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정(가명, 26)씨는 최근 언론사 인턴기자 전형에 합격했다. 정규직 기자 전환형 인턴이라, 죽어라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 마감의 압박과 취재능력 평가, 발제의 고통…. 그 어떤 것도 좋았다. 꿈에 그리던 기자가 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상황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일부러 거주지보다 먼 지역의 경찰서를 배정시켜 사건사고 보고를 하도록 했고, 새벽에는 장례식장까지 돌리며 잠을 재우지 않았다. 김씨는 수습기자도 아닌 인턴 기자였다.

‘이렇게 고생하고 전환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15명의 인턴기자 가운데 1~4등에 들지 못하면 다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가야 했다. 김씨는 신체적인 고됨과 정신적인 불안감에도 친구들에게 섣불리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나마 정규직 전환형 인턴은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보통의 인턴은 쓰고 버려졌기 때문이다. 기자 준비생 김평화(26)씨는 “채용공고를 보면 정규직이나 수습 채용보다는 계약직, 인턴, 경력직 공고가 더 많은 게 현실”이라며 “요새는 파견직 공고까지 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의 질이 낮아진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 tvN 'SNL코리아'의 한 장면.
언론사 채용공고에서 ‘정규직 신입’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MBC는 2013년 이후 더 이상 정규직 신입 공채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보도가 나가기도 했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4월 비상경영대책으로 ‘경영 정상화까지 수습기자 공채 중단’을 포함했다. 대다수 언론사가 뉴미디어 분야에서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경향이 눈에 띄고 있다. 정규직 채용에 따른 기수 문화는 점점 파괴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언론사 노동조합 영향력도 약해지고 있다.

그 동안 언론사 채용현황에 대해 유의미한 실태조사는 없었다. 언론사 고용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는 추정만 있었을 뿐 직접적인 분석은 찾기 어려웠다. 미디어오늘은 2015년 9월18일부터 2016년 7월11일까지 약 10개월 간 예비 언론인 커뮤니티 ‘아랑’의 채용게시판에 올라온 1000개의 채용공고를 전수 조사했다.

‘아랑’은 예비 언론인과 현직 언론인이 언론사 입사와 관련한 정보를 주고받는 대표적 공간으로 자리 잡은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곳에 대부분의 언론관련 채용공고가 올라온다는 점에 주목했다. 1000개의 채용공고 중에는 조사 도중 채용이 완료돼 공고를 지운 경우까지 포함했다.

채용공고는 크게 ‘인턴’, ‘수습’, ‘경력’으로 분류했으며 세 분류 중 어디도 속하지 않는 공고는 ‘기타’로 두었다. 인턴·수습·경력 등은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또 다시 나누었으며 비정규직은 계약직, 파견직,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등으로 분류했다. 비정규직이지만 뚜렷하게 고용형태를 제시하지 않은 경우는 미제시로 분류했다.

1000건의 채용공고 중 경력직 채용 307건
인턴채용은 195건, 수습채용은 181건

미디어오늘은 이번 조사를 통해 언론사 채용공고의 상당수가 불안정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000건의 채용공고 중 정규직을 명시한 채용은 113건으로 전체의 11.3%에 불과했다. 반면 비정규직을 명시한 채용은 정규직 채용의 4배가 넘는 480건에 달했다. 채용공고의 절반은 비정규직을 명시하고 있는 셈이다. 정규직/비정규직을 명시하지 않은 ‘미제시’도 407건으로 비중이 높았다. 대다수 취업준비생은 비정규직 채용을 전제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디자인=안혜나 기자.

▲ 디자인=안혜나 기자.
1000건의 채용공고 중 경력직 공고는 307건, 비경력직 공고는 693건으로 나타났다. 경력직 채용 비중이 30.7%다. 온라인 취업포탈 ‘사람인’이 2015년 1분기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채용공고 83만752건을 분석한 결과 경력직 공고 비율이 25.4%였던 점에 비춰보면 언론사채용의 경우 경력비중이 다른 직군보다 높다고 볼 수 있다.

693건의 비경력직 공고는 인턴 공고 195건, 수습 공고 181건, 기타 317건을 합한 수치다. 이 중 정규직이거나,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공고는 모두 124건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머니투데이 디자인 기자 채용공고처럼 인턴으로 채용한 뒤 평가 후 정규직 전환이 명시돼 있는 식이다. 경력이 없는 취업준비생은 채용공고 1000건 중 위와 같은 공고를 포함한 총 124건에서만 채용 이후 정규직을 기대할 수 있다. 언론사 입사준비생 입장에서 “고용의 질이 낮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평가 후 정규직 전환형 인턴(62건) 공고를 제외하고 정규직 전환이 명시된 비경력직 채용공고는 수습(44건), 전환형 인턴(11건), 기타(7건)으로 전체 693건 중 62건에 불과했다. 8.94%의 확률이다. 경력직 공고의 경우 정규직을 명시한 채용공고는 20.2%로 비경력직보다는 높았다. 경력직 비정규직 채용은 25.7%, 정규직/비정규직 미제시 채용은 54.1%였다.

▲ 디자인=안혜나 기자.
경력이 없는 취업 준비생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자 준비생 김초롱(가명, 26)씨는 “경력직 공고와 인턴 공고가 굉장히 많다. 인턴을 아무리 해봤자 인턴 경력으로 경력직에 지원할 수는 없다”며 “우리는 어디서 경력을 쌓아 언론인이 되나”라며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력직의 경우 일반적으로 2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언론사입사 준비생 입장에선 ‘오르지 못할 경력 공고’와 ‘쓰고 버려질 인턴공고’만 게시 글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인턴 공고 195건 중 정규직 수습으로 전환된다고 명시된 공고는 11건으로 전체의 5.64%에 불과했다. 소정의 평가를 거친 후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는 62건으로 31.8%였다. 정규직 전환이 없는 인턴공고는 116건으로 59.5%를 차지했다. 절박한 청년들의 열정을 저비용으로 사용하는 ‘쓰고 버려질 인턴공고’가 넘친다는 비판이 나올만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인턴 전형의 경쟁률은 치열하다. 조선일보 사보에 따르면 올해 2개월 과정의 하계 인턴기자 20명을 선발하는데 685명이 지원했다. 경쟁률 34 대 1이다. 조선일보는 부서별 활동 평가를 거쳐 적합자가 있는 경우 면접을 거쳐 수습기자로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계획이다. 인턴기자에 합격해 수습기자로 전환되기 위해 20명이 두 달 동안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하윤정(가명, 26)씨는 “상처를 얻으며 활동하는 게 인턴”이라며 “최선을 다하는 와중에도 ‘언젠가 버려질 것’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게 된다”고 말했다. 언론계에선 인턴을 대상으로 한 ‘갑질’이나 성추행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입사에 지장이 생길까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취업준비생들이 인턴에 지원하는 이유에 대해 취업준비생 김평화씨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써서 입사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 서울의 한 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취업게시판을 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에서 자취생활 중인 취업준비생 이은지(가명, 29)씨는 “인턴도 돈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지씨는 “취업준비생 형편에 주거비와 통신비 등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 인턴제도는 취재비가 한 달 뒤에 들어오는 상황이다. 취재비 들어오기 전, 바로 그 한 달을 살기 어려운 취준생은 인턴을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하인혜(가명, 27)씨는 “언론사 시험을 보러갈 때마다 왕복 교통비만 10만원이 넘고 숙박비, 밥값을 모두 포함하면 매번 15만 원 이상 깨진다”고 말했다. 지방 학생들에겐 서울에서 시험을 치는 것도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1000건의 언론사 채용공고 중 85.4%(854건)는 시험장소와 근무지역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146건만이 영·호남 등 지역 채용공고였다.

월급 120만원 인턴부터
시급 7000원 아르바이트까지

불안정 노동의 지표가 될 만한 몇몇 채용공고 사례를 살펴보자. 연합뉴스 온라인홍보담당 채용공고는 SNS 관리 등을 맡기기 위해 인턴을 모집했는데 근무시간은 8시30분부터 18시까지이며 급여는 월 137만원(세전)이다. 그나마 연합뉴스는 4대보험이란 ‘복리후생’을 명시해놓았다. 한국일보 인턴기자 채용공고는 디지털 분야 취재 및 기획부서 콘텐츠 생산 업무를 맡기며 월 130만원의 급여를 제공한다고 나와 있다. 6개월간 일하면 수료 처리되고 한국일보 견습기자 지원 시 가산점 부여라는 ‘특전’이 제공된다.

조선일보 뉴지엄 인턴 채용공고는 뉴지엄 체험 프로그램 교육진행 및 조선일보 본사 견학 등 업무를 맡기는 인턴을 모집하며 월 급여 120만원을 명시했다. 특전은 인턴수료증이다. 매일경제 영상기자 채용공고는 정치 분야 취재 및 기사작성, 팀 운영 관련 서류 작성 및 관리업무를 맡기는 인턴을 모집하며 월 급여 120만원을 명시했다. 특전은 없다.

Mnet 편성전략팀 사무보조 채용공고는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 기사 리서치, 서류작업 등 업무를 맡기는 아르바이트를 뽑으며 14시부터 22시까지 8시간 근무조건에 급여는 약 100만원을 명시했다. 한국마사회 기관지는 아나운서 아르바이트 채용공고를 냈는데 일급 6만5000원에 기념일 상품권 지급이 명시됐다. 한국경제 ‘정규재 뉴스’ 콘텐츠관리 인턴기자 채용공고는 시급 7000원에 식사제공(부페식)이 근무조건이었다.

▲ 영화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 오늘날 채용공고는 불안정노동으로 가득차있다. 이는 언론사라고 예외가 아니다.
방송 3사 가운데 인턴을 가장 자주 채용한 곳은 SBS로 나타났다. KBS가 9건, MBC가 3건의 인턴 채용공고를 낼 때 SBS는 12건의 공고를 냈다. 12건의 인턴 채용공고 중 6건이 뉴미디어국 공고였다. 이를 두고 언론사 지망생들은 “월급 80만~100만원 주면서 에프터이팩 능통자, 디자인 능통자 등을 뽑아가는 스브스뉴스인가요”, “에프터이팩, 파이널컷, 다빈치 능통한 인재 구하려면 사원을 더 뽑아서 (정당한) 돈 주고 하시라”와 같은 비판성 댓글을 달았다. SBS는 조사 기간 중 정규직 채용 공고 5건이 모두 경력직 공고였다.

공영방송 KBS의 채용공고는 어땠을까. KBS는 조사기간 중 모두 87건의 채용공고를 냈다. 그 중 단 7건(8%)만이 정규직 채용 공고였으며, 나머지는 비정규직 69건(79.3%), 고용 형태 미제시 11건(12.6%)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채용공고 7건의 경우도 경력직 공고가 5건이었다. 비정규직 채용공고 69건 중에서는 파견직이 32건(46.4%), 계약직이 17건(24.6%)이었으며 인턴직 9건(13%), 프리랜서직 5건(7.2%), 아르바이트 5건(7.2%), 고용형태 미제시가 1건(1.4%)이었다.

KBS는 외주제작사를 통해 파견직 형태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KBS 파견직 채용공고 게시글에 한 입사 준비생은 댓글을 달고 “파견직=계약만료 시점과 함께 기계부품 버려지듯 버려지는 일회용”, “착취적 불완전 고용의 연속과정”이라고 비판했다. KBS는 FD, 온라인홍보, 촬영보조, 리서처 등을 채용해 방송준비 보조, 큐시트 송수신, 자료조사, SNS포스팅 등의 업무를 맡겼다.

채용공고 분석 결과 가장 불안한 직종은 아나운서였다. 10개월 간 아나운서 채용 공고는 40건이었다. 인턴직 3건, 경력직 14건, 수습 5건, 기타 18건이었다. 수습공고 5건 중 고용형태 미제시가 3건, 정규직 채용이 2건이었다. 그나마 정규직 채용 공고 2건 중 1건은 ‘경력자 우대’ 조항이 달려 있어서 온전한 수습채용공고라 보기 어려웠다. 기타로 분류된 18건은 계약직 9건, 프리랜서 3건, 아르바이트 1건, 조건 미제시 5건이었다.

아나운서 준비생 오해영(가명, 22)씨는 “눈 밖에 나면 다음 날이라도 잘리는 게 프리랜서 아나운서”라고 말했다. 이씨는 “채용공고가 너무 없어서 지방이나 케이블 방송사까지 모두 고려해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2015년 하반기 JTBC 신입 아나운서 공고 당시 조수애 아나운서는 18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탐사보도를 통해 정의를 구현하는 상상은 영화속에서나 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당장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언론사에 만연한 불안정 노동
근무조건도 모른 채 지원해야

채용공고를 접하는 언론사 입사 준비생들의 가장 큰 불만은 ‘노동조건 미기재’였다. 1000건의 채용공고 가운데 정규직/비정규직을 명시하지 않은 채용공고만 399건에 달했다. 구체적인 근무시간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는 735건이었고, 급여조건을 제시하지 않은 경우도 620건으로 높은 편이었다. 급여조건도, 구체적 근무시간도 모르지만 당장 경력을 쌓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원하게 되면 보통은 예상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 때문에 채용공고 게시판에는 ‘구체적인 근무시간을 알려 달라’, ‘급여를 알고 싶다’와 같은 댓글이 심심찮게 달린다. 채용공고 게시자들은 ‘회사 내규여서 알려줄 수 없다’는 댓글을 달았다. 입사준비생 김승현(22)씨는 “채용공고에 급여를 기재하지 않아서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돌아온 답변은 ‘일하게 되면 알려주겠다’였다”며 “급여도 모르면서 일하라는 건 언론사의 최대 갑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언론사 경영이 점점 악화되며 근무조건을 알 수 없는 채용공고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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