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송년회를 사실상 9월로 당기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1일자 한겨레에 따르면 한 대기업 홍보실장은 “출입기자 대상 송년회를 9월 중순쯤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통신업체 홍보담당자는 “말복 행사를 열어 올해 출입기자들과 함께하는 송년회를 대신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기업들이 외국에서 신제품 발표 행사를 할 때 출입기자들을 초청하는 것 등을 놓고도 고민에 빠졌다”고 전했다. 한 전자업체 홍보담당자는 “김영란법 시행 전에 열리는 유럽가전전시회가 마지막 초청 출장이 될 것이라며 가겠다는 곳이 많아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9월28일부터 시행될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가져온 ‘혼란’이다.

▲ 한겨레 20면.
헌법재판소의 ‘김영란법’ 합헌 결정 이후에도 일부 조항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야 원내 지도부는 강경한 ‘원안 고수’ 견해를 밝혔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31일 전당대회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헌재가 합헌 결정한 김영란법은 부정·부패 근절의 열망이 담긴 법”이라며 “새누리당이 지켜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내 임기 중 김영란법은 고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연합뉴스가 국회 정무위원 24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한 19명 가운데 농수축산물을 김영란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답한 의원은 4명뿐이었다. 응답자의 과반인 10명은 제외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부정청탁의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예외로 둔 조항에 대해서도 정무위원들은 대다수가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 같은 국회입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1일자 사설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기업이 공무원에게 로비를 할 길이 막히게 된다. 그런데 유독 국회의원만은 ‘공익 민원’이란 핑계 아래 청탁을 듣고 그 내용을 당국에 ‘전달’할 권한을 김영란법은 허용하고 있다. 자연히 기업들의 로비는 국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의원들이 이권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한국일보 4면.
김영란법은 국회 입법 논의과정에서 ‘국회의원·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와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법 적용 예외사항으로 규정했다. 이를 두고 한국일보는 “예외조항이 허용하는 ‘공적 목적의 민원 전달’의 잣대가 모호하다”며 “‘쪽지예산’만 해도 법 적용 대상인지가 모호하다”고 보도했다.

김영란법은 ‘보조금·출연금·교부금·기금 등의 업무에 관해 법령에 위반해 특정 개인·단체 법인에 배정 지원하거나 투자·예치·대여·출연토록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부정청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정상적인 예산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쪽지 예산’도 이 규정에 해당될 수 있고 예외조항이 허용한 ‘공적 목적’으로 보기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정상 절차를 벗어나 지역구 표심을 챙기기 위해 ‘예산 밀어 넣기’를 하는 것인 만큼 공익 목적을 갖추진 못한 부정청탁에 해당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여당 국회의원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예산 민원을 통해 얻어내는 지역구 사업 예산의 규모만큼 다른 지역에 배정될 예산이 줄기 때문에 공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국민들은 부정청탁과 관련해 국회의원을 예외로 하는 조항을 김영란법에 둔 점에 대해 몹시 의아해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민원인들의 청탁이 잦은 대표적인 공직자이기 때문이다. 민간인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에까지 엄정한 잣대를 들이댄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주장했다.


▲ 세계일보 1일자 사설.
세계일보 또한 같은 날 사설에서 “의원들이 당초 정부 초안에 없던 예외규정을 신설해 셀프 면죄부를 준 데 대한 국민적 거부감은 상당하다”며 “김영란법은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의 자녀‧친척 취업 청탁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통째로 빠져 반쪽 소리를 듣는다. 이 조항만 있었다면 국회의원의 보좌진 가족 채용 같은 갑질은 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신문사들 주장은 김영란법이 공정성을 의심받는 반부패법이 돼선 안 되기 때문에 예외조항을 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 신문사는 공정성 차원에서 적용대상을 더욱 늘려나가야 한다는 논조도 보이고 있다. 모두 김영란법 합헌 결정에 따른 것인데,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되자 강화된 논조다. 적용대상을 늘리고 예외조항을 없애 법에 따른 혼란을 극대화해 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높여 적용대상을 대폭 축소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한편 국민일보는 “자본과 권력의 정략결혼 등 출생 단계에서부터 만들어진 ‘금수저 인맥’이나 학연·지연을 고리로 한 ‘그들만의 리그’는 더욱 공고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며 “일반인의 대관(對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게 된 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김영란법으로 오히려 권력의 카르텔이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 국민일보 1면.
국민일보에 따르면 한 중소 건설사 임원은 “귀찮아서 인허가 등 일을 해주지 않거나 보신에만 눈이 먼 공무원을 ‘달랠’ 방법이 없어진 게 사실”이라며 “입법 취지엔 동감하지만 다른 대안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겨레는 “오랜 홍보‧대외 협력 경험을 가진 임직원들의 몸값이 올라갈 것”이라 보도했다.

이와 관련 국민일보는 “미국식 로비 제도 도입 주장도 나온다”고 전했다. 미국 시민단체 책임정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로비 시장 규모만 32억 달러, 등록된 로비스트만 1만1000명이 넘는다. 외국에도 로비를 개방해 작년 상반기에만 553개의 외국 기관·개인을 대리해 로비스트 353명이 활동했다.

서울신문은 “김영란법은 법 위반자 신고에 최대 20억원의 보상금과 최대 2억원의 포상금을 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파파라치 양성학원이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전국 각지 20여개의 학원이 성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며 “서울 서초동에도 공익신고 전문 요원 양성을 표방한 사설학원이 새롭게 생겨났다. 가정주부나 노인 등 생계형 파파라치까지 보상금을 목적으로 다양한 이들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아래는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생활화학제품의 역습 이대로 가면 더 큰 재앙 온다>
국민일보 <세재개편 무용론…조세저항에 개혁 못하는 정부>
동아일보 <213명 숨은 낙하산 보냈다>
서울신문 <의원 쪽지예산도 김영란법 ‘불똥’>
세계일보 <검찰 ‘셀프개혁’…이번엔 제머리 깎을까>
조선일보 <숙소 물 안나와 항의하자 “그 정도면 다행”>
중앙일보 <아파트 분양권 3회 이상 사고판 3000명 적발>
한겨레 <검찰이 자초한 ‘야권발 검찰개혁’>
한국일보 <클린턴‧트럼프…누가 돼도 한국 부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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