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원회(위원장 박용상)가 6월30일 ‘2015년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를 발간했다. 언론중재위는 매년 언론 관련 판결을 모아 보고서로 내고 있다. 이 보고서는 최근 언론분쟁에 적용되는 법리적 기준을 확인하고 언론 관련 판결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유용하다. 미디어오늘이 언론중재위원회 보고서에 등장한 2015년도 언론 관련 판결 가운데 언론계가 주목할 만한 판결 10건을 뽑아 정리했다. <편집자 주>

▲ 2013년 5월6일자 채널A 화면 갈무리.
① ‘종북’ 표현, 함부로 쓰면 채널A처럼 된다

2013년 5월6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북한의 공개지령을 받고 활동하는 종북세력이다”라는 취지로 방송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민언련이 종북세력이라는 채널A 방송내용에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있고 사회 현안에 대한 민언련의 주장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왜곡했다며 정정보도 및 프로그램 원본 삭제와 함께 1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재판부는 “남북이 대치하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정권의 외교방침을 추종하거나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의미의 종북세력이 갖는 부정적이고 치명적인 의미에 비춰볼 때, 민언련을 종북세력으로 단정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없고, 단순히 수사적 과장으로 허용되는 범위에 있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종북’ 표현으로 인한 종합편성채널의 패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채널A '먹거리X파일'의 한 장면.
② 채널A ‘먹거리X파일’의 무리수

2014년 7월4일 채널A ‘먹거리X파일’은 한 칼국수전문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용 닭을 납품받아 칼국수 고명으로 사용했다고 방송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식당이 오히려 닭 가공 업체에 속은 피해자에 해당한다며 보도의 허위성을 인정하고 정정보도 및 50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재판부는 “닭요리 전문점도 아닌 한 숟가락 정도의 고명이 사용되는 것에 불과한 칼국수 전문점이 닭고기 유통의 문제제기에 적당한 음식점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으며 채널A가 전문가 취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폐기 대상인 닭을 사용했다’고 단정적으로 방송했다고 판시했다. ‘먹거리X파일’ 제작진은 직접 칼국수전문점에 ‘위장취업’해 몰카를 촬영하는 등 열의를 보였으나 왜곡방송이란 오명을 얻을 위기에 처했다.

▲ 이재명 성남시장. ⓒ이치열 기자
③ 성남일보가 선거직전 공개했던 이재명의 ‘막말’

2013년 12월30일 성남일보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막말과 언론관’이란 기사에서 이재명 시장이 자신의 형수에게 욕설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올렸다. 이재명 시장은 임시조치로 파일 접속 차단을 시도하며 보도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이후 이 시장이 제기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기사에 의한 명예훼손은 부정했으나 성남일보가 녹음파일을 게시한 동기를 이 시장의 낙선 또는 비방을 위한 것으로 보고 녹음파일 게시에 따른 명예훼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녹음파일 내용이 이재명 가족 내부의 사적인 것인 점, 이재명 시장 입장에 대한 취재 없이 기사를 게시한 점, 성남일보가 녹음파일 입수시점으로부터 약 1년5개월이 지나 2014년 6·4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녹음파일을 게재한 점을 종합하면 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성남일보측은 이 시장에게 1500만원을 배상해야 했다.

▲ 2015년 1월10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한 장면.
④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악마의 미소는 명예훼손

2015년 1월10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소위 ‘땅콩 회항’ 사건을 다루며 사건의 목격자이자 주요 참고인인 승무원 A씨가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웃음을 지은 사실을 두고 “이 웃음은 뭘 의미하는 걸까”라고 언급하며 A씨가 대한항공 측의 회유를 받고 거짓 진술을 한 것처럼 비춰지게 보도했다. SBS는 승무원들이 사측의 회유로 국토부 조사에서 거짓 진술을 했다는 박창진 사무장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A씨는 방송 이후 ‘악마의 미소’로 지칭되며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A씨는 국토부 조사를 받은 사실이 없었으며, 검찰 조사에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고성을 지르며 매뉴얼을 던지고 박창진 사무장에게 내리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해 거짓 진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1심 법원은 A씨가 SBS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정정보도 및 2000만원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웃는 모습과 관련한 보도가 단순히 웃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방영했다고 볼 수 없고 대한항공 측의 거짓 진술 지시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명예훼손을 인정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다.

▲ 2013년 2월6일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의 한 장면.
⑤ ‘종북 부부’ 소개한 이봉규와 채널A

2013년 2월6일 방송된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선 ‘5대 종북 부부’를 주제로 방송을 진행했다. 출연자 이봉규씨는 심재환·이정희 부부를 종북 부부 3위로 소개하며 이들이 북한을 찬양하고 있으며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경우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허위사실을 주장했다. 이에 심재환·이정희 부부는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 등을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심재환씨에 대한 초상권 침해를 인정했으며 이들에게 1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채널A는 생방송 특성상 이봉규의 발언을 예상하거나 통제하기 어렵고, 오히려 방송이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노력을 다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사건 방송의 주제는 애당초 5대 종북 부부로 정해져 있었고, 그에 해당하는 인사들의 사진과 성명이 담긴 차트 역시 채널A에 의하여 사전 준비된 것으로 보여 채널A는 이봉규의 발언내용을 충분히 파악한 상태에서 방송에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방송사에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다.

▲ 2014년 9월 MBN 뉴스화면 갈무리.
⑥ 허위‧허위‧허위…경찰관을 파렴치한으로 만든 MBN

2014년 9월22일 MBN ‘뉴스8’은 ‘마취 환자 방치시킨 위험한 압수수색’이란 리포트를 냈다. 경찰관 A씨가 서울의 한 병원을 압수수색하며 수술실에 무단으로 들어가 전신마취 환자가 방치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A씨가 허위로 영장 청구서를 기재했고, 영장 집행과정에서 보험사 직원이 경찰을 사칭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보도 내용이 대부분 허위라며 MBN에게 손해배상 7000만원 및 정정보도 판결을 내렸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경찰은 병원의 보험급여 편취 혐의에 대한 수사를 개시해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영장집행과정에서 병원장 동의를 받고 수술실에 들어갔고, 그로 인해 진행 중인 수술이 중단된 사실이나 환자가 방치된 사실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도에 등장했던 인터뷰 환자는 경찰이 들어간 수술실의 환자도 아니었다. 보험사 직원이 경찰을 사칭한 적도 없었다. 재판부는 MBN이 병원 측에 편향된 허위 보도를 했다고 판단했다. MBN은 병원 CCTV영상자료 및 병원장 녹음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했으나 끝까지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 MBN은 영화의 한 장면을 편집 보도하며 경찰과 보험사 직원과의 유착이 있는 듯한 인상까지 줬다.

▲ 2013년 10월14일 문화일보 1면 기사.
⑦ 공익성 없었던 문화일보의 ‘통진당 당원’ 실명 공개

2013년 10월14일 문화일보는 ‘법원노조 간부 2명이 통진당원’이란 기사에서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소속 직원들이 통합진보당 당원이라며 이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문화일보는 이념적 편향성을 지닌 인물이 법원 노조에서 활동할 공간을 확보한 것은 문제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에 직원 3인은 해당보도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자유,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들의 명예훼손을 인정해 800만원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재판부는 “이들은 법원 공무원도 아니고 조합업무 수행을 위해 채용된 직원으로 공적 존재로 보기 어렵고 이들이 특정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는 것에 관한 정보는 공익성 있는 정보라 보기 어렵고 정당의 가입‧탈퇴에 대한 정보는 개인의 내밀 영역에서 형성되는 가치관과 관련되어 보호되어야 한다”며 보도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문화일보 기사 리드문장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종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로 시작했다.

▲ 2014년 발견된 유병언의 시신(가운데)을 두고 취재진이 질문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⑧ TV조선, 유병언 장례위원장이 구원파 신도인 게 뭐라고

2014년 8월28일 TV조선 ‘뉴스쇼 판’은 구원파 신도이자 국립대 교수인 A씨가 유병언의 장례위원장을 맡았다고 보도하며 A씨의 실명‧직장‧직위‧사진을 공개했다. A씨는 장례위원장을 맡은 바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정정보도와 함께 3000만원의 손해배상 및 기사삭제를 명령했다. 종교생활에 관한 사항은 사생활의 영역으로, 이 영역을 공개한 보도가 위법하지 않다는 점은 언론사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A씨가 장례위원장을 맡았다는 사실은 허위”라고 밝힌 뒤 “당시 구원파는 세월호 사건의 주범이자 오대양 사건과 관련된 이단 종교단체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장례위원장은 구원파를 이끌 중요한 지위를 나타내고 있었다”며 “사정을 종합하면 허위보도로 인해 A씨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다.

▲ @IStock.
⑨ 기사형 광고 낸 한경닷컴, 광고피해자들에게 배상책임

2011년 12월5일 한국경제닷컴에 ‘믿을 수 없는 소셜커머스…해결책은?’이란 제목의 기사형광고가 올라왔다. 상품권 할인판매 사이트 000쿠폰이 믿을만한 기업이라는 홍보 내용이 담겼다. 한경닷컴은 약 240만원을 받고 이 기사형광고를 실었다. 그러나 해당 사이트 운영자는 대금을 선납한 구매자들에게 상품권 일부만 배송하는 방법으로 대금을 편취해 사기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피해자 35명이 000쿠폰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언론사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기사형 광고를 게재한 한경닷컴에게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액의 4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신문사로서는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않게 명확하게 구분하여 편집할 의무를 부담하고, 광고가 기사와 유사할수록 기사의 조사‧확인 의무에 가까워지는 주의의무를 부담할 것”이라고 밝힌 뒤 “기사 중간이나 주변에 광고라는 문구가 전혀 기재되지 않았고 오히려 ‘기사본문’이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는 사실 등에 비춰 일반 광고에 있어 광고매체가 부담하는 책임보다 더 강화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 2016년 3월 11일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방송된 반론보도문.
⑩ “신체 일부에 충격” MBC 권재홍 보도의 결말

2012년 5월17일 MBC ‘뉴스데스크’는 “어젯밤 권재홍 앵커가 퇴근하는 도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MBC노동조합 소속 기자들은 “퇴근 저지에 당황한 권재홍 앵커가 발을 헛디뎌 충격을 입었음에도 조합원들로 인해 다친 것처럼 보도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선 보도의 허위성을 인정해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2000만 원 판결을 냈다. 그러나 대법원은 보도가 ‘조합원들이 권재홍의 신체 일부에 물리적 충격을 가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결국 법원은 노동조합의 반론보도청구만 인용했다.

대법원은 “MBC조합원들과 권재홍 사이에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이 없었음에도 그들 사이에 직간접적인 물리적 접촉이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부분 등 일부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지 않는 부분은 있으나, 사건 보도의 전체적인 취지가 조합원들이 권재홍에게 고의적 공격행위를 했다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이상, 이는 권재홍이 당분간 방송진행이 어렵게 되었다는 결과를 야기한 본질적 원인에 대해 그릇된 인상을 심어준다고 보기 어려워 사건의 세부적 경위에 관한 과장된 표현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자사 기자들이 자사 보도의 오보를 주장했던 초유의 사건은 석연찮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뒤로 하고 약 4년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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