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부산지역 해안가를 따라 퍼진 정체불명의 가스 냄새가 지진과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공포로 이어진 것은 자연스럽다. ‘괴담’은 권력에 의해 정보가 통제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날 신고전화만 200여 통이 들어왔지만 시 당국은 뚜렷한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언론은 어땠을까. 조선일보는 23일 가스냄새가 대지진의 전조현상이라는 주장을 소개하며 “냄새 원인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동안 각종 괴담이 퍼졌다”고 보도했다.

23일 울산에서도 22건의 가스냄새 신고가 이어졌다. 23일에는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 개미 떼가 출몰해 사람들 사이에는 지진 전조 현상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조선일보·중앙일보 등은 부산시 수영구청과 부산지역 교수들의 발언을 인용해 개미떼의 등장은 지진 전조로 보기에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해마다 죽은 개미 사체가 해수욕장에서 대거 발견되는데, 광안대교 불빛을 보고 찾아든 날 개미떼가 교미를 하고 바다에 떨어져 파도에 밀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미떼를 지진 전조증상으로 연결 지은 것은 괴담일 수 있다. 그러나 “괴담에 마음이 흔들리면 앞으론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우는 소리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을 것”(선우정 조선일보 논설위원 27일 칼럼)이라고 훈계하기에는 주류언론과 시당국·학자들이 내놓은 반박 또한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 7월25일자 국제신문 사설.

가스냄새가 논란이 된 부산과 울산 지역은 핵발전소와 석유화학단지 등이 밀집했다. 울산에는 중화학업체 1100여 곳이 모여 있다. 국제신문은 25일 사설에서 “신고 내용을 보면 이번 가스냄새가 예전과는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냄새 사태를 계기로 재난 점검 태세를 재정비하고 지진이나 원전 사고에 대한 만의 하나의 가능성까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울산 소방당국은 가스누출 여부를 조사했으나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부산시는 국민안전처에 조사 건의서를 보낸 상황이다. 최근의 일을 ‘지진 괴담’으로 치부하기에는 괴담을 주장하는 쪽도 정보가 없다. 냄새 하나로 지진 전조현상을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르지만 단순 괴담이라고 단정 짓는 것 역시 과학적 자세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언론이 최근 괴담으로 치부했던 상황들은 해외에서 과학적 사례로 남아있다. 1989년 10월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만에서 규모 6.9의 지진이 일어나 약 67명의 사망자와 30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을 당시 생존자중 한 명인 제니퍼 빙햄은 지진이 일어나기 몇 주 전부터 강한 유황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이 방송은 지진전문가들이 유황냄새 또는 계란 썩는 악취를 통해 지진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1906년 4월18일, 리히터 지진계가 보급되기 30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3km 떨어진 곳에서 리히터규모 기준 7.8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약 700~3000명이 사망했고 약 23만~30만 명이 이재민이 됐다. 당시 사고 이후 지진 전조현상에 대한 조사 결과 지진 지역에서 황화수소 냄새와 관련한 증언이 등장했다. 샌프란시스코 북동부지역 전체가 황 성분 냄새로 가득 찼다는 수많은 증언들이 나왔다.

▲ 최근 한 달간 지역별 아황산가스 농도 분포. 울산지역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
UC Berkley 지질학과 앤드류 로슨 교수팀 역시 샌프란시스코 부근에서 지진 발생 수일 전 강한 유황냄새가 진동했다고 기록했다. 증언자 중 한 명인 찰스 코비는 지진 이틀 전 그의 집 밑으로부터 유황냄새가 뿜어져 나왔다고 밝혔다. 지진발생 전 광범위한 지역에서 황 성분 악취경험이 있었다는 샌프란시스코 사례와 최근 울산지역 아황산가스 농도가 최고값 기준으로 주간평균보다 8배 높은 0.04ppm(한국환경공단 기준)이 측정된 사례는 과연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과학적으로 지진과 화산분화를 예측해 성공적으로 주민들을 대피시킨 사례가 있다. 1991년 4월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은 분화활동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해 5월 약 1800개의 미세한 지진이 측정됐고, 화학물질 측정기에서 아황산가스 농도가 평상시의 약 1000% 수준으로 증가했다. 화산활동 측정팀은 대규모 주민대표를 권고했고,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위험지역에서 대피했다. 그리고 그해 6월 피나투보 화산은 막대한 화산재를 분출했다.

동물이상행동 연구사례도 존재하고 있다. 미국 NASA와 칼세이건 센터를 비롯해 브라질·영국 등지의 동물행동학·지구물리학·천체물리학 분야 전문가들은 2015년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들의 가설은 대지진 직전 지각의 스트레스로 전자전하가 상승, 지표면을 통해 전리층에 고밀도의 양이온이 방출되고 그 결과 인간보다 예민한 동물들의 혈중 세로토닌 농도를 상승시켜, 거부반응을 회피하기 위해 양이온 밀도가 낮은 골짜기 등 저지대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 야나차가 전리층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전파에 잡힌 신호(PLO)는 2011년 페루 콘타마나 대지진이 일어나기 직전 대기 중 양이온의 급격한 상승을 보였다. 반면 지진이 없었던 아르헨티나(CAS)의 경우 대기 중 별다른 양이온 변화가 없었다. 출처=Changes in Animal Activity Prior to a Major (M=7) Earthquake in the Peruvian Andes (Grant et al, 2015).
이들은 2009년 이탈리아 라퀼라 지진(규모6.3) 직전 진앙으로부터 75km 인근 두꺼비들의 이상행동과 같은 시점 전파 소음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 전리층의 변동현상에서 논문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2011년 페루 야나차가 국립공원 능선에 총 9대의 동작탐지 카메라를 설치, 하루 24시간 동물들의 움직임을 촬영하는 동시에 전리층의 변동 상황을 모니터하기 위해 캐나다의 NAA 전파송신소에서 실험대상인 야나차가 국립공원 인근의 전파수신소(PLO)와 비교대상으로 아르헨티나의 또 다른 수신소(CAS)로 전파(VLF)를 보냈다.

야나차가 전리층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전파에 잡힌 신호(PLO)는 2011년 페루 콘타마나 대지진(규모 8.24)이 일어나기 직전 대기 중 양이온의 급격한 상승을 보였다. 반면 지진이 없었던 아르헨티나(CAS)의 경우 대기 중 별다른 양이온 변화가 없었다. 야나차가 국립공원에는 같은 시점 관측된 동물들의 수가 급격히 감소한 반면 비교집단인 아르헨티나에선 뚜렷한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진과 동물이상행동의 연관관계를 입증한 연구사례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해외 사례들을 소개한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은 2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괴담으로 규정하기 위해선 현대적인 방법을 통해 검증해야 하지만 지진 피해 경험이 부족한 탓에 우리의 경우 대응하는 자세부터 진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사회는 지진에 대한 구체적 정보나 대비 없이 300만 명 넘는 인구가 핵 발전단지와 각종 화학물질 취급시설이 몰려있는 곳에 거주하고 있다. 기상청이나 한국수력원자력의 답변만 마냥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 KBS 7월8일자 보도 화면 갈무리.
지진과 핵발전소에 대한 공포는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KBS는 지난 8일 “지진 가능성이 있는 활성단층이 부산에서 불과 12km 떨어진 바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탐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KBS는 “활성단층과 이 일대에 밀집한 원전들의 지진 안전성에 대한 정밀 재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월성원전 1호기 원자로는 지난 22일 오전 또 다시 멈췄다. 고장으로 정비를 마친 뒤 재가동한지 두 달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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