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KBS 보도개입에 침묵하는 간부들을 비판했다가 KBS 제주방송총국 발령을 받은 기자에 대해 KBS 간부들이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고 무사하길 바라느냐”는 내용의 성명을 내 논란이 일고 있다.

정지환 KBS 통합뉴스룸 국장(구 보도국장)을 포함한 보도본부 국·부장단 일동 31명은 18일 “외부 매체에 황당한 논리로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게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언제부턴가 외부 매체에 KBS를 깎아내리는 기고를 하는 것이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영웅적인 행태로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며 “KBS인으로서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 게 당연한 자세가 아니냐”고 비난했다. ‘죄를 졌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지난 15일 정연욱 KBS 기자(7년차)는 KBS 제주방송총국 발령을 받았다. 발단이 된 것은 13일자 기자협회보 특별 기고였다. 정 기자는 청와대의 보도개입 사태에 대한 KBS의 침묵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세력으로 ‘KBS 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모임’(이하 정상화모임)을 꼽았다.

▲ 기자협회보 13일자 정연욱 KBS 기자 기고글.

정상화모임은 지난 3월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직이다. 130여 명의 기자‧간부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KBS 보도본부 내에서 만만치 않은 규모다. 지난달 KBS 기자협회장 선거에 출마한 이 모임 소속 후보는 505표 가운데 179표(득표율 35.4%)를 받았다.

정상화모임 결성 당시 이들은 특이하게 가입자들의 명단을 공개하며 세를 과시했고, 사안마다 KBS 평기자들과 각을 세우고 있다.

이들은 KBS기자협회나 언론시민단체의 총선보도 감시 활동에 대해 “익명성에 숨어 특정 보도를 겨냥해 편향적인 비판을 가하고 이슈화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행태”, “동네축구 심판보다 못한 자세로 선거보도를 감시한다”고 비난해왔다. 

이번 ‘이정현 녹취록’에 대해서도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제”라면서 사안을 축소하고 “특정 정파에 치우친 세력의 주도 하에 녹취록이 공개됐다”고 주장했다. 정 기자를 비난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린 인사 대부분이 이 모임 소속이다.

보도본부 국·부장단 일동은 18일자 성명에서 “KBS 기자 스스로가 우리 뉴스를 폄훼하는 것은 ‘자신이 마시는 우물에 침을 뱉고 돌을 던지는 행위’”라며 “진보‧좌파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수별 성명을 활용해 KBS뉴스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특히, 최근 특정 정당이 KBS 인사와 관련해 논평까지 발표하는 등 정치권과 보조를 맞추는 조짐마저 나타나 더욱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정현 녹취록’으로 드러난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에 대해서도 “본질은 KBS 9시 뉴스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의 협조 요청에도 해경 관련 뉴스는 9시 뉴스 큐시트에서 빠지지 않았고 그대로 방송됐고 이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 보도국장이 답변해야 할 문제”라며 청와대 녹취록을 폭로했던 김시곤 전 보도국장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들은 이어 “언론사에는 각종 이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오기 마련”이라고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두둔한 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사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실이다. 만약 그 의견요청에 합리성이 있으면 반영하고, 비합리적이고 사리에 맞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고 사안을 축소했다. 

이어 “이 전 수석의 경우를 포함해 KBS 뉴스는 이런 원칙을 지켜왔다”며 “KBS 나름의 합리적 판단으로 오늘날 신뢰도 1위, 압도적 시청률 1위의 KBS 뉴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왼쪽)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이들은 또 ‘녹취 무보도’ 비판에 대해 “이 사건은 KBS가 관련 소송의 당사자”라며 “원고(김시곤 전 보도국장) 측이 녹취를 이용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데 대해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기 어렵고, 뉴스를 제작 보도해 회사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후 발생 기사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뉴스 처리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청와대와 길환영 KBS 사장이 보도와 인사에 개입했다고 폭로했다가 정직 4개월 징계를 받은 바 있다. 김 전 국장은 KBS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정현 녹취록을 증거자료로 제출했으며 이후 주변의 조언과 고심 끝에 자료공개를 결심했다.

이정현 녹취록 공개 이후 간부들과 평기자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20년 차 이상의 KBS 기자 52명은 후배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은 18일 “멀게는 군사정부 후반부터 KBS에 입사한 우리는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만큼 떳떳하지 않다”면서도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논란 아닌 자해’에 가까운 파행에 더 이상 침묵하기 힘들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들을 통제하려는 칼날이 조직 내부를 난도질하고 있다”며 “이런 터무니없는 인사는 조직 수뇌부의 생각과 질서에 ‘너희 기자들은 그저 순응하라’는 압력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보도국장을 필두로 한 간부들이 기자협회를 흔드는 행위도 조직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하겠지만 이는 위선이고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조직의 안정을 위해 부당인사를 조속히 철회하고 원상복귀 시키라”며 “보도본부장은 기자협회와 함께 즉각 기자 대토론회 등을 열어 조직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의견을 수렴해 실시하고 사장은 공영방송 KBS의 공정보도를 약속하고, 보도 통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라”고 촉구했다.

아래는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일동 31명의 18일자 성명 전문이다. 

본질은 KBS뉴스는 영향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기자협회의 기수별 성명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보도본부 국부장단은 그 동안 이 문제에 일일이 응답할 경우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것을 우려해 대응을 자제해왔지만 최근 그 도가 지나치고 있어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이정현 녹취록 논란’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그 본질은 KBS 9시 뉴스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의 협조 요청에도 불구하고 해경 관련 뉴스는 9시 뉴스 큐시트에서 빠지지 않았고 그대로 방송됐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뉴스라인 부분은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기자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뉴스라인은 당시 30분 뉴스로 1시간인 9시 뉴스와 다른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 보도국장이 답변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언론사에는 각종 이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오기 마련입니다. 국장, 부장, 팀장, 심지어 담당 기자들에게까지 “기사를 빼달라”, “억울하다”, “이런 부분이 왜곡 전달됐다”하는 등등의 요청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사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실입니다. 만약 그 의견요청에 합리성이 있으면 반영을 하고, 비합리적이고 사리에 맞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KBS 뉴스는 이런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이정현 전 수석 관련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런 KBS 나름의 합리적 판단이 있었기에 오늘날 신뢰도 1위, 압도적 시청률 1위의 KBS 뉴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정현 전 수석의 전화 녹취 사건을 두고 청와대 보도 개입에 왜 KBS가 침묵하고 있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은 KBS가 관련 소송의 당사자(징계무효 소송 피고)라는 점입니다. 원고측이 녹취를 이용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데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기가 어렵고, 뉴스를 제작 보도해 회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발생 기사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뉴스 처리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주노총의 리포트 제작 방해야 말로 개입이고 압력입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의 협조 전화 자체가 보도개입이라면 기수별 성명을 낸 기자들은 민주노총의 리포트 제작 방해 압력에 대해서는 왜 침묵했습니까?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시위 관련 리포트를 막기 위해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사회부장과 취재기자를 상대로 벌인 리포트 방해 전화는 통상적인 노조활동입니까?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사회부 기자들에게 리포트를 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협박성 전화를 한 것이야말로 압력, 개입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청와대 홍보수석의 전화 녹취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언론노조 간부가 당시 사회부를 상대로 리포트를 하지 말라며 협박한 전화 녹취가 공개된다면 그 때도 똑같이 말들을 할 겁니까? 중요한 것은 KBS 내 최대 압력단체인 언론노조의 협박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부 기자들이 KBS 기자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보도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짓밟힌 기자윤리, 취재윤리에 대해서는 왜 침묵합니까?

KBS 내에 진영논리가 판을 치면서 최근 우리 편이 하면 당연한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면 나쁜 짓이고 악이라는 해괴한 현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박주민 의원 보도 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회부 취재 기자의 고발 리포트에 대해 노조나 협회, 일부 편향적인 기자들이 일제히 나서 “리포트가 잘못됐다”, “취재원을 밝혀라” 하면서 뒷조사를 하고, 회사 영상시스템 맴을 이용해 취재원을 밝혀 외부에 제공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당사자인 의원실도 인정하는 사안에 대해, 설사 하자가 있다하더라도 노조나 협회는 우리 기자를 감싸고 보호해줘야 하는게 아닙니까? 그게 기자협회, 노조의 역할이 아닙니까? 왜 성명을 낸 기자들은 이런 기자윤리를 저버리는 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지, 무엇이 두려워서 침묵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부당인사입니까?

최근 있었던 인사에 대해 부당인사라며 취소해 달라는 성명까지 나왔습니다. 부당인사라구요? 무엇이 부당인사입니까? 외부 매체에 황당한 논리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취업규칙 위반 이런 말들은 하지 않겠습니다. 언제부턴가 외부 매체에 KBS를 깍아내리는 기고를 하는 것이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영웅적인 행태로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KBS인으로서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게 당연한 자세가 아닙니까? 지역국에 발령나면 그 것이 부당인사입니까? 그렇다면 지역에 있는 기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제라도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혀야 합니다.

KBS 뉴스는 결코 정파성을 띠어서는 안 됩니다.

KBS는 KBS입니다. 정파성을 분명히 하는 일부 신문방송과는 다릅니다. 우리 뉴스는 균형감을 갖고 중립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노조나 협회, 게시판의 글들은 진보좌파 매체의 논조가 지선의 가이드라인인 것처럼 KBS뉴스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동조해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는 기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습니다.

KBS 기자 스스로가 우리 뉴스를 폄훼하는 것은 ‘자신이 마시는 우물에 침을 뱉고 돌을 던지는 행위’입니다. 진보좌파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기수별 성명을 활용해 KBS뉴스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특정 정당이 KBS 인사와 관련해 논평까지 발표하는 등 정치권과 보조를 맞추는 조짐마저 나타나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KBS의 미래를 위해 냉철하게 사실관계를 이해하고 균형감 있게 현실을 봐야 합니다. 노조나 협회, 편향된 기자들의 압력과 공포에서 벗어나 KBS기자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2016. 7. 18.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일동

정지환, 박승규, 이현주, 장한식, 이강덕, 박영환, 강석훈, 김병길, 이재호, 김주영, 한재호, 이흥철, 이승환, 최재현, 이웅수, 박상범, 정인석, 박장범, 연규선, 곽우신, 오헌주, 유석조, 김성진, 이규종, 박찬근, 석종철, 이정록, 이유진, 선재희, 박종복,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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