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성우 교체 사건을 계기로 메갈리아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의당이 관련 논평을 냈다가 철회한 데 대해 정의당 일부에서 출당 조치와 당 차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갈등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홍명교 오늘보다 편집위원이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홍명교 위원은 논평이 문제가 아니라 철회가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정의당 내부의 현안일 수도 있으나 여성주의와 진보정치의 역할을 묻는 내용이라고 판단돼 게재합니다. 역시 관련 반론이나 추가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아래는 관련 기사 묶음.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넥슨 성우 논란, 기자들 신상까지 털어 공격했다
정의당, 메갈리아 관련 논평 ‘철회’
남성들이 "내가 언제 여성을 혐오했냐"고 묻는 이유
남성혐오라고요? 남 탓할 때가 아닙니다
정의당 성우교체 사건 논평 철회는 노회찬 지시?
"넥슨 사태는 자본에 의한 페미니즘 탄압이다"
"너 메갈이야?" 이 한 마디로 모든 걸 덮을 수 있나?
"메갈리아는 남성 혐오가 맞습니다"
'페미나치'라고? 왜 ‘기울어진 운동장’을 못 보나
정의당 논평철회에 출당요구까지 계속되는 의견충돌
여성 78%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혐 범죄", 남성은 48%
남혐의 당위 인정하지만 혐오의 악순환 피할 수 없다


최근 ‘메갈리아’를 둘러싼 정의당 당원게시판의 논란이 정의당이라는 조직의 앙상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 여성주의에 대한 몽매함에서 그러하고, 둘째는 리더들의 현저하게 미진한 정치적 판단력, 셋째는 정의당이 안고 있던 문제들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앙상함을 보다 명징하게 드러내고, 냉정하게 진단해야 이후 정의당이 새롭고도 온전하게 제대로 된 진보정당의 길을 갈 수 있기에, 그 다층적 문제들과 딜레마에 대해 보다 활발하게, 가급적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 여성주의에 대해선 워낙 많은 논의가 제기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덜 제기되고 있는 리더들의 판단력 문제와 정의당이라는 조직의 정치적 공백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상무위 결정은 불가피했는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지난 25일에 열린 상무위원회 결정이 적절했는가 혹은 불가피했는가에 대해 따져보자.

당연히도 적절하지 않았다. 불가피한 결정도 아니었다. 정의당 상무위원회는 정의당이 당으로서 안고 있는 모순을 당 문예위원회의 ‘일못’에 떠넘기고, 나아가 ‘메갈리아’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답도 하지 않은 채 문예위 논평이 그 진의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 실패하고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근거를 들어 논평을 철회시켰다.

그럴듯한 사유를 들고 있지만 ‘메갈리아 = 일베’라는 공식을 중심으로 형성된 반여성주의-남초커뮤니티의 일방적 주장에 사실상 백기투항한 것에 다름 아니다. 우선 이 이슈는 그간 정의당이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가급적 논평을 내왔다는 점에서 볼 때, 우회할 쟁점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논평할 만한 사건이었고, 당내의 옅은 합의 수준에서도, 언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치적 견해 때문에 일할 권리가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대단히 상식적인 수준의 논평이 나왔으나, 상무위원회는 마땅한 근거 없이 이를 철회시켰다. 우려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메갈리아와 연관되어 해석될 소지’가 있었으나, 메갈리아와 연관된 것 자체에 대해 판단해왔던 준거 따위는 당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밖에 자질구레한 실수와 아마추어적 일처리 등 결함도 있었으나 논평을 철회시킬만한 과오는 아니었다.

그간 정의당은 메갈리아라는 인터넷상 현상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바 없으나, 일련의 여성 이슈에 대해 여성주의 지평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입장을 견지해왔고, 메갈리아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린 바 없다. 요컨대 ‘메갈리아’에 대한 부정적 해석은 상무위원회 판단을 주도한 일부 정치인의 판단일 뿐, 당내, 아니 당직자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토론된 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상무위원회는 당게 상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움츠려들어 정당하지 못하고, 심지어 민주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렸다.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운영

이것이 드러낸 징후는 자명하다. 정의당이 일부 ‘스타정치인’의 취향과 그때그때의 ‘감’에 의해 자의적이고 독단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는 사실이다. 보수정당이건 진보정당이건 이런 조직이 멀쩡하게 지속될 리 만무하다.

물론 뛰어난 구성원에게 더 큰 발언권이 주어지는 건 때때로 좋은 결과를 빚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판단이 상당한 공백과 오류를 안고 있다는 점과 그간 당내의 여러 잡음을 비춰 봤을 때, 과연 노심 등 리더들의 ‘큰 발언권’이 ‘좋게 쓰였는지’ 의구심이 든다. 요컨대 어떤 조직이든 리더그룹이 좋은 판단을 한다면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닐 게다. 그러나 판단들을 주동하고 좌지우지하는 리더그룹이 ‘나쁜 판단’을 한다면, 그 조직은 심각한 문제에 빠진 것이라 보는 게 맞다. 상무위원회의 결정은 방향도 잃고, 당위도 잃고, 지향도 잃은 ‘나쁜 판단’이었다.

리더는 모든 사안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에 해당 사안에 대해 모를 수 있다. 그땐 최대한 의견들을 수렴하고, 민주적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상무위는 그마저도 갖지 않았고, 이는 비단 이번 사건에서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한 것은 상무위 결정

상무위의 판단대로 ‘텍스트엔 문제가 없’으나 ‘메갈리아와 연관되어 해석될 소지가 있’고, 그래서 ‘보다 조심스럽게 논평을 냈’었다면 어땠을까?

논란의 논평보다 더 엄밀하고 잘 작성될 순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메갈리아 쟁점을 회피할 순 없었을 것이며, 일군의 반여성주의-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로부터 공격당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해당 티셔츠 인증샷 때문에 계약이 중단되었다는 이슈 자체가 ‘메갈리아’라는 토픽을 매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얼마나 잘 쓰였는가는 이 쟁점의 결정적 하자가 아니었다.

정의당에서 ‘실패한 논평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된 바 있는가? 자명한 오류를 갖고 있다면 수정 혹은 철회되는 게 마땅하지만, ‘진의’가 얼마나 전달되었는가를 과연 명백하게 가름할 수 있는 논평이었는가? 오히려 초기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술을 다소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유의미했던 측면을 지지하고, 여성주의 운동의 절박한 필요성을 주장하며, 동시에 정의당이 보다 여성주의적으로 혁신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다수 당원들과 시민들은 문예위의 논평이 별 문제가 없고, 상식적인 것이었다고 보고 있었다. 반대로, 상무위원회의 결정은 과정에서나 판단 자체로나 문제가 많다고 보고 있고, 여러 진보적 언론들도 그러하다. 상무위의 기대와 달리 논란은 더욱 커졌고, 부정적 방향으로 폭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무위가 그렇게 좋아하는 ‘결과론적 진단’, ‘진의 전달’의 측면에서 오히려 실패한 것은 문예위 논평이 아니라, 상무위의 문예위 논평 철회 결정 아닌가? 상무위원회가 늘어놓은 판단 준거들은 아무 설득력이 없다.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했으며, 나아가 정의당이 앞으로 여성주의적으로 혁신할 기회를 상당히 상실했고, 여성주의적 변화를 위해 노력해온 많은 당원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그렇다면 상무위원회의 결정은 당연히도 스스로에 의해 ‘철회’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문위 업무에 대해 김세균 대표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데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니 문제가 있다’는 결정 역시 자기모순이다. 그동안 과연 얼마나, 부문위 논평들이 그런 절차를 거쳤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누가 문제 제기를 했었는지 넌센스다. 실제로 공문구에 불과했다면, 보편타당한 평가가 있거나, 아니면 절차적 하자로 철회된 전례가 있었어야 했을텐데 그런 전례를 들어본 바 없다. 따라서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는 이유 역시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모호성에 기반한 맹탕 정치의 위험성

그동안 정의당은 진보정당의 위기 이후, 또렷한 자기 정치 없이 밍숭맹숭한 맹탕 정치를 펼쳐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경제, 정치, 사회가 큰 위기를 안고 있지 않은 호시절엔 이런 맹탕 정치가 별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과 같은 국제적인 수준의 위기의 시대, 불안한 정세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는 게 필요하다. 판단을 유보하고,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포지셔닝의 정치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양쪽 모두의 불만을 빚은 상무위원회의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불가피한 조건에서의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어정쩡함은 ‘반정치의 정치’를 구사하는 온라인-남초 커뮤니티들로부터 더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황당하게도 불과 1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문예위 활동가들의 ‘징계’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싸움까지 불사하고 있다. 원내 유일의 진보정당은 이렇게 개판 5분 전 상황까지 추락했다.

반대로 온라인 상 논쟁에 익숙하지 않고, 당 조직 전체의 위기 양상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상무위 결정을 비판하는 상당수의 열의있는 당원들은 당원게시판 상의 소모적 논쟁에 지쳐가고 있다. 각 지역과 현장에서 정의당을 보다 풀뿌리에 기반하고, 사회적인 정당으로 만들어가고자 했던 구성원들이 모종의 배신감 혹은 환멸감까지 느끼고 있다.

정치적 수준만 하락하는 게 아니라, 삶과 현장에서 고군분투해온 집토끼는 다 잃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산토끼에 휘둘리는 형국이다.

거듭된 퇴행

상기한 바와 같이 상무위원회의 황당무계한 판단은 정의당이 계속 안고 있던 딜레마와 문제점들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정의당은 그간 진보정치 스타들의 구색에 맞게, 어디든 달려가 ‘추수’부터 하고 보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여 왔다. 이런 결정이 잘못된 것만이라곤 할 수 없다. 사회운동의 와해 혹은 진보정당과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지지의 기반을 구축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정치인 개개인과 유명세에 기반해 여기저기서 지지를 끌어모으다보면, 아주 다양한 생각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직은, 조직을 둘러싼 환경이 위태로우면 위태로울수록, 사소한 쟁점들 하나하나에 따라 혼돈에 빠질 게 자명하다. 따라서 무조건 끌어모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끌어모으는 동시에 합의를 만들고 당원교육 등을 통해 주체 양성의 기획이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날의 정의당 리더그룹은 그런 노력을 거의 경시해왔다. 스타정치인들이 여기저기 당원교육 하는 게 무슨 주체 양성인가?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말만 늘어놓기 때문에 쟁점을 좁히고 합의를 만드는 과정과는 거의 무관하다.

따라서 설사 이번 사안에 대해 잠시 해결, 혹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지나다보면 문제는 더 커지고, 정의당은 점점 퇴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퇴행이란 양적 하락만이 아니라, 질적 추락이 훨씬 크다. 가뜩이나 ‘진보정당’, ‘대안정당’이기보다는 ‘너무 빨리 노쇠해버린 정당’이라는 평을 듣는 마당에, 이런 퇴행이 가져올 후과는 정의당 자신의 궤멸이기도 하겠으나, 나아가 진보정당운동 전체의 자멸에 다름 아니다.

반성 팽개치고, 혁신의 대상으로 추락하다

상무위원회는 일단 어떻게든 덮고 가보자는 식의 결정이 아니라, 내적 향상을 도모하지 않은 당의 수준이 이 지경까지 추락한 것에 대해 돌아보고, 심각한 수준의 혁신 결의를 발표했어야 했다. 리더들의 할 일이란 그런 것 아닌가?

몇몇 리더의 개인중심적 조직 운영, ‘일단 언론에 뜨고보자’ 식의 근시안적 마인드, 비민주적 소통 구조, 동시대적 사안에 대한 무지한 판단이 불러올 결과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참혹하다. 상무위원회의 반성과, 본질적인 자기 혁신, 나아가 정의당의 운영 방식과 교육 구조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자신의 정치 인생에 찬란한 시기를 열어보겠다는 조급한 야망이 자칫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걸고 일궈온 토대를 모조리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지금, 정의당이 내려야 할 결정

단기적, 중장기적으로 상무위원회 및 리더그룹은 아래와 같이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1. 문예위 논평 철회 결정에 대해 반성적 평가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나아가 리더그룹의 관성적이고 구태의연한 소통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2. 당게에 만연한 인종주의적, 성폭력적, 반여성적 게시글들에 대해 게시물 관리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며, 경고-게시 금지를 내리고, 해외 유수 정당들에는 존재하지 않는 현재와 같은 형태의 당원게시판을 폐쇄하고,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소통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3. 생태‧젠더 등 현대 사회의 진보정당이 가져야 할 화두들에 대한 비전을 수립하고, 각 부문위 또는 ‘본부’가 구체적인 사업 계획의 수립과 실천을 도모함으로써, 실제 혁신의 구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의원단은 의정활동에 집중하고, 이후 진보정당운동의 2세대 리더들이 중심이 되어, 당원교육 계획 수립과 활동가 양성, 소통구조 혁신을 기본으로 하는 혁신 방향을 세워야 한다.

5. TF팀을 비롯, 여성주의 운동 및 여성 정책, 혐오 범죄 등에 대한 당적 쇄신 방향과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여러 부문과 지역, 중앙 등에서 고민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결정함으로써, 정의당 내부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민주적이고 진취적인 토론과 실천의 기본을 재수립해, 21세기 진보정당에 걸맞는 방향으로 변모해야 한다.

맺으며

나아가 정의당 안에 이처럼 반여성적-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규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해당 ‘이용자’들이 자신을 ‘고객’으로 인식하고, 정치적 권리나 의무에 대한 인식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당원들을 서비스의 대상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당 운영 주체들의 관성,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에 대한 몽매함 등 여러 모순들의 반영이기도 하다.

여성 차별이나 폭력, 사회구조적 원인들에 대한 정의당의 인식은 조금도 치열하지 못했다. 때문에 정의당의 여성주의적 혁신은, 리더그룹부터 기층 당원들까지 모든 층위를 포괄할 수밖에 없다. 차후, ‘여성주의적 혁신의 방향’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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