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8일 일명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이 직무 연관성이나 대가성이 없이도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의 돈을 받으면 처벌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날 헌법재판소는 대한변협과 한국기자협회 등이 해당 법률 적용대상자에 공직자가 아닌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되는 점이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평등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낸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했다.

김영란법은 2015년 3월 27일 공포되었으나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된다는 점, 배우자의 금품 수수 신고 의무 조항이 연좌제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위헌 논란이 일었다.

▲ 박한철(가운데) 헌법재판소장과 법관들이 김영란법 위헌 여부 결정을 위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이 언론인 등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가 포함될 수 있다는 조항에는 7:2로 합법 결정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은 언론인과 취재원의 통상적 접촉 등 정보의 획득은 물론 보도와 논평 등 의견의 전파에 이르기까지 언론인의 법적 권리에 어떤 제한도 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헌재는 “청구인들의 주장과 같이 국가권력에 의해 법이 남용될 경우 언론의 자유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소지가 있지만 이 문제는 과도기적인 사실상의 우려에 불과하다”며 “법 조항에 의해 직접적으로 언론의 자유 등이 제한된다고 할 수 없다”고 전했다.

또한 헌재는 입법목적도 정당하다고 밝혔다. 헌재는 “언론과 교육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에게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구된다”며 “부패와 비리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언론과 교육 부문의 현실과 언론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하면 언론인 및 사립학교 관계자를 공직자에 포함시키는 선택은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영란법 법 적용대상에 해당된 언론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기자 사회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반응과 법이 남용돼 언론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반응이다.

▲ 헌법재판소장과 법관들이 김영란법 위헌 여부 결정을 위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경제전문지에 재직하는 A기자는 “쥐 잡듯이 잡으면 3만원, 5만 원 이상 받은 게 나올 수 있다”며 “정부나 기업에 불편한 기사를 쓰면 어떻게든 잡아서 제보를 하는 식으로 남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주간지에 재직하는 B기자는 “밥 얻어먹는 것으로 처벌을 하는 게 과한 면도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언론인이 미치는 영향력이 공무원 못지않게 파급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본다”라며 “또한 언론인이 밥 얻어먹는 행위가 국가가 제약할 수 없는 기본권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경제지의 부장급 C기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이후부터는 조심하라고 후배들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브리핑에서 헌재 합헌 결정을 취재하던 기자는 동료 기자를 향해 "공직자님"이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에 한 기자는 "공직자는 아니고 공직자 '등'에 포함되는 '등'이지. 우린 '등'이다"라며 농담을 받았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인 공직자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가 포함되는 것 외에 문제가 된 것은 법 적용대상자들의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 이를 신고해야 한다는 법 조항이다. 이에 재판 청구인들은 “청구인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하고 있으므로 청구인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 주장에도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 조항에 대해 5:4로 합헌결정을 했다. 헌재는 “배우자가 금품을 받는 것은 당사자가 금품을 받는 것과 사실상 마찬가지”라며 “이런 경우 배우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로 하여금 신고하거나 반환하도록 했고, 당사자가 만약 처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에 연좌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박한철(가운데) 헌법재판소장과 법관들이 김영란법 위헌 여부 결정을 위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반면 김창종 재판관과 조용호 재판관은 “부패 행위를 근절한다는 이유로 사회의 모든 영역을 국가 감시망 아래 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직무의 성격상 공공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의 본질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추상적인 이익을 위하여 민간영역까지 법의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효율성의 측면에서도 결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재판관 3명은 금품 수수 가액 하한선을 대통령령이 아니라 국회에서 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김영란법은 해당 법 8조 제1항에서 정한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 초과 기준’과 함께 금품 수수에 대한 자세한 금액 설정은 대통령령에 따라 정해지게 돼있다.

이정미, 김이수, 안창호 재판관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가액 기준은 공직자뿐 아니라 국민들의 행동방향을 설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행정부나 사법부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입법부가 담당하여 법률의 형식으로 수행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김영란법은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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