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피로감’은 보수 언론이 만든 프레임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이 정부의 늑장과 방해로 막혀 버렸음에도 이에 대한 지적은 간과한 채 유가족의 반발이 시민 피로감을 부추긴다는 거다. 

정부는 쏙 빼고 시민과 유가족을 대립시키는 언론 프레임으로 손 안 대고 코를 풀어왔던 건 정부다. 

동아일보 사회부 김단비 기자는 28일 이 프레임을 다시 꺼냈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이 특조위 활동기간을 일방적으로 끝내버린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으로 단식 농성에 돌입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세월호 피로감’을 언급했다.

김 기자는 이날 “법 대신 농성 택한 세월호 특조위장”이라는 ‘기자의 눈’ 칼럼을 통해 “304명이 사망 실종한 세월호 참사는 국민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라며 “하지만 2년 넘게 광화문광장을 점거하고 있는 세월호 추모 천막은 이제 국민들에게 ‘진실 규명’보다도 ‘피로도’를 느끼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8일자 칼럼.
그러면서 “이 위원장이 진정으로 유족들을 대변하고 정부와 국민을 설득하고 싶다면 보다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이 위원장은 국민에게 이른바 운동권식 소통방식으로 공감을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고 밝혔다.

칼럼은 세월호 활동기간을 놓고 대립하는 특조위와 정부의 주장을 나열하며 짐짓 객관인 체 하지만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출신으로 누구보다 법을 지키고 대화와 설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할 그가 대화와 타협에 앞서 서울 도심에서 무작정 농성을 벌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 위원장을 겨냥한다.

“단식 투쟁은 쉽게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어 정치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카드”인데, 이 위원장이 이처럼 “운동권식 소통방식으로 공감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훈수를 둔 것이다. 

해당 칼럼에서는 정부의 특조위 방해 공작 등 단식 농성 배경이 된 맥락들이 “이념과 정치논리에 휘말려 진상규명 작업이 벽에 부닥쳤다는 주장”으로 뭉뚱그려졌다. 특조위 활동도 “그동안 이렇다 할 조사 결과를 내놓지 못한” 것으로 축소됐다.

지난 2년을 되짚어보면 정부의 특조위 방해 공작은 추태나 다름없었다. 

당장 하나 떠오르는 건 지난해 11월 해양수산부가 특조위의 청와대 조사가 개시되면 특조위 여당 추천 위원들이 전원 사퇴하고 항의 기자회견을 하도록 내부지침을 마련한 것. 

특조위 여당 위원들이 무엇을 위해 특조위에 참여했는지 드러난 사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야당에 “청와대를 조사대상에서 제외해 주면 조사기간을 연장해주겠다”는 제안을 한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김 기자는 세월호 특조위의 성과를 축소했지만, 지난 3월 2차 특조위 청문회를 통해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이 청해진해운 본사 지시라는 증언이 새로 밝혀졌고, 진도·제주 VTS 녹음파일의 편집 의혹도 제기됐다. 이 정도로는 김 기자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앞으로 특조위가 밝혀내야 할 사안이 더 많다. 미디어오늘이 단독 보도한 제주해군기지행 철근 400톤 세월호 과적, 참사 당시 청와대의 KBS 보도 개입 녹취록 등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참사 발생 2년여가 지난 뒤에야 해당 사안이 불거졌다는 점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묻혀있음을 보여준다.  

▲ 한겨레 28일자 1면.

김 기자 말대로 시민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면, 근본 원인은 세월호 추모 천막이나 유가족이 아니라 진상규명 활동을 봉쇄해버린 정부에서 찾아야 한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정부에는 침묵한 채 유가족이나 특조위의 농성을 비난하는 건 기자로서 비겁하며 못할 짓이다.

피로감은 일시적이다. 2년 동안 거리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유가족들은 나라에 대한 환멸과 모멸, 절망을 느끼고 있다. 진상규명이 되지 않으면 유가족은 이 감정을 안고 평생 살아야 할 것이다.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27일 토론회에서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세월호 참사의 직‧간접적 피해자의 68.5%가 “언론‧인터넷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언론이 ‘세월호 피로도’ 등을 운운하며 유가족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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