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옥님의 미디어오늘 기고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는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댓글과 항의 전화가 폭주했고 후속 기고도 쏟아졌고요. 미디어오늘은 이 주제와 관련한 기고를 대부분 수용했습니다. 일부 맞춤법 등을 손본 것 외에는 거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전문 게재했습니다. 공론의 장에서 드러내놓고 논쟁을 펼치고 결론을 도출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1. 이선옥님은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으로 혐오를 배격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넥슨 성우 교체 사건에서도 서로 낙인을 찍으면서 사태 해결보다는 갈등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는 거죠. 약자와 강자의 대립이나 정의와 불의의 충돌로 양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극단주의자들과 선을 그어야 하고 같은 이유로 메갈리아 셔츠를 입은 성우에 대한 항의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2. 다음날 들어온 이선영님의 기고 “남성혐오라고요? 남 탓할 때가 아닙니다”는 메갈리아의 남성혐오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배치되는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합니다. 당한 것만큼 갚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메갈리아에 장애인과 성소수자 차별 발언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걸로 메갈리아를 일베와 동급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 지점에서 이선옥님과 이선영님의 인식의 간극이 크게 벌어집니다.

3. 김영환님의 기고 “‘너 메갈이야?’ 이 한 마디로 모든 걸 덮을 수 있나”는 논지가 다소 거칠긴 하지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교체된 성우가 열성 메갈리안이었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부당해고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고작 티셔츠 한 장 때문에 교체된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양심의 자유는 지켜져야 하고 직업활동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논평도 허용되지 않을만큼 메갈리아에 문제가 많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죠.

4. 매일신문에 실린 진중권님의 기고 “나도 메갈리안이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중권님은 “일베는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그것을 떠받치는 것은 자신은 일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야무지게 착각하는 빙산의 거대한 밑동”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 차별과 메갈리안의 미러링을 대비되는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여성들이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를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5. 정희진님은 오늘 아침 한겨레에 실린 기고에서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 집단”이라고 힘을 싣고 있습니다. 정희진님은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이제까지 남성의 여성에 대한 혐오를 돌려준다기보다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언어를 사용할 때 사회의 반응, 그 자체를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 그들의 운동 방식일 수 있다는 거죠. 이들을 과연 여자 일베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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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지윤님은 미디어오늘 기고 “‘페미나치’라고? 왜 기울어진 운동장을 못보나”에서 “메갈리아를 매도하며 화를 내는 사람들은 사실 메갈리아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을 잘 들어가 보지도 않은 것 같다”고 지적합니다. “메갈리아에 모인 여성들을 움직이는 정서와 동력은 ‘혐오’라기보다는 ‘공포와 분노’”라는 겁니다. 이제 겨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입을 다물라고 말하면서 메갈리아 전체를 매장하려 한다는 거죠.

7. 김민수님은 기고 “넥슨 사태는 자본에 의한 페미니즘 탄압이다”에서 “메갈리아가 미러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남성의 권리를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여남평등을 실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구타할 권력, 강간할 권력, 살해할 권력을 박탈시키려 하는 것”이고 “그러한 권력이 남성으로부터 박탈될 때 비로소 여성혐오적 구조에 의해 남성에게 씌워졌던 잠재적 가해자라는 혐의가 풀리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8. 김시습님은 좀 더 신중하고 중립적인 논조의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남혐의 당위 인정하지만 혐오의 악순환 피할 수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여혐과 남혐이 어떤 동기에서 출발했든 “혐오의 최종 귀착지는 개인”이라고 지적합니다. 남혐은 없다는 게 정희진님 등의 주장이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혐오는 폭력이고 반사와 반향이 반드시 대칭되지 않으며 결국 혐오의 악순환을 부를 수 밖에 없다는 게 김시습님이 우려하는 바입니다.

9. 박가분님의 기고 “메갈리아 논란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 불편한 진실”은 논점을 다시 처음으로 되돌립니다. 박가분님과 이선옥님은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를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으며 성우의 교체는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넥슨에 항의한 건 일베가 아니라 “다수 상식인의 눈에 정신 나간 짓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라는 거죠. 박가분님은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애초 동기와 무관하게 이미 실패한 수단이라고 규정합니다.

10. 최근 정의당 상황은 박가분님 같은 주장이 당 지도부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합니다. 애초 성우 교체를 비판하는 논평이 모호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논평을 철회하는 과정은 더욱 문제였죠. 홍명교님은 기고 “반여성주의에 굴복한 정의당, 퇴행을 넘어 자멸로 가나”에서 “‘메갈리아=일베’라는 공식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여성주의-남초 커뮤니티의 일방적 주장에 사실상 백기투항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합니다.

이 사건은 진보진영에서도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드러냈습니다. 정의당의 논평 철회를 두고 한쪽에서는 반여성주의적 주장에 휘둘린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여성주의와 무관한 문제로 애초에 논평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메갈리아를 페미니즘의 영역으로 끌어안느냐 배제하느냐를 두고도 의견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일베에 맞서는 유일한 당사자 집단이라는 평가와 결국 여자 일베일 뿐이라는 비난이 엇갈리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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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메갈리아 셔츠를 입은 게 남성혐오냐. 그렇지 않습니다.
메갈리아 셔츠를 입은 성우의 교체를 요구한 게 여성혐오냐.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는 다르다고 주장하거나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거나 이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내가 메갈리안이다”를 외치는 사람들 모두가 남혐에 빠져 있는 건 아니고 일부 문제되는 표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소 과장되게 알려지기도 했고 그걸로 메갈리아를 일베와 동급 취급을 하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 이건 메갈리아 티셔츠는 아닙니다만.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는 것만으로(후원의 의미가 있었다고는 하나) 남혐에 동참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페미니즘 운동 차원에서 메갈리아와 연대하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두 일베를 미러링하고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닙니다.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은 성우의 교체를 요구했던 사람들을 모두 일베나 반여성주의자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여성운동 진영에서도 메갈리아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어쨌거나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메갈리아의 성격을 규정하는 게 그만큼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되겠죠.

메갈리아에 설령 남혐 정서가 강하다고 한들 사회 구조적인 여성차별과 메갈리아에서의 남혐을 동급에 놓고 배격하는 건 ‘오버’입니다. 일베는 여성차별 또는 여성혐오(미소지니)의 극단적인 양상일 뿐이지만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그 자체로 운동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혐오(여혐)에 혐오(남혐)로 맞선다 또는 여혐도 나쁘지만 남혐도 나쁘다는 식의 도식화는 자칫 여성차별의 구조를 외면하고 일베와 메갈리아의 일탈로(일베나 메갈이나 식으로) 단순화할 우려가 있습니다. 메갈리아의 탄생이 어땠든 메갈리아가 상당수 여성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일베와 메갈리아가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나 기본적으로 힘의 균형이 다르죠. 남성은 여성을 차별할 수 있지만 여성은 차별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게 현실이고요. 메갈리아에 대한 공격은 자칫 차별에 대한 저항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묵살할 위험도 있습니다. 온건한 저항만 가능하도록 억압하는 것이죠.

▲ Beyonce. Gala MTV VMA 20014.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메갈리아가 미러링을 한다는 명분으로 과도한 혐오 표현을 걸러내지 못한다면 통째로 일베 취급 받는 걸 피하기 어렵게 될 거라는 겁니다. 전체든 일부든 혐오가 폭력으로 진화하고 그 일부가 메갈리아 전체를 규정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일베가 그런 것처럼 메갈리아라는 낙인이 일자리를 잃게 만들 수도 있고요. 메갈리아는 일베와 다르다고 주장해도 모두를 설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는 것이 여성차별에 대한 저항의 표현인지 메갈리아의 혐오 정서에 동참하는 것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해고된다면(실제로 이 경우는 해고가 아니라 교체였지만) 이에 연대해서 맞서 싸우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정의당 논평처럼), 애초에 혐오 표현을 남발하는 일베 취급 받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거나 연대·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사람들(논평 철회를 요구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양시양비론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메갈리아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미러링 수준을 넘어 메갈리아가 직접 혐오 정서를 확대 재생산하는 여성 일베로 진화할 우려도 있습니다. 선을 긋지 못했다면 메갈리아 회원들의 책임이기도 하고요. 다만 현재로서는 단순히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퇴출을 이야기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울러 메갈리아에 쏟아진 과도한 비판의 이면에 남성들의 편견이 깔려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종류의 혐오에 반대한다는 건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이런 경우에는 편견을 감추고 논점을 흐트러뜨리는 수사로 이용될 위험이 있습니다.


아래는 관련 기고 묶음.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 이선옥.
남성들이 "내가 언제 여성을 혐오했냐"고 묻는 이유 / 장슬기.
남성혐오라고요? 남 탓할 때가 아닙니다 / 이선영.
"넥슨 사태는 자본에 의한 페미니즘 탄압이다" / 김민수. 
"너 메갈이야?" 이 한 마디로 모든 걸 덮을 수 있나? / 김영환.
"메갈리아는 남성 혐오가 맞습니다"/ 박성호.
'페미나치'라고? 왜 ‘기울어진 운동장’을 못 보나 / 전지윤.
여성 78%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혐 범죄", 남성은 48% / 금준경.
남혐의 당위 인정하지만 혐오의 악순환 피할 수 없다 / 김시습.
반여성주의에 굴복한 정의당, 퇴행을 넘어 자멸로 가나 / 홍명교.
메갈리아 논란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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