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바람이 제법 선선한 지난 7월21일, 반올림 농성장에서는 한창 '300일 맞이 열음 이어말하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 14일 진행된 ‘삼성, 무노조의 문을 열음’에 이어 이번에는 ‘안전사회의 문을 열음’ 이어말하기가 진행됐다. 이날 이어말하기를 듣다보면 세월호 참사, 구의역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숱한 참사들이 도사리고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결코 안전하지 못함을 느낄 수 있다.

이날 이어말하기는 416연대 운영위원이자 인권운동사랑방의 미류 활동가가 사회를 맡았고,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강찬호 대표,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박동욱 교수, 반올림 이종란 상임활동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8반 재욱 엄마 홍영미씨, 구의역참사 시민대책위, 공공교통네트워크 오성근 운영위원장이 참여했다.

세월호 참사와 구의역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대하는 정부와 기업의 태도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동안의 수많은 참사들에 대처하는 그들의 태도는 언제나 일관적이었다. 강찬호 대표의 말처럼 정말 ‘문제 대처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일까.

▲ 7월21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 있는 반올림 농성장에서 '300일 맞이 열음 이어말하기'가 열렸다. 세월호·구의역·가습기 살균제 등의 참사피해 당사자가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백민정 제공

강찬호 대표는 “기업을 상대로 한 문제 제기, 정부가 피해자의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세월호 문제가 해결이 잘 되었으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잘 해결될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예 '문제를 회피하는' 매뉴얼이 있는 것 같다. 반올림처럼 대화 기구를 만들어 달라해도 기업은 콧방귀도 안 뀐다. 대화 기구가 꾸려지더라도 그들은 삼성처럼 나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강씨는 “모든 피해를 보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접수 창구로는 부족하다. 정부도 물 밑에서 반대하고, 기업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이 시대의 소명이고 숙제”

홍영미씨는 세월호 인양 및 진상규명에 대해 “세월호 인양이 이미 6차 실패를 했다. 해수부에서 인양을 반드시 한다고 했지만 기술적인 문제와 날씨 탓을 하며 벌써 여섯 차례다. 특조위 활동기간 6월30일 종료, 특검 상정도 모호, 특별법개정도 모호, 왜 이렇게 짜고 치는 것처럼 맞아 떨어지는지 저희 가족들도 굉장히 의문스럽다”며 "참사 이후로 해결방법이 비상식적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저희의 간절한 바람, 이것이 안전한 사회로 발돋움하기 위한 책임자 처벌과 인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거리 집회 당시 경찰들의 행태를 돌아보면, 그들은 물리적인 폭력과 더불어,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하며 아이들 앞에서 용변을 보도록 한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또한 기자들은 비양심적 왜곡 보도를 통해 유가족들에게 N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는 국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홍씨는 “세월호 사태 이후 가족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보고가 있었다. ‘치유라는 건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사회적 역량에 따라서 치유가 될 것이라고, 반드시 진상규명이 되어야만 치유가 될 것이란’ 이야기를 피해생존자들과 가족들, 조사참여자 들이 똑같이 말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하고, 함께 연대해서 풀어나가야만 안전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 2016년 6월15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SK케미컬과 애경, 이마트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오성근 운영위원장은 “삼성은 국제적 기업인데 사람을 하나의 도구나 부품으로 생각한다"며 "노조도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참사도 마찬가지"라며 "(전동차에) 불에 잘타는 내장재를 사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요즘에 사고가 났다 하면, 정규직은 별로 죽는 일이 없고 전부 파견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파견법을 만들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법안을 만들면서 계속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에 대해 박동욱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나 메탄올 중독이나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위험이지만 파견화, 하청화는 뻔한 위험"이라면서 "구조화하지 않으면 내 동료 아들딸이 처할 위험이다.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위험을 해결해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한편 이번 이어말하기는 반올림 농성 300일 문화제를 앞두고 반올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삼성과 안전, 두 가지 키워드를 얘기해보고자 반올림에서 제안했다. 

이종란 상임활동가는 “위험이 우연히 벌어지지 않고 굉장히 구조화된 것 같다. 구조화된다는 것은 견고하다는 것이다. 그 견고함을 깨려면 우리가 더 연대해서 뭉쳐야 한다"면서 "세월호 어머니(홍영미씨)의 말씀을 들으면서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외국 격언이 생각났다. 28일 300일 문화제도 많이 와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자 미류 활동가는 이어 말하기를 정리하며 “사회는 피해를 부인하려고 든다. 만약 부인하기가 어려워지면, ‘우리가 대충 보상해줄게’ 라면서 공격을 한다"면서 "우리가 피해와 무관하게 스스로 권리를 가진 주체로 서로 이해하고 이 사회가 인정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 다른 싸움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위한 싸움을 하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나라, 기업을 보호하는 나라, 기업은 안전하고, 국민은 위험하다. ‘삼성직업병 문제 올바른 해결을 위한 반올림 노숙 농성’도 벌써 289일, 첫 여름을 맞았다. 반올림뿐만이 아니다. 위험 사회를 감지한 수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연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삼성의 문은 늘 굳게 닫혀 있다. 여전히 ‘뭣이 중헌지’ 모르는 삼성과 정부, 여름이 가기 전에는 꼭 문을 열어 나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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