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 퇴직 나인데도 여기 왔다. 같이 살아야지. 후배들이 당하는 거고 당장 내일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현대중공업에서 일한지 34년이 됐다는 조아무개씨(60)는 20일 오후 12시 사내 교육장을 박차고 나왔다. 파업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인력 구조조정 작업이 한창이다. 조씨가 일이 아니라 교육을 듣게 된 것도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조씨는 교육반 투입은 ‘분사(업무 외주화)’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에게 회사가 가하는 압박이라고 말했다.

울산 지역 노동자 1만8천여 명이 20일 오후 1시부터 일제히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 재벌개혁, ‘노동개악’ 저지 등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양대 노조 현대중공업 노동조합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공동파업은 23년 만에 처음 이뤄졌다.

▲ 민주노총 울산본부 산하 노조, 금속노조 울산지부 산하 지회, 현대중공업노동조합 등이 20일 오후 울산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울산지역 총파업 집회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들 중 1만여 명은 파업 돌입 즉시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총파업 집회를 열고 시가행진을 벌였다. 건설·플랜트·자동차·중공업 등의 노동자들이 주축이 됐고 서비스연맹 울산지부, 학교비정규직 울산지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울산지부 등의 노동조합이 연대의 뜻으로 함께 참여했다.

이날 가장 뜨거운 쟁점은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이었다. 지난해 1월 희망퇴직으로 1500여 명을 내보낸 현대중공업은 올해 5월에도 2000여 명에게 희망퇴직서를 받았다. 회사는 지난 주 노조에 희망퇴직 실시를 또다시 통보했고 특정 업무를 ‘비핵심업무’로 분류해 외주화를 추진 중이다.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 3500여 명 대부분은 작업복을 그대로 입은 채 머리에 ‘단결 투쟁’이라 적힌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참여했다. 이들은 “죽을지언정 구조조정 반대한다”, “분사, 아웃소싱 면담 절대 거부하십시오”, “면담 종용하는 당신들이 대상자들이다” 등이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무대에 오른 모든 발언자들도 ‘구조조정 저지’를 역설했다. 백형록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 지난 4월 총선이 끝난 직후, 박근혜 정부는 조선 산업은 이제 끝났다는 듯이 구조조정을 해 노동자들을 길가로 내놔야 한다는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보수 언론은 때를 같이해 여론을 호도하기 시작했다”면서 “최고경영진은 수십 년 째 보장되고 있는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임금삭감,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등을 막가파식으로 강행한다. 배후조정 세력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를 여기서 표출하자”고 발언했다.

▲ 현대중공업노조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 한 현대중공업노조 조합원이 등에 분사 저지, 구조조정 반대 구호가 적힌 카드를 붙인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이 7300%에 육박하는 등 지난 4월 조선업계의 위기론이 심각하게 대두됐으나 현대중공업은 이와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노조는 현대중공업 부채비율은 2016년 3월 기준 134%로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에 비해 가장 낮고 재무건전성은 가장 안정적이라 주장한다. 노조는 2017년까지 물량 수주가 확보된 상황에서 경영 전략을 짜지 않고 일부 조선업계의 위기론에 편승해 곧바로 인력 구조조정으로 돌입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 김종훈 국회의원도 총파업 집회에 참석해 “여길 오기 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주민이 ‘우리 남편이 분사 때문에 밤새 술 먹고 와서 잠도 못자고 흐느껴 울었다’면서 내 손을 놓지 못하고 울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서 “일감 좀 달라고 하는 얘기에 일감은 만들어주지 못하는 정부가 노동자 구속시키는 세상이 정당한 세상이냐”고 비판했다.

“10년 동안 흑자일 땐 임금동결하곤 하더니 힘들어지면 노동자 자를 궁리뿐이다.” 파업에 참여한 현대중공업 조합원 대다수의 반응이었다. 분사 대상에 포함된 박아무개 조합원은 “사측이 근무 중에도 찾아와 1:1 면담을 하려하고 집에도 찾아오고 전화·카톡으로도 연락해 분사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면서 “분사되면 하도급 구조가 만들어지고 임금도 지금의 절반으로 준다. 회사는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주는지만 생각하고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파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직원은 정규직원이었다. 선박 건조·용접을 맡고 있는 김아무개씨(35)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사내하청) 노조에도 가입하지 못한다. ‘블랙리스트’가 있어 가입하는 순간 협력업체의 일감이 끊기고 조합원은 다른 업체에 취직도 못한다”면서 “협력업체 사람들을 같이 보호해줘야 하는데 회사가 압박하며 들어와 잘 못하고 있다. 마음에 걸린다”고 지적했다.

공동 파업에 나선 현대자동차 및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는 ‘임단협 승리’를 내걸고 총파업 집회에 참여했다. 현대자동차는 △임금 동결 반대 △임금피크제 도입 반대 △신임금체계 도입 저지를 두고 사측과 대립하고 있다. 투표자 대비 85%의 동의를 얻어 파업을 가결시켰다.

▲ 민주노총 전략후보였던 김종훈 국회의원(왼쪽·울산 동구)과 윤종오 국회의원(울산 북구)이 20일 총파업 집회에 참석해 연대 발언을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건설플랜트노조의 정영현 사무국장은 “조합원 40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전국단위 경고 총파업인 동시에 건설플랜트 산별노조의 교섭 요구안과 건설업계의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철폐를 주장하기 위해서”라며 “지난 달 23일 집회로 2명이 구속되고 51명이 경찰 조사를 받았고 31명도 경찰 출석 명령을 받은 상태다. 노동운동을 향한 공안탄압도 저지할 것”이라 말했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사업장의 노조는 그동안 쟁의행위 때마다 보수언론으로부터 ‘귀족노조 생떼쓰기’, ‘명분 없는 파업’ 등의 비난을 받아왔다. 현대중공업의 한아무개씨는 “내가 34년차인데 연봉, 평일 잔업, 공휴일 특근, 아이들 학자금 등 다합하면 8000만 원 정도 받는다. 그런데 언론은 왜 임금만 뚝 떼서 그것만 얘기하며 귀족이라고 하나”고 답답함을 토로했고 35년차인 박아무개씨는 “사측이 임단협을 안 지키고 구조조정하려고 하는데, 노동권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하는 싸움이 명분이 없는 것이냐”고 말했다.

강수열 금속노조 울산 지부장은 연대사를 통해 “파업 목적은 다 틀리지만 우리는 하나가 됐다”며 “건설플랜트 노조의 공안탄압 노조파괴,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 대량해고, 금속노조의 재벌개혁과 정치개혁, 이 문제들은 단위별로 조직해서 돌파할 수 없다. 연대해서 투쟁으로 돌파해내겠다”고 발언했다.

한편 연대의 의미로 공동파업에 함께 한 노조들은 “구조조정은 울산 전체의 일”임을 강조했다. 김선진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울산 지부장은 “간부 중 이미 해고됐거나 구조조정에 직면한 가족이 있는 사람이 있다. 여성가장이 됐는데 학교 비정규직의 경우 가정을 위해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한다”면서 “남의 일이 아니다. 울산에서는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연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파업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현대중공업 대량해고 구조조정 정몽준 책임론 △총파업으로 구조조정 저지 및 생존권 사수 △쉬운 해고·임금피크제·평생 비정규직법 저지 △사내유보금 환수로 재벌 개혁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사드 배치 반대 △2016년 임금단체협상 승리 등을 결의했다.

이들은 집회 후 울산시청 인근 도로 2차선을 2시간가량 행진했다.

▲ 총파업 집회 후 집회 참가자들은 울산 시청 인근 도로를 행진했다. 사진=민주노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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