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의 합헌을 결정한 오늘까지도 우리나라 주요 신문 1면은 뒷돈과 청탁, 비리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28일자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정부가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단속하는 법이다. 2012년 8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정안을 발표했고, 2015년 3월 여야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재석의원 247명 중 찬성 226명)했다. 법의 필요성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그러나 2015년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수정안에 법 적용대상으로 언론인이 포함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2014년 7월10일자 중앙일보 1면기사 제목은 ‘김영란법, 위헌 소지 없다’였으나 이듬해 김영란법 통과 이튿날 1면기사 제목은 ‘위헌 소지 알고도 그냥 가자는 국회’였다.

2012년 입법안에는 KBS·EBS 종사자만 단속대상이었지만 수정안에는 언론사 종사자 9만여 명이 포함됐다. 직무와 관련되지 않아도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은 언론인은 형사처벌을 받게 됐다. 언론의 태도는 변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월 사설에서 “이대로 가면 적용 대상자가 공직자 본인과 그 가족을 합쳐 최대 2000만 명이나 된다. 국민의 거의 절반이 잠재적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이라 주장하며 “검찰·경찰의 힘이 커져 수사권이 남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법의 ‘과잉 규제’가 ‘언론인을 포함한 일반인’의 일상에 영향을 준다는 취지였다.

당장 “수천만 국민이 처벌대상이 된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해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참여연대)이라는 반론이 나왔지만 대한변호사협회·한국기자협회가 위헌을 주장하며 김영란법을 둘러싼 프레임은 ‘부정부패 척결’에서 ‘위헌’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28일 언론인 포함여부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은 언론인과 취재원의 통상적 접촉 등 정보의 획득은 물론 보도와 논평 등 의견의 전파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서 언론인의 법적 권리에 어떤 제한도 하고 있지 않다”며 한국기자협회의 위헌심판청구를 각하했다.

▲ 헌법재판소가 28일 김영란법에 위헌 소지가 없다고 결정했다. 사진은 헌법재판관들의 모습. ⓒ포커스뉴스
한국기자협회는 반발했다. 헌재 결정에 대해 28일 성명을 내고 “김영란법이 위헌 소지가 다분하고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최종 포함됨으로써 앞으로 취재 현장은 물론 언론계 전반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해졌다.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재 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기자들이 취재원을 만나는 일상적인 업무 전체가 규제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국기자협회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김영란법의 취지와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기자사회 내부에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고 밝히면서도 “엄연히 민간영역에 속하는 언론이 공공성이 크다는 이유로 공공기관, 공직자로 규정되고 언론활동 전반이 부정청탁 근절을 위한 감시와 규제 대상이 되는 상황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한국기자협회 성명을 두고 정작 기자협회 회원인 기자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YTN의 한 기자는 “(법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언론이 상식을 해치는 것들에 대해 견제를 하고 있는지 성찰을 선행하고 나서 제기할만하다”고 지적했다. MBC의 한 기자는 “김영란법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우리 사회의 병폐가 어느 집단에 기인했는지 알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은 “경남도민일보는 사내에서 (김영란법 이상의) 엄격한 규정을 준수해왔지만 취재와 보도에 아무런 제약을 받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한국기자협회를 가리켜 “언론장악 청문회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는 침묵을 지키면서 엉뚱한 김영란법 저지에 앞장서며 전체 기자들을 욕먹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한국기자협회의 주장은 왜 회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걸까. 애초부터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상황은 언론인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부족한 상황에서 ‘언론 자유’를 운운하며 위헌 소송에 나선 것이 오히려 불신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부패지수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데 민간부문의 부패 정도도 이에 못지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민간부문 부패는 세월호참사의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고 지적하며 “언론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된 분야고, 국민들은 이 분야의 부패 정도가 심각하고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 카메라를 설치한 취재진의 모습. ⓒ포커스뉴스
이와 관련 KBS출신의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세월호 참사 때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랑 취재랍시고 밥 같이 먹으면서 밥값 안 낸 데스크급 이상들은 그냥 조용히 해라. 김영란법 때문에 앞으로 취재활동을 하면서 끊임없는 자기검열에 시달릴 것이라고? 너희들이 언제 무슨 취재를 했는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민간부문에 개입하기보다 자체적인 부패 근절 노력을 지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에 대해 “언론계에 부정청탁이나 금품 등 수수 관행이 오랫동안 만연해왔고 크게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국민 인식 등에 비추어 볼 때 언론계의 자정노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입법자의 결단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기자들은 정부부처와 술자리에서 안마시술소 접대를 받아왔으며, 올림픽이 열리면 정부부처로부터 해외 호텔숙박비를 지원받고 룸살롱 접대를 받았다. 은행 출입기자들은 은행 돈으로,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방위산업체 돈으로 해외 취재를 빙자한 관광에 나섰다. 골프기자단은 코스의 특징을 취재한다는 명목으로 라운드에 참여하며 단 한 번도 돈을 내지 않았다. 음료비·저녁만찬부터 수십 만 원 상당의 골프 의류와 대리운전비까지 챙겨갔다.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청와대가 티켓 가격을 부담한 연극 ‘멕베스’ 공연에 지각한 뒤 청와대 기자단을 위해 준비된 지정 좌석을 요구하며 언쟁을 높이다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 지금껏 언론인들이 누려온 부당한 특권이 오늘날 김영란법을 만들었다. ⓒ권범철 화백
지금껏 언론인들이 누려온 ‘특권’은 수십 년 간 국민들의 뇌리에 쌓여왔고, 결국 오늘날 김영란법의 탄생에 일조했다. 혹자는 ‘과거의 선배들만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억울해할지도 모르겠으나, 세상이 바뀌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권력에 의해 법이 남용될 경우 언론의 자유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소지는 있지만 이 문제는 취재 관행과 접대 문화의 개선, 그리고 의식 개혁이 뒤따라가지 못함에 따른 과도기적인 우려에 불과하며, 법에 의해 직접적으로 언론자유가 제한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언론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언론인에게도 공직자에 버금가는 높은 청렴성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지금 언론계는 ‘법이 없는 한 언론은 구제불능’이라는 사회적합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성찰해야 한다. 이번 헌번재판소 결정과 관련,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그간 공짜 밥·공짜 술 먹고 골프 치고 명절에 선물 받는 걸 본업으로 삼아오신 분들이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잃고 이 바닥을 떠나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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