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대통령이었던 노태우씨의 부정축재에 의한 비자금 사건이 전 매스컴의 톱뉴스판을 뒤덮고 있다. 이 여파인 듯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계층의 참여와 울분 속에‘공소권 없음’규탄과 5·18특별법 제정의 요구가 절정에 이르던 뜨거운 목소리를 사실상 잠재운 듯이 보인다.

그러나 지난 16일 마침내 전직 대통령이 재벌을 상대로 한 부정축재형 뇌물수수사건으로 전격 구속 수감됨으로써 일단락 짓고 보완수사와 함께 기소와 재판의 긴 과정을 남겨놓게 됐다. 그동안 특종을 노려 환호작약(?)하던 언론들이 약간 허탈해 하면서 주춤, 김빠진 맥주식의 비자금 정국의 초긴장 상태에서 다음 정치놀이의 2막이 어디로 갈 것인가. 특종원을 찾아 특호활자의 탐색을 번득이는 것 같다.

우리 국민들도 이 희대의‘코리아 게이트’앞에 연일 분노와 규탄 속에 휘말려 그 천문학적 부정의 수치에 일종의 희열까지 느끼면서 오락가락 몽환극을 펼쳐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지금 우리는 언론과 정가, 특별법 제정을 요구받고 있는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5·18범법자 재판회부’에 관한 실질적 처리작업이 지연되거나 모종의 정치적 흑막 속에 상쇄되고 있음에 대해 새삼 긴장과 경악을 느끼게 된다.

과연 노씨 비자금 추문 공방정국은 무엇을 노렸으며 그 결말은 무엇이었던가. 부정의 크기와 분노의 중량으로 보아 그 천파만파의 정치적 효력에 대해 짐작하고도 남는다. 생각건대 인기 급강하, 당 해체위기와 개혁실종으로 인한 김영삼 정부의 무능이 만천하에 입증된 것이 지자제 선거다.

이후 김영삼대통령은 인기만회의 호재로 비자금정국을 이용하면서 세칭 승부수에 능하다는 김대통령식 빅쇼 한마당으로써 야권의 상승세 인기에 제동을 거는 효과까지 있었다. 그것이 노씨 부정축재 비자금과 직접 관련이 있는 김대중씨 부정정치 자금 수수사건이다. 정말‘김대중씨가 그 더러운 돈을 받았을까?’하는 의심에도 불구, 새삼 더러운 돈의 도덕성 문제가 등장하면서 야당 차기대권 도전자의 최대 무기인 양심과 정의가 쓸모없게 돼버린 것이다.

여당은 적어도 여기서 노씨 희생양 만들기에 성공하면서 내심 노려온 중간성과의 큰 수확을 챙긴 것이다. 중간 승리에 환호작약하는 승리파티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더티 플레이 정국, 야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거의 필사의 대반격으로 원색적 용어의 공방이 오가며‘설’을 전제로 한 상호부정의 숫자가 노씨 비자금시한폭탄 양상을 띠게 한다.‘한푼도 더 안 받았다’와 대선 정치자금 조사 수위조정·버티기 작전·여권의 우회작전 등 그 후속 막간극이 잇따라 준비되고 있다.

이러자니 앞장서서 5·18 범법자를 재판대에 회부해야 할 실질적 주역인 야당이 자기 발등 불끄기에 급급한데다 총선·대선 대비하느라 새로운 정치적 흥정에 들어서 있고, 여당의 딴전부리기·정면돌파 피해가기 등으로 5·18문제는 정치적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노씨 비자금 사건이 쇼로서 끝날 사건인가. 아니다. 이 문제의 시작도 끝도 5·18인 것이다. 노씨의 부정한 권좌는‘5·18광주의 학살’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것을 피하거나 덮어놓고 부정만 척결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간 김영삼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는 사실상 전·노를 5·18재판대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그 여부에 따라 김대통령의 정치 생명이 좌우될 것이다. 여야여, 그대들의 살 길이 무엇인가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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