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사직한 한 인사는 지인들과 만남에서 '박근혜 대통령 스타일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확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청와대가 대통령에 직언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닐뿐더러 직언을 하더라도 대통령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 인사의 말처럼 박 대통령이 불통의 상징이 돼버린 것은 오래된 일이다. 그나마 김기춘 비서실장에서 이병기 비서실장으로 교체했을 때 소통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신호로 읽혔다. 하지만 지난 4월 총선 참패 이후 단행된 개각으로 ‘도루묵’이 돼버렸다.

비서실장 교체로 보는 박근혜 대통령 스타일

관료 출신 허태열 실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물러났다. 그리고 청와대로 들어온 인물이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비서실을 장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과 장관을 거치지 않고 김 실장을 통해 국정운영을 보고 받고 지시하는 스타일을 고수했다고 한다. 당시 김 비서실장이 ‘왕실장’이라고 불렸던 이유다.

든든한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일방독주한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사퇴 요구는 1년 넘게 계속됐다. 총리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 국회와의 소통 불능 문제 그리고 정윤회 문건 사태가 터지면서 김 실장 사퇴만이 국정운영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은 공직 윤리도 무너지고 기강도 땅에 떨어진 상태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런 청와대 비서실을 그대로 두고선 이 정권이 내건 국정 과제를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지난해 1월 10일자 조선일보 기사의 한 대목이다.

보수언론까지 합세한 사퇴 요구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해 유임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한달 뒤인 2015년 2월 김기춘 비서실장이 사임을 밝힌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기춘 비서실장 후임으로 온 이병기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의 소통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인사로 평가를 받았다.

외무공무원 출신인 이 비서실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의전을 담당한 인물이다. 2004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자문 역할로 연을 맺었다. 공안 검사 출신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중앙집권식 컨트롤타워 국정운영을 선호했다면, 이병기 비서실장은 외교관의 장점을 발휘해 상대방과 관계를 중시하면서 국정을 조율하는데 집중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병기 비서실장의 노력에도 박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지 못했고 소통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병기 실장 청와대 왕따설은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바꾸도록 설득하지 못한 한계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병기 실장이 박 대통령에 직보 기회도 많이 얻지 못했고, 비서실장조차도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국정운영을 논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결국 비서실을 장악하지 못한, 무기력한 비서실장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병기 실장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사의를 표명했지만 청와대는 이병기 실장의 사임에 대해 경질이냐 아니면 자진 사임이냐를 놓고 이러다할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병기 실장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여러 가지 해보려다 안 된 것도 있지만 떠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말을 남겼다. 

이병기 실장 사임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인물은 이원종 비서실장이다. 충북도지사를 역임하고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을 했던 대표적인 관료 출신의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 역대 비서실장을 출신별로 분석하면 관료→공안검사→외교관→관료로 다시 되돌아온 셈이다.

이원종 비서실장 임명은 집권 후반기 관리형 인사를 통해 공직사회를 다잡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이 비서실장은 권력 실세형 인물은 아닌 것으로 평가 받는다. 다시 말해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운영을 터놓고 얘기할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병우 사퇴 불가 이유도 대통령 스타일 탓

박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밝혀 듯이 그는 대면보고를 선호하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사람하고만 통(通)하는 게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 스타일상 주변에 믿고 국정을 논할만한 인물은 많지 않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빗발친 사퇴 요구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꿈쩍하지 않은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후임이다. 김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 사태 당시 국회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항명을 하고 사퇴했다. 항명 이유는 정윤회 사태 사건 처리를 맡지 않아 모르기 때문이라는 건데, 당시 사건 처리를 맡은 인물이 우병우 민정비서관이었고, 우 비서관이 직속상관인 김 전 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직보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 안에는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믿는 사람에게는 권한까지 주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공직자들에게는 그 자리에 합당한 책임을 지우고 권한 행사는 못하도록 했다. 우병우 수석은 권한을 갖고 있는 경우였고, 앞선 세 수석(곽상도, 홍경식, 김영한)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였다”고 밝혔다.

조응천 의원의 말대로라면 우병우 민정수석은 민정비서관 시절부터 권력실세에 보고하는 라인에 있었다. 그리고 우 수석은 민정수석을 꿰차고 김기춘 비서실장이 교체되고 난 뒤 박근혜 대통령을 최단 거리에서 보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도 집권후반기 김기춘 비서실장처럼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우병우 민정수석이라는 것이다. 검찰 출신 우병우 민정수석은 박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인물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사퇴할 수 있느냐의 질문도 나온다.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이 사퇴 시점 1년 전부터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 대통령이 그의 사임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을 보더라도 우병우 민정수석의 사임은 자진 의사에 따라 이뤄질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박 대통령은 끝까지 믿을만한 사람에 대해서는 끝까지 중용하지만, 한번 눈 밖에 벗어나면 잔인하리만큼 가차하게 쳐버리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아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유승민 의원을 자기 정치를 한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은 게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어느 지도자나 마찬가지겠지만 박 대통령은 특히 야권의 거센 사퇴 요구가 있으면 오히려 버티는 모습을 보여줬다.

현기환 정무수석이 예상을 깨고 4월 총선 직후 유임됐다가 5월 교체된 것도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보여준다. 현 정무수석을 곧바로 갈아치울 경우 총선 참패를 인정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교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병우 민정수석도 사퇴요구가 쏟아지는 이 때 수용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국정운영 실패라는 공세에 시달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진정 국면에서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사퇴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박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의 거취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