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통령 선거. 동아일보 이아무개 정치부장은 이아무개 전 국세청 차장에게 1500만원을 받았다. 이 돈은 한나라당의 1997년 대선불법자금 중 일부였다. 이 부장은 대선 당시 선거정당팀장을 맡고 있었으며, 이 돈은 기사 청탁 대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 이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지검은 이 부장 외에도 20여명의 언론인에게 돈이 건너간 사실을 포착했다. 이 부장은 어떻게 됐을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법적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늘날 김영란법이 있기까지는 언론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해왔던 수많은 사건들이 자리 잡고 있다. 2000년 매일경제TV 조아무개 PD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에게 수차례에 걸쳐 주식을 팔라고 요구해 이를 취득한 뒤 코스닥 상장을 전후로 되팔아 수십억 원 의 수익을 올렸다. 조 PD는 당시 비난여론이 일자 사표를 냈을 뿐 그에 대한 법적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중앙일보 길아무개 기자는 미공개 정보를 동생에게 알려 4억6000만원의 시세차익을 얻게 했다는 혐의로 1999년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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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윤태식 게이트 당시에는 벤처기업과 언론의 유착관계가 드러났다. 검찰은 언론인 25명이 ‘패스21’ 주식을 3000주 가까이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수십 분의 1 시가로 싸게 주식을 구입해 되파는 식으로 이득을 챙겼다. 신문에서 조금만 벤처기업을 띄워줘도 주가가 올랐기 때문에 유착은 심했다. 일부 벤처기업들은 주식의 10%를 공무원과 기자 로비를 위해 따로 관리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2년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에는 언론인 9명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고 같은 해 타이거풀스 로비사건에는 10개 언론사가 지분에 참여하고 자사 매체를 통해 이를 홍보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정작 언론인들은 제대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대전MBC 고아무개 기자는 법조출입기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금품을 갈취하고 이권에 개입했다가 2001년 대전지법으로부터 징역3년 추징금 2억1800만원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오락실 불법 영업을 보도하지 않는 대가로 400만원을 갈취하고, 특정 병원장을 구속되도록 해주겠다며 7600만원을 수수했으며, 아파트 사업승인을 받게 해주겠다며 건설업자로부터 1억4200만원을 받기도 했다. 2004년에는 건설회사에 신문을 강매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자 2명이 구속되고 기자 4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건설현장의 먼지 등을 꼬투리 삼아 리베이트 등을 챙겼다.

2001년에는 일부 영화사가 홍보대행사와 논의를 거쳐 스포츠지 기자들에게 한국영화의 경우 200만~500만원, 외화의 경우 50만~100만원까지 촌지를 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검찰이 대가를 받아온 일부 기자에 대한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한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당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기사화가 되지 않는다”며 “영화담당 기자를 만나 돈을 보도 자료에 넣어 건네주며 통상적으로 영화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나눠서 지불한다”고 밝혔다.

▲ 2001년 2월 국세청 조사요원들이 한 일간지가 제출한 세무조사 관련 서류들을 쌓아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2001년 국세청은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23개 언론사의 세금탈루액이 1조3500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국민들의 충격은 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시 13개 중앙언론사가 최근 4년간 5434억 원 규모의 부당내부거래를 한 사실이 적발돼 24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사주와 친인척 등 특수 관계인에게 비상장주직을 저가 매각한 뒤 고가매입하게 하는 식의 부당거래였다.

당시 과징금 규모는 동아일보 62억, 조선일보 34억, 중앙일보 25억 순이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언론사의 ‘부패’는 언론의 신뢰도를 심각하게 떨어뜨렸으며, 언론개혁운동에 불을 지폈다. 수십 년 간 쌓여온 언론에 대한 도덕적 불신은 결국 오늘날 김영란법으로 등장했다.

언론인들도 언론계 부패를 인식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13년 기자의식조사에 따르면 언론계에서 촌지가 ‘자주 혹은 매우 자주 수수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료티켓’과 ‘선물’이 54.6%, ‘향응이나 접대’가 53.1%, ‘취재 관련 무료 여행’이 44.6%, ‘외유성 취재 여행’이 21.7%, ‘금전’이 18.4% 순으로 나타났다. 언론재단은 “촌지 유형별 수수 빈도가 2009년 조사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40.3%는 “촌지 수수가 기사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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