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에 얼마나 복귀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정형돈은 무한도전 하차를 선택했다. 그는 왜 복귀를 미루는 대신 하차를 선언했을까. 

‘복귀해서 내가 예전만큼 웃길 수 있을까.’ ‘우주여행 특집이나 롤러코스터 미션을 견뎌낼 수 있을까.’ ‘12시간 넘는  추격전을 버틸 수 있을까.’ ‘장기 기획 도중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다시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은 무한도전 원년멤버 정형돈의 복귀 의지를 집어삼켰다. 복귀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는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하차 선언은 불가피했다.

▲ 지난 6일자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김제동·이경규·김구라·이병헌·양현석·차태현·김장훈, 그리고 정형돈…. 이들은 ‘불안’을 고백한 공황장애 연예인들이다. 보통 불안장애가 심해져 발작을 일으키면 공황장애 판정을 받는다. 알 수 없는 불안이 고조되면 과호흡 상태에 놓이고, 그럼 체내 산소 농도가 높아져 몸에 마비증세가 온다.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상황에 정신은 혼미해지고 곧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공황발작은 트라우마를 남겨 일상에 어려움을 주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약물에 의존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약물은 인데놀이나 알프람, 에스시탐과 같은 항우울제를 주로 처방받는데 일부 항우울제는 자살충동을 유발한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와 있다. 최근에는 항우울제로 한국에서 사용되는 파록세틴의 자살충동 부작용이 치명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제시하는 유일한 해결책이 약물복용이기 때문이다. 약물로 공황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공황장애에 적응하는 과정에 약물이 있을 뿐이다.

약물 의존은 현대정신의학의 한계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의사들은 상담을 통한 정신치료를 병행한다. 그러나 공황장애를 발생시킨 근본적 삶의 조건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완전 치유는 사실상 어렵다. 이런 상황이 환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누군가는 마음의 병이기 때문에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을 하지만, 이는 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주장에 가깝다. 마음의 병은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정형돈이 10개월째 방송복귀를 못 하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 SBS '힐링캠프'에서 불안장애를 고백했던 정형돈의 모습.
공황장애는 연예인들만의 병일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황장애질환의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를 분석한 결과 공황장애 진료환자는 2006년 3만5000명에서 2011년 5만9000명으로 증가했다. 인구 10만 명 당 진료환자도 2006년 74명에서 2011년 119명으로 연평균 9.9% 증가했다. 공황장애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까지 고려하면 환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은 최초로 우울증 환자 수 60만 명을 넘겼고, 11년 연속 OECD회원국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은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불안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감시사회의 산물이다. 우리는 점점 통제할 수 없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핵발전소와 방사능오염,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일상의 화학약품 공포가 실재한다. 아스팔트는 흙의 숨통을 막아버려 흙이 없는 도시에 갇힌 인간은 기계 없이 생존할 수 없게 됐다. 일상은 CCTV와 스마트폰으로 감시된다. 모든 장면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녹화되고 녹음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내가 이 사회에서 적절한 행복감 속에 통제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일탈을 했다가는 내가 공인이 아니어도 기사거리가 되고 공개 사과를 해야 할 수 있다. 우리가 관음증에 가까운 보도에 열광할수록 우리의 사적 공간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는 비단 연예인들만 겪는 불안이 아니다. 의료·교육·실업 등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문제를 모두 개인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쟁사회에서 정형돈의 불안은 우리들의 불안과 이어진다. 

시청자를 웃기고 울렸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도 분투하고 있을 정형돈의 ‘무한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또한 일상의 불안을 받아들이며 삶을 버텨내는 평범한 이들의 수많은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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