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이차선 도로는 싸움의 거리다. 지난 8여 년 간 집회·시위가 끊긴 적이 없다. 삼성 그룹 내에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남편을 떠나보낸 사람, 삼성 '협력업체' 노동자 등 삼성 그룹과 관련된 피해당사자들이 이 거리를 찾는다.

'삼성전자 앞 수요 집회'는 2012년이 지나면서 정착됐다. 삼성일반노동조합(이하 일반노조) 위원장, 삼성전자 전 협력업체 사장, 삼성 SDI 직업병 피해자, 래미안 아파트가 들어선 재개발 단지 세입자 등은 매주 수요일 삼성전자 맞은편에서 공동 집회를 연다. 왜 수요일일까. 매주 수요일 삼성전자 건물에서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열린다. 피해당사자들은 이들에게 직접 말을 걸고 싶은 것이다.

"이건희, 이재용 나와라!" 섭씨 30도를 기록했던 무더웠던 지난 달 27일과 지난 3일, 미디어오늘은 두 차례에 걸쳐 삼성전자 앞을 찾았다.

▲ 삼성전자 서초사옥 맞은 편 도로에 있는 과천 철거민 농성장. 매주 수요일 오전9시 집회는 이 농성장 근처에서 열린다. 사진=손가영 기자
노동조합, 철거민,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하청업체 사장까지 규탄대열에

첫 집회는 '과천 철거민 연대집회'다. 오전 8시45분, 피켓을 든 대여섯 참가자가 삼성전자 본관 맞은 편에 있는 낡은 봉고차 주변에 섰다. 차 안엔 침대용으로 설치된 나무판과 밥그릇, 수저, 1인 시위 피켓 등이 실려 있었다. 이 차는 과천 철거민 농성장이다. 지난 2012년 주차된 이래로 자리를 거의 비운 적이 없다.

과천 철거민은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 싸워온 사람들이다. 2008년 래미안 아파트(시공사 삼성물산)가 들어선 과천 3단지 재개발지역에서 방승아(50) 과천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옷가게를, 김이옥씨(65)는 김밥 가게를 했다. 재개발 허가가 떨어졌던 2005년 당시엔 세입자 보호 제도는 전무했고 세입자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빈약했다. 재개발 조합을 향해 "이사비 50만 원만 달라"고 했던 요구가 묵살된 후, 이들은 전국철거민연합에 가입해 세입자의 권리를 알게 됐다. 이들은 이후 12년 동안 "임대상가 보장하라", "재입주할 권리 보장하라"고 요구해왔다.

래미안 아파트가 들어선 후 해가 지날수록 이들의 요구는 힘을 잃어갔다. 2006년 100여 명이 싸움을 시작했지만 차차 뿔뿔이 흩어졌고 2009년 7명이 남았다. 서초사옥 이차선 도로는 2009년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찾았다. 이후 4명이 싸움을 그만뒀고 방위원장의 동생은 건강이 악화돼 시골로 내려가면서 2010년 즈음엔 단 둘만 남게 됐다.

그럼에도 그들은 애초 요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방 위원장은 "2014년 드디어 삼성물산이 사태를 해결하겠다며 과천시청과 함께 대책 강구에 나섰으나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1년 간 싸워 온 방 위원장은 "무엇으로 어떻게 한을 풀겠나"면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구호는 '약속을 지켜라'와 '삼성물산은 도의적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라 말했다.

▲ 8월3일 오전 삼성전자 본관 맞은편 좌측 도로에서 과천 철거민 연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삼성물산은 이들 뒤에 있는 건물에 있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건희 회장 출근할 땐 개처럼 끌고 가… 집회도 불가능했던 치외법권"

그는 이차선 도로를 삼엄히 감시하는 '삼성 에스원' 직원을 가리켜 '나를 개 끌듯 끌고 다닌 깡패'라고 불렀다. 그는 2011년 이건희 회장이 '출근 경영'을 하는 동안이 가장 심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 출근에 맞춰 1인 시위를 하러 가면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둘러싸 사지를 잡고 나를 개 끌듯 끌고 갔다. 가죽장갑으로 목과 입을 틀어막아 숨을 못 쉬어 매우 고통스러웠다. 끌려가는 도중 무서워서 소변을 본 적도 있다. 비가 오는 날엔 우비가 다 찢어지고 우산이 부서져 버릴 정도였다."

방위원장은 “당시 이건희 회장이 화·목요일에 출퇴근했다. 일주일에 4번은 경비원에게 완력으로 제압당했다”며 “정신을 차리고 나면 바닥에 내팽개쳐진 채로 누워있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삼성 계열사가 모여 있는 이 이차선 도로에서는 1인 시위도 힘겨웠다. 2008년경부터 이 거리를 찾은 김성환 일반노조 위원장은 "1인 시위를 하고 있으면 경비들이 와서 협박과 폭언을 하거나 열댓 명이 우르르 몰려와 밀어붙여 (삼성전자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곤 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앞 도로에서 집회가 가능해 진 햇수도 채 4년이 되지 않는다. 이전엔 '집회가 불가능한' 도로였다. 2012년 전까지 경찰은 미리 신고된 집회가 있으면 이후 신고된 집회는 허가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측이 집회를 막으려 '유령집회'를 매일 신고했다는 사실은 당시 언론 보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집회는 삼성전자 건물에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열렸다.

▲ 2014년 4월15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다니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삼성본관 앞 규탄집회 중 삼성 측 경비원에 의해 통행이 가로막히고 있다. 사진=삼성일반노동조합 홈페이지
▲ 정애정씨는 2008년 경부터 삼성반도체 공장 직업병으로 숨진 남편의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사진=삼성일반노동조합 홈페이지

당시 싸우던 사람들이 집회의 자유를 얻고 경비의 완력이 상대적으로 완화된 때는 2012년 7월이다. 서울행정법원은 2012년 7월23일 “삼성전자 본관 앞 노조 집회는 개최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고 황민웅씨 7주기 추모제'를 열기 위해 서초경찰서의 집회 금지 처분을 집행 정지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고인은 기흥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04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2005년 숨을 거뒀다.

고인의 아내 정애정씨도 2008년부터 2015년 말까지 7년을 넘게 이 거리에서 싸웠다. 김 위원장은 "정씨는 '남편의 죽음은 삼성의 학살'이라고 말했다.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2008년부터 남편 영정 사진을 들고 매일 같이 여기 나와서 싸웠다"고 말했다.

정씨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88일 간 이차선 도로에서 노숙 농성했던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그는 삼성이 당사자 간 약속을 깨고 일방적으로 보상위원회를 꾸린 데 대해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을 요구했다. 삼성전자 측 경비들은 당시 정씨와 김 위원장이 설치한 현수막을 커터칼로 잘라냈고 방풍용으로 설치한 비닐 막도 칼로 도려냈다.

'사장님들' 출입로 집회 봉쇄, '알바' 동원 알박기 집회 정황 보여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성 5명은 수요일마다 삼성전자 정문 바로 맞은 편 도로에서 ‘국민 기본권인 행복 추구권 침해하는 부당한 집시법 개정촉구 결의대회’를 연다. 김 위원장은 "저 자리는 절대 집회 허가가 안 난다"면서 "이건희, 이재용이 드나드는 정문이라서 지키는 것"이라 말했다.

이들은 보통 오전 7시 경부터 오후 5시까지 현수막을 펼치고 서 있다. 이들이 들고 선 피켓엔 "기자회견 빙자한 불법집회 중단하라"고 적혀있다. 현수막과 피켓은 삼성물산이 있는 건물에서 가져왔다. 이들은 2~3명씩 한 시간 터울로 교대를 해가며 자리를 지켰다.

▲ 7월27일 삼성전자 본관 정문 바로 맞은편 도로에서 '집시법 개정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5명이 오전 7시경부터 오후 5시까지 자리를 지킨다. 사진=손가영 기자
▲ 수요일마다 결의대회에 참여하는 이들의 옷차림새나 소지품을 보면 삼성물산 임직원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사진=손가영 기자

집회 내용을 묻는 말에 이들은 당황해하거나 침묵으로 대응했다. 이들에게 말을 걸고 1분도 지나지 않아 삼성전자 건물 앞을 지키던 경비가 다가와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다. 그는 "삼성물산 임직원들이 (집회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이들의 외양은 일반적인 대기업 회사원이라 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옷차림새와 외모는 20대 초반을 가늠케 했고 색색깔 백팩이 현수막 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방 위원장은 몇 주전 이들 앞으로 지나치며 ‘대학생이지?’라고 물었고 ‘네’라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삼성SDI 협력업체에서 자매가 동시에 백혈병…
무노조 경영 중단 때까지 집회 안 멈춰

2차 집회는 11시30분부터 13시30분까지 진행됐다. 오전 집회가 삼성전자 맞은 편 좌측에서 열렸다면 2차 집회는 우측에서 열렸다. 전 협력업체 사장, SDI 직업병 피해자, 삼성 일반노조 등이 각자 자신의 구호를 가지고 공동 집회를 열었다.

김성환 위원장은 "무노조 경영 중단, 노조 탄압 중단"을 두고 20년 가까이 싸워왔다. 1993년 삼성그룹 계열사 이천전기에 입사한 김 위원장은 이천전기가 인수되는 과정에서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96년 해고됐다. 이후 2000년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만들었고 2003년 삼성 계열사 및 하청업체 직원들로 구성된 삼성일반노조를 설립했다.

▲ 2013년 7월23일 기흥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민웅씨의 8주기 추모제가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삼성일반노동조합 홈페이지
노조 결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표적 해고된 사례는 김 위원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박종태씨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들자'는 글을 올려서 2010년 해고된 바 있다. 에버랜드에서 일했던 조장희 당시 삼성노조 부위원장도 2011년 해고됐는데 노조 결성으로 인한 부당해고라는 비판이 팽배했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폭로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는 “19개 계열사에 노조가 설립될 경우 모든 역량을 투입해 조기 와해에 주력하고, 노조가 있는 8개사에 대해선 기존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근거로 해산을 추진하라”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지난달 27일 집회엔 백혈병 피해자이자 유족인 김지숙씨가 참여해 20여 분 동안 규탄 발언을 이어나갔다. 멀리 부산에 사는 김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집회에 참여한다.

삼성 SDI 부산공장 협력업체에서 일했던 김씨는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고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일했던 김씨의 동생은 2010년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고 한 달 만에 숨을 거뒀다. 김씨는 발언 내내 "삼성은 살인자"라고 소리쳤다.

매주 수요일 경북 칠곡에서 상경하는 최성출씨는 자신을 '중소기업피해자'라고 밝혔다. 최씨는 2013년 12월20일 처음 이 거리에 섰다. 손에 "삼성 이건희 회장님은 삼성코닝이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 상생경영을 실천해 사회적 약속을 지켜주십시오!"가 적힌 피켓을 들고서였다. 최씨는 처음 1인시위에 나섰을 때도 삼성 에스원 직원들이 자신을 에워싸고 봉쇄했다고 말했다.

28년 동안 삼성과 거래를 맺었던 최씨는 사업이 쇠락했던 2008년 당시 삼성전자 김아무개 상무가 찾아와 "10년간 최소 10억 상당의 일감을 줄 것을 약속해 그걸 믿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2011년 2년여의 물량 제공을 끝으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다.

최씨는 "약속을 지켜라. 왜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지도 설명하라"면서 "상무, 전무 등 삼성 임원 출신이 설립하는 '삼성 마피아 기업'에 일감 몰아주는 관행, 삼성계열사가 지분을 차지한 특수협력업체에 일감 몰아주는 관행 등 나쁜 원·하청 관계도 모조리 뜯어고쳐야 한다"며 끝까지 삼성전자 앞 시위에 나올 것이라 강조했다.

"여기서 오래 싸우면서 혼자 싸우기 시작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외롭게 투쟁하지 말고 같이 하자'고 말했다. 그게 지금이 됐다." 현수막, 피켓, 확성기 등이 진열되는 삼성전자 맞은 편 도로는 오후 4시가 지나면 과천 철거민 농성장만 남은 채 정리된다. 김성환 위원장은 무노조 경영 및 노조 탄압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집회를 이어나갈 것이라 말했다.

▲ 2013년부터 삼성전자 사옥 앞 1인 시위 및 집회에 참여해 온 최성출씨. 사진=손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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