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2일, 나는 엄마가 되었다. 내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다. 전혀 새로운 삶을 사는 일, 그야말로 엄마는 아이와 함께 다시 태어난다. 엄마와 되기 전과 후의 삶은 비교조차 어렵다.

그러나 이내 심리적 변화, 신체적 변화에서 눈을 돌려 정말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엄마가 됨으로써 삶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조건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임신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사회였다. 권리를 지켜주기는커녕 임신한 시민을 차별하고 괴롭히고, 그들의 권리를 약탈한다.

한국 사회는 임신·출산·육아, 즉 누군가 엄마 또는 아빠로 다시 태어나는 일에 철저히 무관심하고 몰지각하다. 엄마․아빠의 구매력이 각광을 받으면서 관련 산업이 비대해 지는 대신 동안, 이 사회는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하는 일에 대해 모두들 신경을 끄고 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는 일마저 돈으로 해결된다는 생각이 우리 아이들을 태어난 순간부터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19대 국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호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엄마를 위한 나라도 없고, 엄마를 위한 정치도 없다.

▲ 정부의 맞춤형 보육 시행 첫 날인 7월 1일 서울 성동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엄마가 되기 전에,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상식조차 교육 받은 적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나는 초․중․고 시절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소위 성교육 시간에 어떻게 하면 임신을 피할 수 있는지만 ‘어설프게’ 배웠을 뿐, 학교는 부모가 되는 법을 단 한 번도 가르치지 않았다.

임신을 하면 몸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갓 태어난 아기들의 생활습성은 어떤지, 아이들은 언제부터 하루에 세 번 밥을 먹고 한 번 잠을 자고 한 번 똥을 싸는지, 어떻게 해야 아이와 엄마와 아빠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지 나는 서른아홉 해를 사는 동안 전혀 알지 못했다.

나 역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엄마들의 삶을 손톱만큼도 알지 못했다. 엄마가 되기 전 내가 엄마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이 정도면 한국의 남성들은 또 얼마나 무지할까.

임산부의 입장, 엄마 또는 아빠의 입장 그리고 아이의 입장을 알지 못하면 그들을 배려할 수 없다. 악의 없는 무지함 또는 지식 없는 호의는 당사자에게는 폭력적이고 위협적으로 다가 올 수도 있다. 엄마 또는 아빠 스스로가 이런 상황에 분노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엄마니까 참아야해’ ‘엄마는 참을 수 있어’라며 일상적인 고통을 스스로 감수하고, 쓸데없이 내재화하는 동안 주 양육자의 마음은 지치고 병들고, 아이는 물론 가족 모두가 불행해진다. 이건 몇 년이 흐르고 난 뒤 ‘그 때 참 고생했지’하고 웃으면서 회상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은 특히 엄마들은 차별과 고통에서 해방 될 권리가 있다. 역사적으로 엄마들이 이러한 고통을 감내해왔고 그래서 ‘엄마’라는 말에는 여전히 숭고함이 담겨있는지 몰라도 이제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숭고해 질 시간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한국 여성이 그리고 엄마가 해방되어야 할 시대가 왔다. 아니 이미 늦었다.

나는 19대 국회에서 4년 동안 환경노동위원회를 지켰다. 그리고 청년․여성․노년․외국인․청소년 노동자 등 노동약자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애썼다. 다른 어떤 국회의원보다 잘 알고 잘 한다고 내심 자부했는데, 내 자신이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노동자의 고통을 그동안 짐작도 상상도 못해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20대 국회에서 일하게 되면 ‘엄마를 위한 정치’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기회는 놓쳤다. 2015년 2월에 아이를 낳고 업무 복귀하자마자 20대 총선을 준비하느라 임기 중에는 ‘엄마를 위한 정치’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 여한이 너무 많이 남는다. 얼마 전 20대 국회가 저출산․고령화 대책 특위를 구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법이 있다. 19대 때 내가 대표발의 했던 두 건의 법안,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을 20대 국회가 재 발의하고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본격적으로 움직여 봐야겠다.

내가 두 법안을 발의하게 된 건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의 제안 덕분이었다. 최근 기사를 보면 2012년 7월 센터가 문을 연 이래 올해 6월 말까지 상담건수는 1만378건이고 이 중 8421건(81%)가 직장 내 고충이고, 6477건(전체 상담의 62%)은 출산 전후 휴가와 육아 휴직 등에 관한 상담이라고 한다. 센터는 수 천 건의 상담사례를 바탕으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법 개정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나 역시 같은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자연히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 지난 14일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서울직장맘센터가 진행하는 현장상담코너에서 한 여성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서울직장맘센터

두 법안의 골자는 단순하다. 사장님 허락 없이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현행법 상 엄마들에게는 90일의 출산휴가와 1년의 육아휴직이 보장되어있고 복귀 후 동일 업무 또는 동일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배치 받아야 하지만 과연 그 권리는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교사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75%인데 반해 민간기업 노동자는 34.5%에 그치고 있다.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가 분석한 원인은 다음과 같다. 출산휴가 또는 육아휴직을 신청했는데 사용자가 허가하지 않은 경우 사용자가 처벌 받는 것과 별개로 노동자가 임의로 휴가 또는 휴직을 개시하면 무단결근으로 간주되어 징계 사유가 되는 것이다. 즉 사실상 법적 권리가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제도의 허점이 있다.

법의 문제만은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경력단절여성을 위한 정책은 만들면서 경력단절을 막기 위한 행정조치는 전혀 하지 않는다. 노동부의 여성고용환경 근로감독 결과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미부여, 해고 등에 대한 사법처리 건수는 2014년 4건, 2015년 6건에 불과하다. 또한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진정 건수는 2013년 66건, 2014년 63건에 불과했다.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가 매년 수 천 건의 관련 상담을 하는 것에 비하면 노동부는 이 문제를 아예 작정하고 방치하는 듯하다.

민간기업 노동자의 34.5%가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지만 회사 측에서 유아휴직 신청서를 제출할 때 사직서도 같이 내라고 요구하는 불법적인 관행을 고려하면 복귀 후 동일 업무, 동일 임금이 보장된 진짜 육아휴직은 훨씬 적을 것이다. 공무원들은 공무원복무규정에 따라 3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고 사용률 또한 75%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작년에 노동부가 적발해서 처벌한 경우가 단 6건이라니, 노동부 공무원들의 직무유기는 더욱 괘씸해 보인다. 어떻게 공무원인 자신들의 모성권만 노골적으로 지킬 수가 있나?

직장 동료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축하해주는 것도 좋고 기저귀가 유아복을 선물해주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지만 그녀가 1년 3개월의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마치고 당당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 이것은 여러분의 친구, 언니, 누나, 여동생 그리고 아내와 딸이 겪는 일이다. 임신한 시민을 차별하고 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마저 빼앗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함께 고쳐나갔으면 좋겠다.

놀라운 것은 대다수의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일터에서 가차 없이 쫓겨나는 상황을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입시준비를 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노동자가 되는 약 십 여 년의 기간 동안 여성 자신은 이 모든 노력이 언젠가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시점에 비로소 폭력적인 경력단절이라는 조건을 마주한다. 산후 우울증 또는 육아 우울증의 원인을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고 하는데, 더 큰 원인은 (상대적) 박탈감이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 엄마와 아빠가 공평하게 육아를 분담하면 엄마는 지금처럼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곧 행복한 가정을 의미한다. 아빠의 법정 출산휴가는 5일이고 그 중에 3일만 유급휴일이다. 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설날도 추석도 아니고 무슨 연휴만도 못한 상황이다. 남성의 육아휴직은 더 드물다. 여성의 생리휴가처럼 실제로 휴직 또는 휴가를 다녀 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혼여성의 52.4%는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인식한다. 결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답한 비율 5.7%을 더하면 58%를 좀 넘는 수치다. 지난 5월 30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일본 닛케이신문과의 공동 조사 결과를 보면 20~40대 한국 여성 중 55.6%가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답변했고 결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답변은 5.5%였다. 합계 61.1%로 일본이 53.1%과 격차가 꽤 크다.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 보고서 중 발췌.

그리고 한국 여성이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일·가정 양립이 미비(27.2%)하다는 것이다. 2위는 고용․경제불안으로 25.8%를 차지한다. 일본의 경우는 저출산 원인 1위가 만혼․비혼 24.3%, 2위는 고용․경제불안 23.9%다. 반면 일․가정 양립 미비 때문이라는 답변은 12.3%에 그쳤다. 경제상황을 호전시키기는 힘들어도, 법으로 보장된 출산휴가․육아휴직의 권리만 지켜진다면 행복한 가정은 늘어날 것이다.

국회 저출산·고령화 대책 특위는 저출산 문제가 이제 국가적 재난이라고 한다. 새누리당은 둘째 자녀 세액공제를 현행 30만원에서 더 늘리라는 대책을 내놓았는데, 이게 돈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 5월 초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포털에 게재된 마티아스 돕케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와 파비안 킨더만 독일 본대 교수의 ‘세대와 성 프로그램’ 연구결과를 보면 간명하다. 서유럽 국가는 대부분 너그러운 출산·육아휴직 제도가 있고 양육비 보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무상으로 다닐 수 있는 공립학교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높은 국가군와 호전되지 않은 국가군이 있다.

양육비용을 정부가 보조하는데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는 ‘가정 내 양육 부담’이 일방(여성)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육아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보다 공공 어린이집 운영과 같이 여성의 양육부담을 경감하는 정책이 두 배 이상 출산율 상승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돈으로 출산율을 살 수 없고 사회 전반의 ‘양성평등’이 촉진돼야 궁극적으로 출산율이 제고된다는 뜻이다. 출산 수당은 자녀 1명당 2천만 원 수준인 오스트리아도 출산율이 호전되지 않은 국가에는 포함돼 있다. 새누리당 주장처럼 세액공제 늘려주는 것으로는 출산율 제고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 5월30일자 중앙일보 1면


2010년 인구총조사(통계청)에 따르면 15세 이상 기혼 여성 1천 522만 6822명 중 자녀가 없는 60만 7138명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에는 최소한 1천4백만 명의 엄마가 있다. (미혼모 통계가 없어서 통계청에 전화해봤더니 올해 인구 총조사에서 최초로 미혼모 통계를 조사하고 올해 9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성가족부에 전화해 봐도 미혼모 통계는 없었다.) 전체 국민 4천 858만 293명의 딱 30%가 ‘엄마’다.

그런데 엄마를 위한 정치가 없다. 전통적인 정치 무관심층, 정치 혐오 계층으로 주부 또는 엄마의 이름을 거명하기 전에 그 이유를 살펴 볼 일이다. 결과적으로 엄마들의 정치 세력화도 자기 조직화도 아직은 움직임이 없다. 광우병 사태나 세월호 참사 등 사회 현안이나 교육 운동, 탈핵 운동, 생협 운동 등 특정 운동 진영에서 엄마들의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엄마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당사자 조직이나 운동은 눈에 띄지 않는 현실이다.

내가 20대 국회에 있었다면 앞서 말한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등 엄마를 위한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겠지만 국회 밖에 있는 이상 엄마 당사자로서 엄마들의 정치 세력화를 도모해 보고자 하는 욕망이 서서히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엄마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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