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의혹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면서 실제 처벌로 이루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회장의 건강 상태를 고려할 때 이 회장을 직접 처벌하기는 어렵더라도 삼성그룹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을 밝혀내기 위한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2일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 회장 성매매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영상이라는 직접 증거까지 등장한 상황에서 경찰이 수사를 통해 고위층의 성매매 의혹을 정확히 밝혀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22일 논평에서 “사생활의 범위를 넘어 불법성매매와 삼성의 관여 의혹이 제기된 만큼 당국의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지고 결과에 따른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며 “이번 사안은 대한민국의 법치가 ‘만민’에게 평등한지, ‘만인’에게만 평등한지 판가름할 중대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 21일 공개된 뉴스타파의 보도 장면 갈무리.

서울지방경찰청은 이와 관련해 뉴스타파에 수사 협조 요청을 했다. 경찰이 뉴스타파에 협조요청을 한 이유는 뉴스타파가 공개한 영상 외의 동영상 원본을 확보해야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초 경찰은 “동영상을 보면 옷을 다 입고 있다. 지금 단계에선 성매매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뉴스타파 공개한 영상은 영상의 일부라고 알려졌다.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는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러닝타임이 7~8시간 사이다. 그 중 의미 있는 영상도 있고 판단이 안 된 영상도 있다”며 “노골적인 화면과 워딩은 뺐다”고 밝혔다. 공개하지 않은 영상에 성매매를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21조 1항은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5년 미만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공소시효가 5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의 공소시효도 아직 살아있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영상 중 가장 촬영 시점이 빠른 영상은 2011년 12월에 촬영된 것이다. 2016년 12월까지만 수사해서 기소하면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회장을 기소하기는 쉽지 않다. 이 회장은 2년 전인 2014년 5월 쓰러져 현재까지도 의식이 없는 상태로 알려져 있다. 본인의 진술을 듣거나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남은 것은 삼성그룹의 조직적 개입 여부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촬영된 장소 중 한 곳은 서울 논현동의 한 고급 빌라였는데, 동영상이 촬영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성 SDS 고문을 맡고 있는 김인 전 SDS 사장이 이 빌라의 해당 호수에 전세권 설정을 해놓은 상태였다.

김 고문은 뉴스타파에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된 논현동 안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고 밝혔다. 계열사 사장도 모르는 사이 명의를 도용해 고급 빌라를 전세 계약하고 이를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장소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뉴스타파가 삼성그룹에 질의를 보내고 난 뒤 김인 고문은 입장을 번복하고 개인적으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이러한 이유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22일 논평을 통해 “계열사 사장의 진술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금지하는 ‘성매매의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를 했다는 혐의의 단서가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률 19조 1항은 “성매매알선을 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참여연대는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라는 범죄도 문제지만 그 성매매 범행에 비서실이나 계열회사의 임직원이나 자금이 동원되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고령의 이건희 회장 혼자서 성매매 장소를 전세 내고, 한번에 4~5명에 이르는 여성과의 은밀한 성매수를 5차례나 계획하고 준비했다는 것은 객관적인 경험칙에 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21일자 뉴스타파 갈무리.
김인 고문이 전세계약을 몰랐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추가적인 법 위반 혐의가 드러날 수도 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논현동 빌라는 전세금이 13억 원이나 되는 고급빌라이다. 전세권자가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인사팀장을 역임한 김인 고문으로, 김인 고문은 최초 인터뷰에서 전세계약을 전혀 몰랐다고 답변했다”며 “그렇다면 이건희 비서실에서 김인 몰래 김인의 이름을 도용해 전세계약을 체결한 것이 되고 이에 관여한 임직원들은 전세계약서 사문서위조와 동행사죄, 그리고 이건희 개인 안가 전세금으로 회사 돈이 사용되었다면 이는 배임 혹은 횡령죄까지 성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권 변호사는 또한 “논현동 빌라를 이건희씨 개인의 안가로 사용하면서 김인 고문의 이름을 빌려 전세권 등기를 한 것이라면 부동산실명법위반죄, 비서실에서 김인 고문 몰래 김인 이름으로 전세금을 송금하였다면 이는 차명거래이므로 금융실명법위반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만일 김인 고문이 최초 답변과 달리 알고서 이름을 빌려주었더라도 부동산실명법과 금융실명법위반죄의 성립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리고 강조했다.

영상의 출처를 밝히는 과정에서 경찰이 공갈 및 협박 여부를 밝히는 데 주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뉴스타파는 “문제의 동영상을 찍은 주모자는 선 모 씨와 이 모 씨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은 이건희 회장의 거처에 드나든 여성 중 1명과 협력해 동영상을 촬영했고, 이를 무기로 삼성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실제 해당 동영상에 관한 제보는 뉴스타파에만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한겨레는 지난해 7~8월경 유사한 내용을 제보받았고 익명의 제보자는 5억 원을 주면 영상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영상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2012년 삼성과 CJ가 소송을 벌이던 와중에 CJ그룹 쪽에도 영상 거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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