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보복이 시작된 것일까.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반발이 한류 콘텐츠 제재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중국에 진출한 콘텐츠 사업자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사업, 정부 교류·협력까지 난항에 빠졌다. G20이라는 외교적 이벤트가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계기로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대하기에도 난망하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방송 콘텐츠 제작자들 사이에서 고조되던 긴장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건 ‘찌라시’였다. 중국의 신문·방송·영화 등 미디어를 총괄하는 정부기관인 광전총국이 사드 배치에 반발하며 중국 방송 사업자에게 한류 콘텐츠 방영을 중단하도록 전화로 지시하고, 한국 연예인 출연을 금지시키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일부 언론들이 이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화를 시작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사업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찌라시의 진위 여부는 밝혀진 바 없다. 아직 광전총국 홈페이지에서도 공식적으로 해당 지침이 있다는 공지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사실상 중국 정부의 지침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정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부 관계자가 중국 방문을 거절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8일 김재홍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 한류콘텐츠 교류를 위해 장쑤성에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현지에서 방문을 거부당했다. 중국 출발 직전까지 일정을 확인했음에도, 중국 측이 돌연 일정 이틀 전 “베이징에 중요한 회의가 생겼다”며 일정을 취소한 것. 대표단에 따르면 중국 방문 일정 내내 중국 측 반응은 냉랭했다.

김재홍 부위원장도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현지에서 한국 고위공직자 접촉을 노출하는 걸 꺼려하는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지에서 만난 중국 기업인들은 현재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투자를 비롯한 경제교류에서 신규 사업을 시작할 수 없으며, 이미 벌여놓은 사업도 제대로 추진해나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김재홍 부위원장의 말은 실제로 한국에서 중국 교류를 담당하는 콘텐츠 업계에서 느끼고 있는 현실이 요약돼 있다. 업계에서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중국과의 콘텐츠 교류 및 수출 계약들이 연기되거나 중단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국 방송사와 공동제작 교류를 이어왔던 한 한국 방송 콘텐츠 제작사는 ‘사드 때문에’ 프로그램의 중국 방영이 미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해당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합작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었고 제작 스케줄을 잡아야 해서 구체적 계약 시점을 (중국 방송사 측에) 물어보자, ‘사드 때문에 방송 편성이 지연될 것 같다. 한국 쪽과 합작하는게 지금은 힘들다. 분위기를 좀 봐야 한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우리 뿐 아니라 주변에 이런 식으로 계약이 지연되거나 아예 중지가 된 사례가 몇 곳 있다. 그 제작사들은 물론 사드 때문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이런 분위기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사드 배치 이후 계약 파기까지는 아니지만 (제작 협약) 계약서가 오가고 최종 사인을 하는 단계나 송금 등의 절차들이 이유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늦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지자체 차원의 교류도 중단되고 있다. ‘태양의 후예’ 세트장이 위치한 강원도는 중국CCTV7과 교류를 통해 원주, 속초 등 여행지를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중국 측의 요구로 잠정 연기됐다. 강원도는 또 중국 파워 블로거, 한류 스타와의 만남을 통해 홍보영상을 제작하기로 했지만 이 또한 중국 측이 취소했다. 중국 칭다오시는 대구 치맥 페스티벌에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정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비공식 루트로 중국 각 성 내에 지침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 (이러한 상황이) 사실상 기정사실화 된 것 같다”며 “사드 배치 보복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류 콘텐츠를 제재하게 되면 논란이 불거질 수 있으니 비공식적인 방법을 통해 제재를 하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식발표는 없었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관련지침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중국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한국 콘텐츠를 거부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라기보다는, 중국 방송제작사 차원에서 중국 정부 눈치를 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광전총국 지침으로 중국 내에서 방영되는 해외프로그램 편성 규제를 내린 내용은 있지만 이후에 비공식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출연을 금지하거나 편성을 막는다는 등의 내용은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상황에 밝은 또 다른 방송사 관계자 역시 “중국 제작사들이 (사드 반대에 강경한) 중국 정부의 입장에 맞춰 자세를 낮추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밝혔다.

김재홍 부위원장도 “중국의 중앙정부가 일률적인 지침을 낸 것 같지는 않고 각급 지방정부나 민간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분위기를 살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김재홍 부위원장이 장쑤성에서는 ‘홀대’를 받았지만, 원저우TV 방문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된 점 역시 중국 정부의 일관된 지침이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다만 베이징 중앙정부 차원의 검토가 진행 중이며 단계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는 있다”고 말했다. 당장 제재가 있지 않아도,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한국 정부 측은 일단 다음 달에 열릴 G20 정상회의를 분위기 전환 계기로 보고 있다. 김재홍 부위원장 역시 원저우TV 방문 자리에서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의 긴장관계가 완화될 수 있지 않겠냐는 뜻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사업자들이 중국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큰 만큼, 양국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제스처가 나오면 보류됐던 사업들이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중국 관영언론에서 꾸준히 한류 콘텐츠를 포함한 경제 분야 보복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찌라시’에 드러난 지침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와는 별개로 이후에도 중국의 ‘반한’ 움직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이미 중국 내부에서는 한국식 예능보다 중국식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분위기가 있어왔다. 한국 방송 제작자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의견 충돌과 한국 제작자들 특유의 ‘고자세’ 때문에 ‘한국팀과 같이 일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더욱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중국 정부 역시 지난 6월20일 외국 방송으로부터 판권을 사들인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 편성을 제한하고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늘리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외국과 공동제작을 할 경우 중국 측이 지식재산권을 확보해야 하고 각 위성채널이 수입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매년 1편으로 제한한다는 규정도 포함됐다. 이처럼 중국은 꾸준히 자국 제작 역량을 키우기 위한 방침이라며 중국 콘텐츠를 보호하고 해외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늘리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한류 거부’ 움직임이 최근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악화된 여론에 힘입어 더욱 빠른 속도로 한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사드 배치 결정 직후부터 중국 내 반한 감정이 커지고 있다. 악화된 중국 여론은 화장품과 관광, 방송 콘텐츠 등 한류 전반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 베이징의 한 제작사 관계자는 “(사드 배치와 무관하게 방송 콘텐츠 제작 시장에서) 이미 한국과의 합작 분위기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면서 “특히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바이두(포털 사이트) 게시판 등을 보면 한국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2~3년 전 한국의 한 게이머가 반칙을 했다는 한 영상을 지금 다시 돌려보면서 ‘한국 왜 이러냐’는 부정적 반응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중국 정부 차원의 제재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일부 지방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반대운동을 하고 나설 수도 있다.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질 때 애플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는 일부 지방 도시들이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한국과의 방송 교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안은 없을까. 현장에서는 사실상 ‘답이 없다’며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국 정부에서 대놓고 ‘한국’이라고 명시한 제재 정책을 내놓지는 못할 것 같다. 만약 진짜 그렇게 중국 정부가 한국을 콕 집어서 제재하겠다고 말하면 양국 업계 관계자들 간의 문제가 아닌 외교문제로 불거지는 것 아니겠나. 그때는 업계관계자들이 대응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고 의견을 말했다.

중국과 방송 교류 협업을 하고 있는 한 제작사 관계자는 “아직까지 피해가 현실화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아직은 합작 예정 중이었던 네 개 작품 중 하나만 중단된 상황인데, 나머지 준비 작품들도 모두 계약 없이 올해를 넘기면 그때부턴 피해가 돌아온다”며 “제작사 관계자들끼리 서로 연락하면서 상황 공유는 하고 있지만 이후엔 딱히 대응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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