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대통령 임기가 19개월 남은 이 시점에 그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지금 같은 자세와 ‘믿음’으로 임기를 마치게 된다면 국가와 민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세 야당을 향해서는 이런 질문을 해야겠다. “헌법을 서슴없이 유린하면서 ‘총체적 국란(國亂)’을 빚어내고 있는 박근혜의 대통령직 수행을 더 이상 방임하는 것이 대다수 주권자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먼저 이 글의 결론부터 말하겠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국회의원들은 하루라도 빨리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민족이 파멸의 수렁에 더 깊이 빠지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론’은 새삼스런 주장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짚어보기로 하자.

지난 4·13 총선 선거운동 첫날인 3월 31일, 서울 서초을 선거구에 출마한 무소속 후보 김수근은 선거벽보에 자신의 사진을 싣지 않고 ‘박근혜 탄핵소추안’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의 긴 글을 올렸다.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문: 헌법 제65조 및 제130조의 규정에 의하여 박근혜의 탄핵을 소추한다. 피소추자: 성명 박근혜, 직위 제18대 부정선거 대통령.” 김수근은 탄핵소추 사유로 다섯 가지를 열거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제2의 을사늑약인 한일 ‘위안부’ 합의로 국권을 팔아넘김”, “권력기관이 총동원된 부정선거에 의한 당선은 무효”,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자”, “불법·위헌적인 개성공단 전면 중단”, “불법적 선거 개입으로 민주주의 파괴.”

▲ 지난 4·13 총선 당시 3월31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박근혜 탄핵소추안'이라고 적힌 선거벽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서초구 선거관리위원회는 그 벽보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공직선거법상으로 해당 벽보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는 것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대구 달성구(병)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석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공약으로 내걸고 24%의 득표율을 올렸다. 박근혜의 ’정치적 철옹성‘이라는 대구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 전 홍보수석 이정현이 KBS 보도국장에게 ‘보도지침’을 내린 사실이 폭로된 지 얼마 뒤인 지난 7월 7일자 한겨레 사설 제목은 ‘대통령이 사표 받으라 했다면 탄핵감 아닌가’였다. “방송법 위반은 물론 정치적으로 탄핵감”이라는 것이었다.

국민의당 소속 의원 김동철은 지난 7월 5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박근혜 정부가 ‘선거탄핵’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무능한 국정 운영으로 국가 위기가 심화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근혜가 18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것들 가운데 파기해버린 사항들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영남 신공항 건설’, ‘지역 균형발전과 대탕평 인사’, ‘모든 국민 100% 행복한 경제민주화’, ‘전시작전권 전환’, ‘만 5세까지 무상보육 및 무상 유아교육’, ‘대학생 반값 등록금’, ‘4대 중증질환 완전 국가책임’ 등. 김동철은 박근혜가 취임한 뒤 2년 동안 공공기관 임원 318명을 ‘낙하산’으로 보낸 사실도 지적했는데, 이 수치는 이명박의 245명보다 30%나 많은 것이었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은 지난 2월 15일 정의당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에 출연해서 “박근혜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는 헌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야당이 다수였다면 명백한 탄핵감”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김상곤(더민주 전 혁신위원장)은 실질적으로 ‘박근혜 탄핵론’을 주장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우가 잘못된 특권층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국민이 뽑아준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도 국민들이 회수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까지 할 수 있다.” 

▲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15일 오전 경북 성주군청광장에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가진 가운데 성주 주민들이 사드배치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박근혜가 최근 가장 강력한 비판과 저항에 부닥치게 만든 사건은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결정이다. 박근혜는 국회의 동의나 비준도 없이 국무회의의 ‘합의’(외교부 장관 윤병세는 강력히 반대했다고 함)만으로 그것을 기정사실화해 버렸다. 이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자의적으로 어긴 행위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가 저지른 온갖 위법행위와 부정축재가 사실로 입증되었는데도 박근혜는 단 한마디 질책이나 문책도 하지 않은 채, 그가 참석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고난을 벗 삼으라”는 투의 ‘격려사’를 했다. 실질적으로 검찰을 총괄하고 공직자들에 대한 사정을 지휘하는 민정수석의 위법행위가 드러나면 당장 해직하는 것이 대통령의 정당한 직무 행사인데 박근혜는 정반대 길로 간 것이다.

박근혜를 탄핵하기 위한 사유를 나열하면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수시로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일과 지난 총선에서 노골적으로 새누리당의 ‘진박’ 후보들을 지원한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14년에 소추를 당한 당시 대통령 노무현의 ‘탄핵 사유’를 여기서 되돌아보면 박근혜는 열 번도 넘게 탄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 해 3월 12일 야당인 새누리당과 새천년민주당, 그리고 자민련 의원 159명이 서명해 국회에서 발의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의 요지는 이랬다. “노 대통령은 불성실한 직책 수행과 경솔한 국정 운영으로 인한 정치 불안 때문에 국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러 국민을 극도로 불행에 빠뜨리고 있으므로 나라를 운영할 자격이 없음이 극명해져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게 되었다.” 탄핵 사유에서 가장 핵심이 된 부분은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할 국가원수가 특정 정당을 위한 불법선거운동을 계속했다”는 것이었다. 그해 2월 18일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 가진 합동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말하고,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한 일이 바로 ‘불법선거운동’이라는 뜻이었다.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심판 청구를 기각한다”는 ‘결정 주문’을 낭독했다.

▲ 지난 2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인한 안보위기 등과 관련해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당시 국회에서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던 의원들이 지금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에서 ‘지도자’나 중견 정치인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의원들은 당시의 쓰라린 패배와 좌절 때문에 ‘탄핵’의 ‘탄’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칠 것이다. 그들은 그렇다 치고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라와 겨레를 살리는 지름길이라고 믿는 다른 의원들은 마땅히 탄핵 소추안을 발의해야 옳지 않은가? 현재 의석 분포는 더민주(121석)와 국민의당(38석), 정의당(6석)을 합치면 165석이고 야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이 4명쯤 된다. 탄핵 소추안 의결에 필요한 과반수를 훨씬 넘는 수자이지만 실제로 소추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는 한참 모자란다. 새누리당에서 20여명이 가세한다면 모르지만.

세 야당이 ‘박근혜 탄핵’을 현실적으로 관철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의 악정과 실정을 나라 안팎에 널리 알리면서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정권교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탄핵 발의권은 없지만 뜻있는 주권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박근혜 탄핵 범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서 세 야당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민주화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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