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015년 3월3일 재석 의원 247명 중 찬성 226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날 진보진영의 풍경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한겨레는 “언론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해 온 정부가 법을 악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공직자를 규율하는 법률을 민간인까지 적용해 권력이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성명을 냈다.

7월28일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 합헌 결정을 냈을 때 진보진영의 반응은 1년5개월 전과 달랐다. ‘언론 자유 침해’ 주장은 오히려 비판의 지점이 됐다. 한국기자협회에서 헌재를 비판하는 성명이 나왔으나 오히려 역풍이 컸다. 정석구 한겨레 편집인은 칼럼에서 “기자협회는 김영란법 때문에 취재활동이 제한을 받는다는 엉뚱한 얘기를 할 게 아니라 취재윤리 규정을 강화하고 규정을 위반한 언론인은 징계하는 등 자정운동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강혁 민변 언론위원장(변호사)은 “당시 피상적으로 언론자유 침해 가능성을 확대해 받아들이며 비판적인 톤의 성명이 채택됐지만 이후 내부적으로 반성하는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부에선 큰 사회적 흐름 속에서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법률가로서 볼 때 거칠고 미흡해 보이는 지점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며 “법 집행과정에서 기존에 제기됐던 비관론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모습. ⓒ포커스뉴스

김영란법은 합헌으로 나왔지만 이를 바라보는 진보진영의 입장은 드러나는 것만큼 간단치 않다. 전국언론노조 관계자는 “김영란법의 입법취지와 방향에 동의하지만 모호한 법적용과 표적수사도 우려 된다”며 “여전히 내부에 찬반양론이 있다”고 전했다. 언론노조는 김영란법 합헌결정과 관련해 성명을 내지 않았다. 늘 언론인의 청렴과 공적 책무를 강조해온 언론노조가 언론인의 부패를 감싸주고자 성명을 내지 않는 것이라 받아들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언론중재법에 밝은 한 변호사는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공익성을 언론인에게 똑같이 요구하는 것은 잘못됐다. 언론인들이 접대를 받는 건 문제이지만 다른 공공영역과 마찬가지로 언론인 접대문제를 법으로 규율 하려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5월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남녀 1004명에게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한 이들이 66%에 달했다. 김영란법 통과 이후 헌재의 합헌 결정까지 1년5개월간 국민들의 김영란법 긍정 여론을 이끈 주체는 다름 아닌 언론이었다. 대다수 주류 언론은 김영란법의 사회적 함의는 뒷전에 두고 김영란법이 경제를 위축시키고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도하며 오히려 언론에 대한 불신을 높였다.

▲ 조선일보 5월12일자 1면.
조선일보는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이란 제목을 뽑으며 5만 원 이상 선물 금지로 관련 산업이 큰 어려움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당장 의도적 과장이란 비판이 나왔다. 가격을 낮춰 접대할 수 있는데도 기존 3만 원 이상 가격대의 식사 매출이 모두 없어진다고 계산하는 식이었다. 접대비가 줄어 경제가 침체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지난해 국세청 기준 법인 59만1694곳이 결제한 접대비가 10조원에 육박하는 현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김영란법은 3만 원 이하 접대와 5만 원 이하 선물을 받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아니지만 일련의 언론보도는 2만8000원짜리 한정식, 4만9000원짜리 선물세트 따위를 소개하며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데 급급했다. 지금도 외유성 해외출장, 식사접대, 골프 접대의 달콤함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보도행위는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헌재의 합헌 결정에 일조했다. 김영란법은 ‘법이 없는 한 언론은 구제불능’이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탄생했다.

▲ iStock.
이런 가운데 주류언론은 놀랍게도 ‘언론 자유’를 운운했다. 매일경제는 지난 1일 김영란법이 “한국 언론에 대한 모욕”이라며 언론 자유도 하락을 운운했다. 공정보도를 위해 싸우다 언론인이 해직되고 불공정심의로 제작 자율성이 침해될 때, 5인 미만 언론사는 국가로부터 ‘언론 아님’ 통보를 받게 됐을 때조차 외면했던 주류언론은 부패방지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궤변을 쏟아냈다. ‘김영란법 언론인 포함’은 언론인 스스로가 자초했다.

헌재 결정문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언론은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권력을 견제할 수 있게”되며 “정당하고 떳떳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고 제시했다.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언론계는 김영란법을 흔들었지만 ‘기자는 접대 받은 만큼 기사 쓴다’는 합리적 의심을 떨쳐내지 못했고, 사회는 정치·자본권력에 유착되지 않은 언론을 기대하며 김영란법에 언론인을 포함시켜야 했다.

▲ 일러스트=권범철 화백.

오늘날 언론계를 보면 설령 위헌소지가 있더라도 헌재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7월29일 JTBC에 출연해 “방에서 취재원과 신중하게 할 이야기를 못하고 홀에서 (밥을) 먹게 되면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식탁에 누구와 앉아 있느냐가 나를 규정짓는다”며 언론인의 자성을 촉구했다. 김영란법을 마주하는 언론계의 ‘두 얼굴’이다.

한 방송사의 5년차 기자는 “젊은 기자의 상당수는 김영란법 조지는 기사를 쓰라는 데스크 지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전하며 “김영란법 반대 의견에는 반박할 가치조차 못 느낀다”며 합헌결정을 환영했다. 이 기자는 표적수사 우려에 대해 “김영란법이 아니더라도 지금도 충분히 기자들을 괴롭힐 수 있는 꼬투리야 만들 수 있다”며 “오히려 티 나게 김영란법으로 괴롭히면 기자들이 벌떼같이 조질 것”이라고 답했다.

여전히 김영란법에 위헌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는 한 방송사 부장급 기자는 “합헌과 위헌 양쪽 주장이 극단적이다. 얼마나 언론인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았으면…”이라며 허탈함을 드러냈다. 이 기자는 “워낙 반대론자들이 황당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서 지금은 반대 입장을 내며 끼어들지 않는 게 낫다. 비정상적인 법적 조치를 통해서라도 오늘날 접대 관행을 바꿔야한다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됐다면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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