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11월 15일자 26호에 지난 9월 13일 KBS〈9시 뉴스〉“서울시휘장은 일제잔재”라는 박태서기자의 보도에 대해 이견을 제시한 중앙일보 정운현기자의 글을 게재한 바 있다.

정기자는 이 글에서“서울시휘장의 문양은 서울시내 8대 명산을 나타내며 단순한 장식용 문양으로 일본의 침략성울 상징하는 총독부 문양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에 KBS 박태서기자는 본지에 보내온 정기자 글에 대한 반론에서(27호 참조)“현서울시 휘장은 제정 당시 유행했던 문양을 모방한 것으로 이는 일본의 사악한 저의를 담고 있는 총독부내 문양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일제잔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 정운현기자가 KBS 박태서기자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보내왔다. 본지는 광복 50년을 맞은 오늘, 우리문화 곳곳에서 일제의 잔재를 엿볼 수 있는 현실에서 이같은 건전한 토론을 통해 일제잔재를 깨끗이 청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하며 정기자의 재반론을 게재한다.


본론에 앞서 먼저 밝혀둘 것은 이번 논쟁이‘감정싸움’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사안은 그동안 서울시 당국은 물론 역사학계에서조차 방기돼온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건전한 토론대결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본 기자가 반박문에서 박기자의 보도에 대해‘과문한 탓’이라고 언급한 것은 박기자가〈기자협회보〉에 쓴‘수상소감’내용중 현 서울시의 상징은 고시문에 엄연히‘의미’가 언급돼 있음에도 불구하고“서울시내 8대명산을 나타냈다는 휘장의 의미와 근거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 부분을 지칭한 것임을 밝혀둔다.

본론으로 들어가 박기자는〈반론문〉에서 현 서울시 휘장이 총독부 건물내의 문양을 모방했을 것이라는 본 기자의 주장에는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현 서울시 휘장은 박기자의 표현대로‘광의의 일제잔재’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같은 추론은 현 서울시의 휘장이 다른 곳이 아닌 총독부 건물에 있는 여러 문양 중
의 하나라는 사실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렇다면 총독부 건물에 있는 여러 문양이 과연 일제의 침략성을 상징한 것인지, 아니면 본 기자의 주장대로 단순한 장식용 문양인지를 검토해보기로 하자. 첫째 총독부 중앙홀이나 건물바닥에 있는 연꽃문양의 숨은 의미가‘제국주의 번성과 한반도의 영원한 지배’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박기자는 우선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제시하기 바란다.

박기자가〈반론문〉에서“조선총독부 곳곳에 연화문을 새겨놓은 것은 단순히 그들의 국화인 벚꽃을 새겨놓은 것보다 더 간교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한 것은 일면 일리는 있어 보이지만 일단 자료로서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사실은 개연성이나 추론이 아닌 자료에 입각한 고증이 가능할 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박기자가 취재과정에서 이론적 조언을 받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조용중씨(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역시‘구 조선총독부의 장식문양에 대해 소견 ― 조선총독부 건물에 장식된 연화문을 중심으로’(박물관신문 95. 9. 1)라는 글에서 일본이 총독부 건물에 연꽃문양을 장식한 것은 대륙 침략정책과 조선의 식민 지배를 상징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추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박기자와 조씨가 밝힌대로 연꽃문양은 일제만 사용해온 것이 아니라 이미 고대시대부터 동아시아권에서는 하느님, 태양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돼 널리 사용돼온 것이다. 신라시대 건축물의 막새나 고려시대의 동경 등에서는 물론 현재까지도 연꽃문양은 장식이나 휘장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일제가 이같은 재래의 전통문양을 건축물 문양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이를‘일제잔재’라고 본다면 이는 논리비약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 휘장이 총독부 건물이 아니라 일반 민간건물에 새겨져 있었다면 그래도 과연 이를 일제잔재라고 보았을지 의심스럽다. 참고로 총독부 건물에서 대표적인 연꽃문양으로 지적되고 있는 중앙홀 바닥의 문양은 현재 미국 CIA의 휘장과 동일하며 또 대한민국 정부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수여하는 건국훈장의 형태와도 유사함을 밝혀둔다.

둘째 현 서울시 휘장이 일제잔재라는 주장은 휘장 외곽의 8각이 총독부 건물바닥에 있는 연꽃문양(8각)과 동일하다는 점인데 그렇다면 만약 서울시 외곽의 봉우리가‘8악’이 아니라 ‘7악’‘9악’이었다면 그래도 이‘8각문양’을 모방했겠느냐는 점이다. 그건 분명히 아닐 것이다. 따라서 현 서울시 문양은 총독부 건물의 문양을 의식하고 제작한 것이라기보다는‘8악’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우연의 일치 내지는 손쉽게 전래의 연꽃문양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총독부 건물내 연꽃문양의‘일제침략성’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현 서울시 휘장은 일제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기 때문에 일제잔재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아울러본 기자가 주장한대로 서울시와 관련해 굳이 일제잔재를 언급한다면 이미 79년 전에 일제가 세운 서울시청을 언급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셋째 박기자는 연꽃이 태양을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에 이는 태양을 숭배하는 일제(일본)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본 기자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총독부 건물바닥에 새긴 연꽃문양에까지 그랬겠느냐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숭배의 대상은 적어도 사람의 시선보다 높은 곳에 배치해 우러러보도록 장식하는 것이 상식이다. 일제가 이 문양에 그같은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면 사람들이 밝고 다니는 건물바닥이나 복도보다는 오히려 건물의 천장이나 벽에 장식했을 것이다.

일제가‘내선일체’를 상징한 그림을 총독부 건물 중앙홀 벽에 그려놓은 것은 좋은 예다. 결국 일제가 총독부 건물바닥에 새긴 연꽃문양은 미적 차원에서 단순한 장식용으로 치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끝으로 판사는 판결로 말하듯이 기자는 기사(보도)로 말한다고 본다. 본 기자가 반박문을 쓰면서 박기자와 통화하지 않은 것은 보도내용을 검토한 결과 나름대로는 분명한 반박사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박기자는 본 기자가 자신의 취재과정에 대해서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박기자 역시 반론을 쓰면서 본기자와는 통화가 없었던 점은 유감이다. 아울러 본기자는 박기자가 우려하는 이상으로 보도내용을 수차례 확인했으며 이 내용 자체는 박기자가 쓴〈기자형회보〉에 쓴‘수상소감’이 계기가 됐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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