

반면 한겨레는 이정현 대표의 상징곡으로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꼽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뒤 이정현 대표가 그 노래를 자주 불렀다는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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