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인터넷과 SNS 상에서 참사 생존자들을 모욕하는 글이 쏟아졌으나 실제 재판을 받고 처벌 받은 사례는 단 2건 뿐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피해는 확산되는데도 참사 피해자들이 피해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27일 오전 10시 특조위 사무실에서 연구용역 결과발표 토론회를 열었다. 김인희 특조위 진상규명국 조사3과 조사관은 사전발표 자리에서 “참사 생존자를 명예훼손, 모욕하는 게시물이 무수히 많았음에도 실제 재판을 받고 처벌받은 사례는 단 2건”이라며 “이 사건들 역시 언론에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말했다.

2건 중 한 사례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의 ‘어묵’ 사건이다. 지난해 누군가 단원고 교복을 구해 어묵을 먹으며 일베 회원임을 의미하는 손 모양을 하고 찍은 사진과 함께 “친구 먹었다”는 내용의 글을 일베에 게시해 큰 논란이 됐다. 다른 한 사례는 당시 5세였던 일반인 생존자를 성폭행하고 싶다는 내용의 게시 글이었다. 두 사례 모두 모욕죄로 처벌받았다.

특조위는 2014년 4월16일부터 2016년 5월30일까지 세월호 관련해 형법상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 모욕의 죄 및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에서 정하는 명예훼손과 음란물유포의 죄로 정식재판을 받은 총 78건의 사례를 수집했다. 이 중 5건은 해경이 피해자였고 28건은 세월호참사와 직‧간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제3자 간의 사건이었다. 이를 제외하면 세월호 피해자와 관련된 사건은 총 45건이다.

▲ 27일 오전 서울 중구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언론보도 피해 및 명예훼손 실태 조사 결과 발표와 토론회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이 45건 중 처벌의 근거가 적용된 법률은 형법상 모욕죄가 32건으로 가장 많았고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 6건, 형법상 사자명예훼손이 4건,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과 음란물유포가 경합 적용된 것이 1건이었다.

하지만 이 45건 중 4건은 공소기각, 선고유예, 무죄로 끝났고 30건의 경우 50만원~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1건만이 징역형(2건 실형, 9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인희 조사관은 “지금도 세월호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이 부지기수로 달리고 SNS에 셀 수 없이 많은 모욕성 글이 생성되고 있는 현실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적은 숫자”라고 설명했다.

원인으로는 피해자들이 피해를 당해도 적극적인 피해 구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참사 생존자를 모욕해 처벌받은 사례는 단 2건이었다. 김인희 조사관은 “생존자들이 언론보도와 인터넷 게시글을 통해 숱한 모욕을 당해왔음에도 피해 구제를 위해 나서지 못하고 숨죽여 오기만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신청도 없었다. 유병언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구원파가 직접 나서서 2014년에만 1만6천 건의 중재신청을 했으나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언론중재를 신청한 것은 단 한건도 없었다.

그나마 유가족이 피해자인 경우 다른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비해 명예훼손, 모욕죄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었다. 총 45건 중 유가족이 피해자인 사건이 34건으로 가장 많다. 이유는 유가족들이 모여 만든 ‘가족협의회’가 있었고 임원들이 나서서 고소고발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유가족을 모욕하는 게시글은 ‘아이들 시체로 벼슬에 앉으려 한다’ ‘거액의 돈을 챙기고 평생 혜택을 누리려 한다’ 등의 내용이 주를 이뤘으며 이러한 내용으로 처벌받은 사건이 전체의 절반인 17건에 달했다. 이 밖에도 ‘유가족이 정치를 하려고 아이들의 죽음을 이용한다’ ‘고향이 특정 지역인 사람들이 모여 사상에 문제가 있다’ ‘정부 탓하는 유가족들은 종북좌빨 선동꾼이다’라는 게시글이 처벌받았다.

특조위가  단원고 스쿨닥터였던 김은지 칠곡경북대학교병원 교수 등에게 의뢰해 실시한 ‘세월호참사 피해자 등에 대한 언론보도 피해 및 명예훼손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세월호 참사 직‧간접 피해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163명)의 81.7%가 잘못된 언론보도를 정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80.2%가 악성 게시물도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신고, 고소, 정정보도 청구와 같은 대처를 한 사람은 11%에 그쳤다.

▲ 세월호특조위의 ‘세월호참사 피해자 등에 대한 언론보도 피해 및 명예훼손 실태조사’ 보고서 발췌

김은지 교수는 “‘너무 유난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더 큰 피해가 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적극 대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심층 면접조사에서 피해자들은 “그렇게 처벌이 될 거 같지도 않고 처벌해봤자 반성할 것 같지 않아 그냥 듣고 흘려보냈다” “굳이 그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릴 이유가 없어서 안 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김인희 조사관은 “현행법상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기소할 수 없는 친고죄이고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이지만 사실상 신고죄가 있어야 수사가 진행된다. 이 때문에 참사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찾지 않는 이상 광범위한 모욕‧명예훼손이 벌어지고 있어도 사실상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 조사관은 또한 “참사 피해자들이 추가적인 피해에 시달리면서도 참사로 인한 충격, 가족과 친구를 잃은 슬픔, 참사의 이유를 찾느라 정작 스스로를 방어할 여력이 없었고 이들을 도와줄 사회적 시스템도 부재했다”며 “우리 사회가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소위 ‘피해자로서의 자세’를 강요하며 슬퍼하는 것 외에 정당한 보상이나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억압하는 분위기도 한 몫 했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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