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김영란법 합헌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각계의 지혜를 모아 충격을 최소화할 대책을 마련해 나가기 바란다"는 단서를 붙였다.

박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부정청탁금지법에 대해 내수 위축 가능성을 비롯해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헌재의 합헌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마치 김영란법의 무분별한 시행으로 경제를 악화시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은 김영란법 논의 초기 당시 강력하게 제정을 찬성했던 입장에 섰지만 이후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였다.

특히 김영란법 통과를 늦어지자 부정부패 척결을 외면하고 있다고 국회를 질타하는 소재로 적극 활용하다가 막상 김영란법 제정 및 통과 국면에서 경제계의 목소리를 대변해 김영란법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 대통령이 김영란법을 언급하며 강하게 통과를 촉구한 것은 지난 2014년 5월 19일 대국민담화문을 통해서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33일 만에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면서 해양경찰을 해체한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끼리끼리 서로 봐주고 눈감아 주는 민관유착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겠다"며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정부가 제출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김영란법 제정에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당시 김영란법 원안은 공직자가 금품을 받으면 자신의 직무와 관련돼 있지 않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 등을 처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한달이 좀 지난 시점이 6월 3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영란법 적용 범위와 관련해 "더 강력하게 한다면서 대상을 너무 광범위하게 잡는다면 현실성이 떨어지고 관련 대상자들의 반발로 오히려 실현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우선 정치권과 고위층부터 대상으로 해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한발 뒤로 뺐다.

결국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100만원 이상 금품을 챙긴 공직자를 형사처벌토록한 원안을 수정해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형사처벌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결했다.

 

박 대통령은 반쪽짜리 입법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해 8월 1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부정부패 척결의 기본이 되고 본격적인 시작이 되는 김영란법이 이번 8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돼야만 하겠다"면서 "국회가 결국은 인명까지 앗아가는 상황에서 자꾸 부패가 어떻다 저떻다 탓하기에 앞서 유병언법과 김영란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누더기가 된 김영란법에 국회가 선뜻 동의하기도 어려웠지만 마치 국회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부정부패 척결을 막은 것처럼 공세를 폈다.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김영란법 통과를 촉구하고 제정 이후엔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4월 26일 언론사 간부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부정청탁 금지법에 대해서는 실제 저는 이대로 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속으로 많이 했다"면서 "그런데 이게 법으로 통과가 됐기 때문에 어쨌든 정부로서도 시행령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중략)...좋은 취지로 시작했던 게 내수까지 위축시키면 어떻게 하느냐.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헌재에서 결정을 또 하면 거기에 따라야 되겠지만 국회 차원에서도 한번 다시 검토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법치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김영란법 통과를 촉구하고 국회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던 박 대통령이 이제와서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마치 김영란법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날 국무회의 발언은 당초 법 제정의 취지를 훼손하는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장 공직자 외부강의 대가, 음식, 경조사비 선물 등의 가액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한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오는 8월말 공포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영란법 시행령 안에 어떤 세부 내용이 담길지 주목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와 관련해 음식물, 선물, 경조사비 상한액을 3만원, 5만원, 10만원에서 5만원, 10만원, 20만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법제처에 제출했고, 해양수산부도 음식물과 선물 상한액으로 8만원, 10만원을 제시했다. 법제처는 정부입법정책협의회를 열어 김영란법 대통령령 가액 상한액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은 지난달 28일 헌재 합헌 결정에 대해 "문제가 생기면 빨리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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