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을 모기업으로 하는 언론의 행태가 새삼스럽게 문제시 되고 있다. 이들 언론은 이번 비자금 사건을 권력의 성화에 못이겨 갖다바친 떡값으로 문제를 은폐하려 들고, 다만 몇몇 기업의 총수들만이 뇌물을 준 것으로 축소하려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뇌물과 떡값을 구분하기 어렵고 용도가 어찌됐든 이를 위해서는 기업 내에서 비자금을 만들어야 한다. 비자금은“부정한 돈을 세금추적이 불가능하도록 특별 관리해둔 자금”을 통틀어 말하는 것처럼 떳떳한 돈(의연금이나 정치자금)이라면 애써 감출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한 손비처리가 돼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검찰 조사와 병행해서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경제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느니,‘각종 규제가 부패의 온상’이었다느니 하며 여론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려 한다면 이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이권을 둘러싼 정경유착이 재생산해내고 있는 신종 이데올로기, 이름하여‘세계화’라는 헤게모니에 달려 있다. 이것은 박정희 시대의 개발 독재가 민주화와 산업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하는 물음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이번 사건의 추이는 좀더 지켜봐야 할 테지만,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이유는 앞서 지적했다시피 기득권층의 헤게모니에 맞설 수 있는가에 따라 우리사회가‘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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