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씨가 드디어 구속됨으로써 이제 비자금 수사의 초점은 대선자금 문제와 뇌물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재벌들의 사법처리 여부로 옮아가고 있다. 이중에서 재벌수사를 다루는 언론의 최근 보도는 이 기회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시켜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정경유착의 악습을 없애야 한다는 대전제엔 동의하지만 기업인들이‘상처’를 받아 경제 전반에 나쁜 영향을 주어서는 곤란하다는 논리가 신문보도에서 많이 보였다.‘고양이 앞의 쥐’였다는 동정론도 나왔다. 특히 재벌들이 소유한 언론사의경우는 이같은 편향이 심했다.

‘정경유착이 기업 탓인가’라는 제목의 11월 16일자 중앙일보 사설은 차라리 신경질적이었다. 이홍구 총리의 14일 외부이사제 도입 발언을 문제삼은 이 글은 노태우씨 사건이“기업의 사건이 아니라 노씨의 사건임을 왜 간과하느냐”고 당당히 묻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가 더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기업내부보다는 정부 및 관료내부임을 강조한다고 점잖게‘충고’까지 하고 있다. 정경유착이란 것이 권력의 일방적인 요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에도 이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재벌의 잘못된 성장전략에 대한 질타는 물론 이 기회에 거듭나야 한다는 충고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중앙일보는 경제섹션을 활용, 15일‘비자금 파문 빨리 가라앉혀야’등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편집방침을 보였다. 재벌의 언론소유가 가져오는 부작용의 한 단면을 확인하는 심정이다. 16일자 경향신문의 사설도‘초록은 동색’임을 보여준다. 갖은 규제와 관치금융의 악습부터 정부가 제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치금융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재벌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주장은 가소롭기조차 하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중산층을 끌어들여 증시위기설을 퍼뜨리는‘기업인 구속 등 악재땐“캄캄”제목의 16일 11면 톱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급기야 조선일보는 17일자 경제면에서‘정치가 경제를 죽인다’라는 제목으로 재벌들의 절규를 전하고 있다. 이 기사는 79년 2월부터 현재까지 국내 경기의 불황과 정국불안이 묘하게도 겹쳐 일어나고 있어 비자금 정국의 파장이 경제위기로 치닫지 않을까 탄식하고 있다. 비자금을 들쑤셔 재벌을 구속한다 해서 국민에게 득 될 것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위협’으로까지 들린다.

물론 경제인의 구속이 경제에 주름살을 지우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며 기업이 위축되면 국민경제도 움추려 든다. 그러나 기업의 체질개선 노력에 항상 걸림돌이 돼왔던 재벌이 이 기회에 자의이든 타의이든 발전전략을 재인식하게 되면 경제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며 부패로 얼룩진 기업의 대외신용도도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 민실위의 판단이다.

최근 보도된 한양의 재기도“기업주가 망해도 기업은 산다”라는 새등식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언론이 지금처럼 단순히 경제가 위축된다라는 위기론을 퍼뜨려 그 처리에 차별을 둔다면 다만 악습의 재연만을 가져올 뿐이다. 여기서 로이터통신은 17일“한국정치의 위기는 정경유착의 부패고리를 단절시킴으로써 한국경제에 오히려 이득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도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다. 여기에 한국언론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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