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반대시위 두고 ‘외부세력’론이 등장했다. 경찰이 외부세력 개입 여부를 수사한다고 하고 언론은 이를 받아쓴다. 하지만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어디에도 ‘외부세력이 집회에 참여하면 안 된다’거나 ‘가중처벌을 받는다’ 같은 조항은 없다. ‘외부세력’론에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이유다.

지난 15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드 배치 관련 설명회 자리를 갖기 위해 성주를 방문했다 성난 군민들에 의해 6시간 가로막히고 계란, 물병 세례를 받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경북지방경찰청에 전담 수사팀을 편성했다.

언론은 경찰의 주요 수사 사항으로 ‘외부세력 개입 여부’를 지목했다. 여러 언론은 19일 경북 성주의 시위에 외부세력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돼 경찰이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15일 경북 성주에서 실시된 사드설명회 당시 민중연합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 등 5명이 폭력집회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들의 진술을 통해 외부세력이 가담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도 보도됐다.

▲ 15일 성주를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로부터 계란 및 물병 세례를 받았다. ⓒ민중의소리


TV조선은 “경찰이 파악한 외부인은 20여 명. 성주 폭력사태 당시 영상을 분석한 결과, 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며 “해체된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주축이 된 민중연합당 박철우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은 군청 내부로 진입하려던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던 민중연합당 이상현씨도 채증 영상에 잡혔다. 2명 모두 통진당 출신 진보인사”라고 보도했다.

앞서 강신명 경찰청장도 외부세력의 개입 여부를 강조했다. 강 청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장에 있던 경찰관들로부터 성주군민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성주군민이 아니면 외부세력으로 보겠다. 성주군에 주민등록지를 두지 않은 다른 지역 참가자는 외부인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회 수사에 있어 외부세력 개입 여부가 왜 중요한 것일까. 집시법 어디에도 ‘외부세력’은 집회에 참가할 수 없다거나 ‘외부세력’이 폭력 행위를 했을 경우 가중처벌을 받는다는 조항은 없다. ‘외부세력’을 규정하기도 힘들뿐더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집회시위를 외부세력이라고 제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경찰도 단순히 외부세력이라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도 “외부세력이라는 표현보다는, 불법행위를 한 사람이 있다면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런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부세력이라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으며 집시법 위반 사항이 있거나 집회 중 폭력 행위를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집시법을 위반했거나 집회 중 폭력이 벌어졌다면 외부세력이든 성주 군민이든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찰과 일부 언론의 ‘외부세력론’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외부세력이 집회하면 처벌한다는 그 어떤 법도 없다. 예전에 노동쟁의시 제3자 개입 금지조항이 있었는데 악법 중의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 없어졌다”며 “사드는 성주군의 문제일 뿐이라고 문제를 축소하거나 성주군민들의 저항이 불순하고 불온한 세력의 충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폄하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경찰이 외부세력 개입 여부를 수사했다는 내용의 기사들.
실제 ‘외부세력’론은 성주 군민과 외부 세력을 분리시키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19일 국회 현안질의에서 “일부이겠지만 이런 세력들이 침투하면 성주 군민들의 본 뜻이 왜곡된다. 이런 세력을 엄중 처리해야한다”며 “선량한 성주 군민과 불순한 폭력선동세력은 분리해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총리는 “맞다”고 답했다.

과거에도 경찰과 언론은 법에도 없는 혐의를 앞세워 여론몰이를 한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지난해 11월18일 경찰은 이슬람 무장단체인 알 누스라를 추종한다는 혐의로 인도네시아인 A씨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언론에 뿌린 보도자료 제목은 “경찰청, 국제테러단체 ‘알 누스라’ 추종 혐의 인도네시아인 검거”였고 언론은 이 추종 혐의를 제목으로 뽑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추종한다는 이유로 잡혀갈 수 있다는 법은 대한민국에 없다. 실제로 A씨가 잡힌 이유는 사문서위조, 출입국관리 등 불법체류에 관련된 혐의와 총포, 도검 및 화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였다.

기자들이 테러단체 추종혐의 같은 게 있냐며 의문을 제기하자 경찰은 “현실적으로 국제 테러단체와 관련해 처벌법 조항이 미비하다. 그 부분에 있어서 여야 관계당국도 고민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고민을 한 단계 승화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당시 정부여당이 한국에도 테러방지법을 만들자는 주장을 밀어붙이던 상황이었는 점을 고려하면,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찰이 있지도 않은 ‘테러단체 추종’ 혐의를 만들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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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경찰과 언론은 있지도 않은 ‘외부세력 개입 혐의’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무리수의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19일 “경북 성주 군민을 중심으로 구성된 '성주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원회'에 윤금순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윤 전 의원을 외부세력과 성주 군민 간의 연결고리로 지목했다. 김진태 의원은 19일 현안질의에서 “통진당 비례 1번을 받은 윤모씨도 참여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기사에도 나오듯 윤 전 의원은 결혼 후 20년 간 성주에서 참외농사를 지었다.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가 통합진보당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외부세력’ 취급을 받은 셈이다.

경북경찰청이 외부세력으로 지목한 김찬수 대구평통사 대표는 4년 전부터 고향인 성주에 귀촌해 살기 시작했으며 사드 후보지로 거론됐던 칠곡 등에서 2년째 사드반대 활동을 했다. 경찰이 지목한 또 다른 외부세력, 변홍철 녹색당 대구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은 20대 총선에 사드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했다.

경찰 발표와 언론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도 제기되고 있다. 문화일보는 19일 수사당국의 말을 빌려 “박철우 민중연합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은 설명회 당시 성주군청 안으로 진입했음이 영상 판독으로 확인됐다. 이상현(35) 옛 통진당원도 성주군청 폭력사태 현장에서 총리 일행을 향해 야유를 보내는 등 주민 선동에 적극 개입한 모습이 채증됐다”고 보도했다.


▲ 19일자 문화일보 4면
문화일보는 또한 “손솔(여·22) 민중연합당 공동대표는 지난 15일 성주로 가서 국무총리 차량 이동을 일부 주민이 가로막는 장면 등 저지 현황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중연합당은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박철우, 이상현 두 사람은 황교안 총리 방문 당일 성주에 방문해서 하루 종일 SNS 계정에 상황에 대해 촬영하고 알렸을 뿐, 선동을 하거나 폭력집회에 가담하거나 군청 진입을 시도한 적조차 없다. 당시 생중계 촬영 영상을 보면 기사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민중연합당은 또한 “손솔 공동대표는 당일 성주에 방문하지 않았으며 당사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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