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호 전 MBC 기자의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글이 논란이다. 이 전 기자가 지난 29일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직격하는 발표문을 SNS 등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 전 기자는 관련 글이 29일 부천영화제 포럼에서 발표할 편지 형식의 발제문이라고 밝혔다.

먼저 김 위원장이 지난 5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다이빙벨’에 대해 “한쪽 의견에 치우친 편향적 다큐”라고 발언한 것 등에 대해 이 전 기자는 “그 자체로 중대한 개입이 이뤄진 것”이라고 발표문을 통해 주장했다. MBC 사장이 PD수첩의 4대강 사업 비판 보도를 ‘편향적이며 나쁜’ 보도라고 규정하는 경우 발생할 편집권 침해 논란과 유사한 사례라는 것이다.

▲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을 가지고 사고현장으로 가는 배에 취재차 동승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전 기자는 또 “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위원장님께서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재임 당시, 부산영화제가 열리기 직전 ‘다이빙벨’을 시내 모처에서 미리 입수해 사전 모니터 하신 사실을 알게 됐다”며 “만일 청와대의 지시가 없었어도 바쁘신 김동호 위원장님께서 사전 모니터를 하셨을까. 모니터는 진정 청와대 지시에 의한 것은 아니었는지요”라고 반문했다.

이 전 기자는 또 “2014년 당시 베를린영화제는 부산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다이빙벨을 초청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하고, 해외 관객들 눈높이에 맞춘 수정본을 요청해왔다”며 “하지만 베를린영화제측은 개최 직전 초청을 돌연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베를린영화제 측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the most influencial person)가 ‘이 영화를 상영할 경우 한국 영화계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압박을 가해왔다고 밝혔다”며 “저는 ‘그 인사’가 절대 김동호 위원장님이 아니라고 믿지만 위원장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인 만큼 오해받으실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 전 기자는 “해외영화제에 압박을 행사했다는 부당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베를린 영화제 측에 정식으로 ‘그 인사’가 누구였는지 공개를 요구하실 생각은 없느냐”고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등 영화계는 이 전 기자의 발표문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홍효숙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해년도에 베를린포럼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포럼 집행위원장만 현장에서 초청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며 “진짜 초청을 받으셨다면 초청장을 공개해주시고 영향력 있는 인사의 압력 부분도 메일 전문을 공개해 본인이 의문을 풀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홍효숙 프로그래머는 “이 부분은 관련도 없는 영화제에 대한 심각한 훼손 행위”라며 “어떤 영화제가 초청을 결정해놓고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을 들어 취소를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송희일 감독은 “다이빙벨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이 영화의 완성도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세월호를 다룬 첫 번째 다큐였기 때문”이라며 “짐작컨대, 상영을 결정한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측도 이런 입장과 유사했을 것이다. 또한 독립영화 쪽에서도 이 영화의 완성도와 윤리적 태도에 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았지만 다 같은 마음에 나처럼 개봉을 응원하거나 입을 다물었다. 세월호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송희일 감독은 “김동호 위원장이 인터뷰 과정에서 신중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 대한 사적인 평가를 언급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며 “게다가 ‘편파적이고 나쁜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선택은 프로그래머의 몫’이라고 못 박았다. 표현의 자유란 나쁜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완성도가 떨어져도 그것이 영화제 입장에서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여긴다면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상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베를린 영화제 음모론은 참 남우세스럽다”며 “거장들도 재편집을 요구 받았다가 막상 초청도 안 하고 입 싹 닫는 게 그 잘난 3대 국제영화제들의 허다한 관행이다. 그 잘난 척하는 영화제들이 무슨 자국 영화계 인사의 압력 때문에 초청 여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해와 억측에 기반한 채 근거도 없이 바른대로 대라고 윽박지를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이상호 감독의 영화 다이빙벨.
김조광수 감독은 “이상호기자는 공개적으로 말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부산영화제 쪽에 사실 관계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며 “그건 기자가 취해야 할 기본이다. 이제라도 사과하고 홍효숙 프로그래머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영화배우 김의성씨도 29일 SNS를 통해 “이상호기자... 참 너무한다. 이건 아니다 정말”, “김동호 위원장님은 영화계에서 진짜 권위를 획득한 몇 안 되는 분이다. 그렇게 쉽게 말 몇 마디로 건드릴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김씨는 이어 “세상이 단순하게 옳고 그름으로, 우리 편과 적으로 갈라질 때는 자신의 뇌가 지나치게 단순해서는 아닌지 돌이켜보자. 뇌가 단순하면 손발이 폭력적이 된다”는 글도 남겼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은 “부산영화제 사태에서 중요한 건 ‘나쁘고 편향된 영화라도 틀 자유가 있다’이다”며 “그 영화가 나쁘고 편향됐느냐 아니냐 가치 판단을 하자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아래는 이 전 기자의 발표문 전문이다. 

부산영화제 해법, 사과와 명예회복이 먼저
"왜 그러셨나요. 김동호 위원장님께 묻습니다"

김동호 위원장님, 무더위에 안녕하신지요.

아무래도 순서가 바뀐 듯 합니다. <다이빙벨> 상영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 그동안 당사자인 만큼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이건 아닌 듯합니다.

이른바 ‘부산영화제 파동’은 프로그래머들이 정당하게 ‘선택’한 영화를 부산시장이 부당하게 ‘개입’하자 집행위원장이 원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입니다.

‘부당한 개입’이 파동의 원인이 된 만큼 우선적으로 부산시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영화제를 지키는 과정에서 표적 고소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한 명예회복이 우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앞으로 부당개입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충분한’ 정관개정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산영화제 파동은 며칠 전 정관개정이 통과됨으로써 갈등해소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합니다. 샴페인 터지는 소리에 가려 사과와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이제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사회는 ‘5:5다 5:4다’ 숫자계산으로 분주할 뿐이구요. 이건 본말이 뒤집힌 거지요.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미진한데도 재발방지를 위한 충분한 법제화가 이뤄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그렇고 종군위안부 배상문제가 그렇습니다. 모든 문제는 본말이 제대로 정립될 때만 순리대로 풀리게 되니까요.

하물며 작은 교통사고가 나도 우선 사고조사와 운전자 책임을 묻고 나서 재발방지를 위한 법제를 손질합니다. 무엇이 우선돼야 할까요? 김동호 위원장님은 과연 부산영화제 파동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인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가요?

위원장님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이빙벨>이 ‘편향적이며 나쁜영화’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래도 영화제 정상화를 위한 의지를 그리 밝히신거겠지 여겼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스마트미디어앤>과의 인터뷰에서 또다시 같은 취지의 말씀을 반복하시는걸 보며, 과연 이분이 부산영화제 파동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인가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위원장님은 말씀 뒤에 그래도 ‘선택은 프로그래머의 몫’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앞선 말씀 그 자체로 중대한 개입이 이뤄진 것입니다. 위원장님 개인의 표현의 자유, 중요하지요. 하지만 위원장님은 부산영화제 수장으로서, 무한대의 표현의 자유를 지니는 평론가나 관객과는 다른 위치에 계십니다.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로 국민적 불신을 받고 있는 부산영화제 조직위원회의 구원투수로 등판하신 분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검찰은 수사권 독립을 위해 검찰총장의 수사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공영방송 역시 편집권 독립을 위해 사장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인사권을 위시한 경영권을 장악한 MBC 사장이 PD수첩의 4대강 사업 고발을 ‘편향적이며 나쁜’ 보도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미 중대한 개입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피디도 편향적이며 나쁜 보도를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조직 수장의 판단과 그 판단의 공표는 향후 조직원들의 자기검열 기제로 작동할 것이 분명하기에 고도로 자제되어야 합니다.

졸지에 편파적이며 나쁜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되었습니다. 저야 애초에 감독을 지망하는 사람도 아니고 다만 방송사에서 쫓겨난 3류 기자일 뿐이니 괜찮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영화를 고르고 이 같은 영화를 지키느라 만신창이가 된 프로그래머와 집행위원장의 입장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김동호 위원장님은 과연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와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울 진정성이 있는 분인가요?

부산영화제 개최를 희망하는 수많은 영화인들은 대체로 김동호 위원장님의 진심을 믿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 역시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근 <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위원장님께서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재임 당시 부산영화제가 열리기 직전 <다이빙벨>을 시내 모처에서 미리 입수해 사전 모니터 하신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풍문으로만 듣다 사실로 확인한 순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정권차원의 사전 검열은 절대 아니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기사를 보니 편파적이고 나쁜 영화이기는 하지만 ‘틀도록 놔두는 게 좋겠다’고 서병수 시장에게 말씀하셨다고 적혀있더군요. 이 같은 발언은 어떤 법적 근거를 통해 이뤄진 것입니까? 부산시장을 직접 만나셨나요? 서병수 시장은 끝내 <다이빙벨>을 보지도 않은 채, 시종일관 ‘편파적이고 나쁜 영화’라는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혹시 친박 정치인 서병수에게 ‘틀도록 놔두는 게 좋겠다’는 위원장님의 조언 보다 ‘편파적이고 나쁜 영화’라는 위원장님의 판단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요?

만일 청와대의 지시가 없었어도 바쁘신 김동호 위원장님께서 <다이빙벨> 사전 모니터를 하셨을까요? 모니터는 진정 청와대 지시에 의한 것은 아니었는지요? 만약 모니터 결과 ‘편파적이고 나쁜’ 정도가 용인할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하셨다면 그때도 ‘틀도록 놔두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영화제에 아직 상영도 안 된 영화를 대통령 직속 장관급 위원장이 사전 모니터하는 것이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궁금한 김에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2014년 당시 베를린영화제는 부산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다이빙벨>을 초청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하고, 해외 관객들 눈높이에 맞춘 수정본을 요청해왔습니다. 2개월간의 재편집과 보완을 거쳐 7분가량 늘어난 <다이빙벨> 확장판이 전달됐습니다. 하지만 베를린영화제측은 개최 직전 초청을 돌연 취소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베를린영화제측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the most influencial person)가 ‘이 영화를 상영할 경우 한국 영화계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라고 압박을 가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년간 베를린측에 그 인사가 과연 누구인지 물었으나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인사’가 절대 김동호 위원장님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위원장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인 만큼 오해받으실 소지가 있습니다. 혹시 해외영화제에 압박을 행사했다는 부당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베를린영화제측에 정식으로 ‘그 인사’가 누구였는지 공개를 요구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부산영화제는 부산시민은 물론 전국민이 기다리는 세계적 축제입니다. 이 축제를 키우는데 산파역할을 수행해 오신 김동호 위원장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부산영화제의 독립성 확보 여부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마당에, 위원장님께서 영화제에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여느 정치인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명쾌한 답변을 통해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뒤늦게 부산영화제를 사랑하게 된 <다이빙벨> 이상호 기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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