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등 반도체·LCD 제조용 화학물질 제조업체 한솔케미칼 노동자 이창언씨(32세)가 백혈병 투병을 이어가다 지난 3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 이씨는 3년10개월간 반도체 공장에 납품되는 전극보호제 및 세정제 생산 업무 등을 맡아오다 지난해 10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투병 중이던 지난 4월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의 늦장조사로 처리가 지연되는 동안 병세가 악화됐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 등은 6일 공동 성명을 내고 “이씨는 삼성 등 구매처의 납품 요구에 맞추기 위해 월 100시간 이상 잔업과 밤샘노동 등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었고 백혈구 수치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서를 회사에 갖고 간 날에도 회사는 이씨에게 밤샘 근무를 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어 “근로복지공단도 산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여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줄 책무를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2013년 3월 서울 곳곳에서 전자산업 피해자 추모주간 행사를 열었다. 사진=반올림 제공
반올림 등은 “고인의 백혈병 사망에 대한 책임은 노동자의 안전을 무시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한솔케미컬 회사와 늦장 산재처리로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근로복지공단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씨는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 무슨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작업했으며 이들 물질을 혼합하는 과정에서 화학용액이 눈과 피부에 튀고 호흡기를 통해 분진을 흡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을 비롯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백혈병 등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진 노동자 수는 1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반올림 등은 “삼성반도체 고 황유미 님을 비롯해 여러 백혈병 피해 노동자들이 유해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았음에도 이런 공장에 납품하는 화학제품을 제조했던 고 이창언님의 백혈병에 대해 신속한 산재인정은 고사하고 역학조사 실시여부조차 결정을 지연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고인이 된 이씨의 사연은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4월 산재신청 기자회견에서 “값비싼 치료비와 주기적인 검사 비용도 엄청난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3살 된 딸과 이제 태어난 지 2주된 아들을 키워야하는데 이 아이들에게 아빠로써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줘야 할 시기에 딸아이를 안기에도 힘이 떨어져 나도 모르게 힘에 부쳐 벌벌 떠는 제 손을 보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만 간다”고 밝혔다.

당시 이씨는 “꼭 산재로 인정받고 일평생 안고 살아야하는 이 병에 대한 치료만이라도 마음 편히 하여 아이들과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삼성반도체 직업성 암 등 산재신청 사건 처리에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2년, 최대 4년으로 알려졌다. 피해노동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산재처리절차와 제도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