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정체불명의 남성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 내용은 삼성그룹과 관련한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맞서 민주노조 건설 운동을 하고 있다. 백혈병 직업병, 노조 탄압 피해 등 삼성과 관련한 문제에 앞장서온 김 위원장으로서는 정체불명의 남성을 만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경기도 안성의 터미널 한 찻집에서 정체불명의 남성과 마주 앉았다. 자신을 선아무개씨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김 위원장을 수년 동안 지켜봐다. 삼성과 싸우는 사람들은 1~2년 안에 돈을 받고 끝냈는데 김 위원장은 끝까지 싸우더라'고 말을 하면서 노트북을 건네며 충격적인 영상을 보여줬다.

미디어오늘은 25일 저녁 김 위원장을 만나 당시 상황을 전해 듣고 김 위원장이 만난 사람들이 뉴스타파가 확보한 동영상과 함께 발견한 사진 속의 인물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뉴스타파 쪽에 교차 확인한 뒤 김 위원장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김 위원장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로 했다.

선씨가 보여준 영상에는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정황을 담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남성은 영상 속 한 인물을 가리키며 '이건희 회장 맞죠'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정체불명의 남성이 왜 자신을 만나 동영상을 보여줬는지, 동영상을 찍은 목적은 무엇인지를 물었지만 '돈이 목적은 아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연락처를 교환한 뒤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지난해 9월 또다시 정체불명의 남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자신들이 활동 공간으로 삼고 있는 '은신처'로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삼성 일반노조 사무국장과 조직국장 등과 함께 정체불명의 남성이 '은신처'라고 말한 한 시골마을 길가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를 찾았다. 컨테이너 박스에는 지난해 4월 만났던 선씨 이외에 이아무개씨라는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당신들의 정체가 뭐냐, 동영상은 어떻게 찍었느냐"라고 물었다. 이모씨라는 사람은 답변 대신 자신을 삼성과 관계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씨는 지난해 4월에 이어 이 회장의 성매매 정황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이씨는 '삼성 미래전략팀 위기관리팀이라고 하는 50대 남성 두명이 찾아와 동영상을 공개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가져가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삼성 계열사 사장과 직접 만나 동영상을 공개하지 말라는 내용의 얘기를 나눴다고도 주장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전언이다. 

김 위원장은 동영상을 찍은 목적과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재차 물었다. 이씨는 '돈이 목적은 아니다. 김 위원장이 동영상을 갖고 있으면 삼성에서 건들 사람이 없다. 백혈병 문제나 무노조 문제도 공익적 차원에서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되풀이했다. 이씨의 발언은 김성환 위원장이 접촉 당시 녹음했던 녹취록에 담겨 있다. 

김 위원장이 만났던 이씨와 선씨는 뉴스타파 보도에서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영상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했던 이씨와 선씨, 두 사람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접촉 당시 이씨 등과 함께 찍은 사진과 뉴스타파가 확보하고 있는 파일 속 사진을 대조해 동일 인물임을 확인했다. 

뉴스타파는 이씨와 선씨를 동영상을 찍은 사람으로 추정하면서 "이들은 이건희 회장의 거처에 드나든 여성 중 1명과 협력해 동영상을 촬영했고, 이를 무기로 삼성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한 바 있다. 

▲ 뉴스타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성매매 정황 동영상 화면.


뉴스타파 보도와 삼성 측의 해명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대화에서 '동영상 제작 목적은 돈은 아니다'라고 주장한 이씨의 말은 선뜻 믿기 어렵다.

삼성 측은 동영상과 관련한 뉴스타파 쪽 질의에 "동영상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전화는 받은 적이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응하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고 동영상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만난 이씨는 삼성 그룹실 차원에서 적어도 지난해 동영상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고 삼성위기관리팀이 주도적으로 영상 공개를 막은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성환 위원장은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4월에 만날 당시엔 성매매 정황을 찍었다는 점에서 정보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어 물어봤더니 씩 웃더라"라며 "이씨라는 사람은 삼성 쪽 사람이라고 소개했고 나머지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인 것 같았다. 선씨라는 사람은 삼성과 대외적으로 접촉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단순하게 만나고 싶은 게 아니라 자료들을 저한테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자료를 맡겨도 삼성과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며 "9월 두 번째 만남 이후 동영상 문제로 이씨 등 신변이 걱정돼 올해 초 은신처로 찾아갔는데 얼굴만 보고 헤어지고 난 뒤 연락이 되지 않았고, 뉴스타파 보도로 일이 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 등이 돈을 떠나 '공익적 목적'에 따라 동영상 제공 여부를 타진했다고 했지만 삼성일반노조와 접촉한 정황을 삼성 측에 알려 압박하기 위해 김 위원장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이 삼성에 돈을 뜯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김성환 위원장을 접촉하고 접촉 사실을 의도적으로 삼성 쪽에 흘려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했지만 자기들 꿍꿍이 속에 돈의 목적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만났을 당시) 삼성 탄압에 대해 많이 두려워 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삼성으로부터 관리 당한 상태로 있는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제가 동영상을 가지고 있었으면 삼성을 협박했겠나. 동영상을 줄테니 좋다라기 보다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면서 "삼성의 감시 때문에 동영상을 탈취당할 수 있으니 나눠서 숨겨놨다는 얘기도 했는데 그걸 봐서는 저한테 사후 대비를 위해서라도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니 잘못 되면 터뜨려주고, 증언을 서달라는 의미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4년 휴대폰 감청 사건의 피해자이기도하다. 김 위원장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거슬리는 인사로 낙인찍혀 삼성 측의 집요한 관리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정황을 담은 동영상을 찍은 집단도 삼성 측에 이미 파악돼 관리를 당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김성환 위원장의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삼성 입장에선 (성매매 정황 장소를 전세 계약한)김인 전 SDS 고문 문제만 정리하면 끝나는 것 아니냐"며 "언론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성매매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매달릴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7일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에 대해 성매매, 성매매 알선, 부동산 실명제 위반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뉴스타파 보도가 선정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이건회 회장의 성매매 사건을 합리화시켜주는 얘기로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며 "재벌 총수라는 사람이 TV에 나와 가족들과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래 전부터 성매매를 했다는 것 자체가 공인으로 참으로 가증스럽고 재벌의 민낯을 보여준 것이다. 삼성 피해자를 외면하고 탄압한 것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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