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뉴스타파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보도한 후 주류언론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단순한 재벌 그룹 회장의 불법 성매매 의혹에 대한 충격만이 아니라 삼성 그룹 차원의 개입과 차명 거래 등 파문이 커지고 있음에도 대다수 언론은 이를 파헤치기는커녕 단순 인용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26일 오후 기준으로 뉴스타파 보도 영상의 유튜브 조회수는 917만 건을 넘어섰다. 뉴스타파 자체 트래픽까지 감안하면 1000만 명 이상이 이 보도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뉴스타파의 영상이 공개된 후 주요 일간지 중 뉴스타파보다 더 진전된 사실관계를 보도한 곳은 한겨레가 유일했다. 22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 회장이 건넸다는 돈 봉투에 담긴 수표는 ‘우리은행 삼성타운지점’에서 발행한 것이었고, 해당 동영상 촬영자들은 2012년 삼성그룹과 CJ그룹에도 금품을 요구하는 메일을 전달했다. 

한겨레는 “100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은 우리은행 삼성타운지점에서 동영상이 찍히기 한 달 전인 2011년 11월14일에 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만약 이 수표가 삼성의 회삿돈이라면 횡령 의혹까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3일자 한겨레 7면.
동영상이 촬영된 논현동 빌라가 김인 전 삼성SDS 사장(현 고문) 명의로 13억 원에 전세계약을 맺은 것에 대해서도 한겨레는 “만약 회삿돈이 빌라 임대에 쓰였다면 횡령 의혹이 불거질 수 있고, 김 전 사장이 이 회장 돈을 대신 운용하면서 빌라를 빌렸다면 금융실명제법 위반 논란이 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이 회장의 (사적) 영역과 회사 영역이 엄격히 구분된다”며 “논현동 전세자금은 회삿돈이 아니라 개인 돈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은행 발행 수표와 관련해 “우리은행 삼성타운지점에 이 회장의 개인계좌가 없을 리 없고, 개인계좌를 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또 “동영상 촬영자들이 삼성과 CJ 두 그룹 쪽에 직접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이메일로 삼성 쪽에는 ‘CJ 쪽으로 동영상이 넘어가면 치명적일 것’이라고 위협하는 동시에, CJ 쪽에는 ‘삼성과 원한이 있어 되갚으려 한다’는 취지를 밝히며 동영상 제공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CJ 측은 이들의 금품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삼성 측은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삼성 측은 동영상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응하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하거나 동영상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주요 일간지의 지면 보도량을 보면 22일부터 26까지 한겨레가 12건으로 가장 많은 기사를 썼다. 다음으로 경향신문이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과 관련해 칼럼을 포함해 4건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26일 ‘이건희 동영상 사건’의 서울중앙지검 이첩 소식을 포함해 3건을, 조선일보 2건, 국민일보·내일신문·동아일보·세계일보·한국일보는 1건에 그쳤다. 이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회장이 소유한 중앙일보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친재벌 성향의 문화일보 역시 기사가 한 건도 없었다.

구성·그래픽=강성원·안혜나 기자.  사진=연합뉴스
경제지 중에선 매일경제와 한국경제가 2단 기사로 1건씩 보도했다. 나머지 서울경제·머니투데이·아시아경제·아주경제·헤럴드경제 등에선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매일경제는 기사 제목에 ‘성매매’를 넣는 대신 “이건희 회장 ‘과거 동영상’ 파문”이라고 쓰고 “사생활이라 할말 없다”는 삼성 측 입장을 부제로 달았다. 한국경제도 “삼성 ‘물의 일으켜 송구스럽다’”는 제목에 ‘인터넷 매체, 이건희 회장 사생활 동영상 보도’라고 부제를 붙였다. 성매매라는 불법 의혹보다 사생활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 등이 사생활 논란으로 치부된다고 하더라도 지난 2013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보도와 비교해 보면 편차가 뚜렷하다. 당시 검찰이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에 조선일보 보도로 알려진 채 전 총장의 혼외자 논란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국정원 수사를 지시한 검찰 총장의 ‘찍어내기’ 논란과 고위공직자라는 차별점이 있긴 했지만, 외려 채 전 총장은 실정법 위반보다는 사생활과 도덕성 검증에 가까웠기에 언론 보도의 잣대가 얼마나 이중적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상파 뉴스도 마찬가지다. KBS·MBC·SBS 방송 3사는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이 불거져 파문이 확산된 22일 메인뉴스에서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MBC는 ‘뉴스데스크’ 16번째 꼭지에서, SBS와 KBS는 각각 메인뉴스 19번째와 20번째에 의혹 내용과 함께 삼성 측 입장을 전달했다. KBS와 MBC는 동영상 출처를 ‘한 인터넷 매체’라고만 밝히면서 이 회장의 성매매 정황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내보내지 않았다. 

25일 KBS ‘뉴스 9’ 리포트 갈무리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22일 성명을 통해 “이 회장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을 일궈낸 경영인이라는 찬사를 받아 온 공인임과 동시에 편법 승계와 탈세 혐의 등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 특권층의 그늘도 여실히 드러낸 뉴스의 중심인물”이라며 “비록 중병으로 장기간 병석에 누워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삼성그룹의 회장이기도 하므로 KBS 보도본부가 이 회장의 성매매 의혹 사건을 충실히 취재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을 기대한다”며 주문했다. 

노조는 “그럼에도 KBS가 이번 사건을 메인뉴스인 뉴스9에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21일 밤 인터넷을 통해 1보 기사가 게재됐다가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22일 오전 보도본부 수뇌부의 편집회의에서는 ‘황색 저널리즘이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보도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주종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앞서 KBS는 복수의 여성에게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가수 박유천씨에 대해선 ‘뉴스 9’ 헤드라인과 리포트로 보도했다.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뉴스 9’ 헤드라인과 톱 리포트로 보도한 바 있다. 

반면 이 회장 관련 뉴스는 22일엔 헤드라인에서도 빠졌고 25일 검찰이 수사 방침을 밝히고 나서야 헤드라인과 함께 관련 리포트가 보도됐다. 그러나 이날 KBS 리포트도 성매매 의혹 규명에 방점을 찍기보다 이 회장의 사생활을 몰래 촬영해 돈을 요구한 행위와 이런 불법자료를 보도하는 행위 등이 수사 쟁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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