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텔레비전의 화면은 일상적 정치투쟁이 진행되는 핵심적 장소이다. 국민들의 여가시간에서 텔레비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더욱 그렇다. 텔레비전은 때때로 정치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도 하고 적당하게 탈정치화시키기도 한다. 보다 교묘하게 문제의 핵심을 비켜나가거나 핵심적 의제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정치드라마는 더 직접적으로 이런 기능을 수행한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정치드라마,〈제4공화국〉과〈코리아게이트〉는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노 전대통령 비자금 및 1992년 대선자금 사건과 맞물려 국민들의 대단한 관심속에서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진행중인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섣불리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국민들의 역사인식에 미치는 정치적 효과가 매우 크고 현재의 단기적 정치정세와 밀접히 연관된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방영된 부분에 대한 잠정적 평가가 필요하다.

80년 정치상황 제시‘성공적’

이 두 드라마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의 정치상황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데 일단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가 공식적으로는 보지 못했던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TV화면에 등장했다. 한국정치에서 미국 CIA등 고위인사들의 개입사실을 의제로 삼았으며, 정치군인들의 생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5·18의 실상을 부분적으로나마 전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그만큼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며, 방송에서의 금단의 영역이 허물어졌다는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방영된 시기적 맥락도 유의미한 것이었다. 1995년은 5월 학살자 처벌요구가 전국민적으로 확산되고,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참패한 시기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국의 초첨은 5월 특별법 제정이 아니라 노태우 전대통령 부정비리사건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최초의 국민적 요구를 벗어난 것이며, 의제변경을 통한 국민적 요구 비켜가기의 국면이라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프로그램은 1979-80년 상황의 증요성을 계속 잊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드라마들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져 있지 않은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는 시청자로 하여금 이것이 곧 진실이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역사적 진실규명의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대리만족, 또는 가상적 만족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

현 집권세력 테두리서 전개‘한계’

또 다른 위험은 드라마의 내용상 현재의 재배세력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이 용인할 수 있는 경계를 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군부가 1980년 5월 당시에 세김씨를 왜 다르게 다루었는가. 한 사람은 내란의 수괴로 사형을, 다른 한 사람은 부정부패로 구금을 했던 데 비해 나머지 한 사람은 가택연금으로 처리 했던 배경은 무엇이었는가를 극중에서 묻지 않은 것은 이런 예에 속한다.

드라마의 주요 줄거리를 대체로 별들의 갈등으로 표현한 부분도 지적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무의식 중에 역사가 몇몇 지도자들이‘다르게 행동했더라면’달라졌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그러나 당시 지배집단내의 갈등에 초첨을 맞춤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유신체제나 최규하 과도 체제를 비판하거나 저항했던 사람들의 고뇌는 실종됐다. 1980년의 상황은 지배집단내 갈등 뿐만 아니라 일부 지배집단과 민주화를 원하는 다수 국민의 말없는 전쟁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몇 몇‘영웅’들을 창조해야 할 때가 아니라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과 무서운 힘을 보여주어야 하는 때이다.

또한 정치군인들에 저항했던 보다 많은 충직한 중견장교들을 보여주는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장군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그 아래 계급들에서 예편해야 했지만 그 장군들 못지 않게 훌륭한 군인들이었다. 사실 유신체제하에서 장군에 올랐던 사람들은 충직한 군인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정치군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시청자들은 왜 그 프로들이 이 시점에서 거의 동시에 경쟁적으로 만들어졌나에 대해 궁금해한다. 오직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사명감의 발로라고 생각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궁극적으로 이 드라마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유신체제의 진정한 청산으로 국민들을 나아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왜곡을 낳을 것인가에 답해야 하겠지만, 해묵은 잘못된 역사의 청산을 위해서는 해결의 순서를 잘 잡아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도 외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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