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고객 개인정보를 판매해 약 231억의 부당이익을 올린 홈플러스에 또다시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규탄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13개 시민·소비자 단체는 12일 공동성명을 내 "사법부와 정부가 기업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장사를 용인해주고 보증까지 해주는 상황"이라면서 "기업들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장사는 정당화됐고 소비자들은 다가올 재앙들에 노출됐다"고 규탄했다.

서울중앙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장일혁)는 지난 12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도성환 전 홈플러스 사장과 홈플러스 주식회사에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8일 홈플러스 측이 개인정보보호법이 요구하는 제3자 유상 고지 의무를 다했고 고객도 자신의 개인정보가 보험회사 영업에 사용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항소를 기각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재앙에 가까운 판결"이라는 입장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의 근간을 훼손함으로써 소비자의 정당한 피해 구제 권리를 앗아갔고 고객 정보를 남용할 여지를 명문화함으로써 기업의 '개인정보 장사 꼼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다.

홈플러스 개인정보 매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박지호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간사는 13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기업들이 이미 암암리에 개인정보를 수집.매매하고 있고 또 이와 관련해 재판도 다수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 법원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식이면 앞으로 어떤 기업도 (홈플러스와 같이) 별도 동의를 받지 않고 타기업과 고객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 비판했다.

13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즉각 "소비자의 피해는 외면하고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행위만을 보장해준 비상식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정보 매매'와 관련한 홈플러스 측의 충분한 고지 절차가 없었고 고지를 받았더라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제기됐음에도 사법부가 이를 간과하고 기업의 입장만 반영했다는 것이다.

지난 1심 판결 당시 화제가 된 '1mm' 글씨 크기의 정보제공 약관 명시 문제에 대해서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판결을 그대로 따랐다. 1심 재판부는 1mm 크기의 글자는 현행 복권이나 의약품 사용설명서 등에도 쓰인다며 홈플러스 소비자들이 문제의 약관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을 것이라 판단했다.

개인정보 수집에 이용된 홈플러스 경품행사 응모권엔 '보험사에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고지가 1mm 크기로 적혀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소비자가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소비자들은 1심 재판부에 글씨 크기 1mm로 작성한 항의 서한을 전달한 있다.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관련 소송이 다수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정보인권을 후퇴시키는 영향을 줄 것이란 비판도 거세다. 박 간사는 "당장 '롯데홈쇼핑 개인정보 유출 사건'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권리주장조차 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경실련, 참여연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진보네트워크 등에서 기업을 상대로 다양한 소송을 진행 중인데 피고를 대리하고 있는 변호사 대부분이 다 이 판결을 들며 변호할 것"이라 우려했다.

롯데홈쇼핑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홈플러스 개인정보 매매 사건과 흡사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1일 2만9000여명에 달하는 고객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제3자인 보험사에게 불법제공한 롯데홈쇼핑에 과징금 1억8000만 원을 부과했다.

홈플러스 개인정보 유출 건에 대응하고 있는 13개 시민·소비자단체는 향후 2심 판결에 대한 문제제기 및 개인정보 유출 기업에 대한 고발 등을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홈플러스는 지난 2015년 2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홈플러스는 2011년에서 2014년 사이 경품행사 응모 고객, 온라인 회원 등을 통해 수집한 약 2400만 건의 고객 개인정보를 7개 보험회사에 팔아 약 231억 원의 이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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