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당 안팎의 논란을 줄이기 위해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지만 오히려 신중론을 고수함에 따라 논란이 커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더민주의 공식 입장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신중론’이다.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는 17일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사드 배치 관련 더민주의) 입장이 애매모호하다는 데 애매한 것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18일 성주 군민들과 면담 자리에서 “애매모호한 게 없다는 김종인 대표의 말이 무슨 뜻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신중론이다. 신중론은 입장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지도부가 여러 번 토론해서 신중론이라는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 당론 정하는 사안도 있고 당론 정하지 않는 사안도 있고 정치적 판단”이라며 김종인 대표의 신중론에 힘을 더했다.

신중론의 근거는 수권정당으로서 함부로 반대를 표명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12일 열린 의원 간담회에서 더민주의 일부 의원들은 “수권세력으로서 국가를 경영하는 문제, 집권이후의 문제 등도 염두에 두고 전술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국민들의 입장에서 활동해야 한다” “굳이 현 시점에서 당론으로 사드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정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다.

▲ 15일 성주를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로부터 계란 및 물병 세례를 받았다. ⓒ민중의소리

‘현실적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인식도 한 몫 한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인 고려도 해야 한다. 우리당이 반대한다고 철회될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라며 “퇴로도 준비해야한다.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서 국민의당이나 정의당과는 입장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김종인 대표도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 김 대표는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사드 재검토 및 공론화를 요구한 것에 대해 “재검토하라고 한다고 해서 그게 재검토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집권하기 위해 사드에 반대할 수 없다’는 논리로는 야권 지지층의 동의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여론을 의식한 무소신이 유능한 안보인지 되묻고 싶다. 산토끼 의식하다 집토끼 크게 잃어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권하기 위해 사드에 반대할 수 없다’는 논리는 중도층의 동의도 이끌어내기 어렵다. 소신 없이 눈치만 본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 ‘집권하기 위해 반대 못한다’는 논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장진영 국민의당 대변인은 18일 브리핑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사드배치결정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며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붙이며 그 ‘전략’의 의미가 내년도 대통령선거의 집권전략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국익차원의 사드문제를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도 비판에 가세했다. 김정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18일 브리핑에서 “김종인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사드에 대한 정파적 접근을 자제하고, 안보를 위한 순수한 접근을 해주길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입장을 정하라’는 비판에 신중론이라는 입장을 정했으나 새누리당, 국민의당 양 측으로부터 비판받는 상황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사드반대 전국대책회의 등 관련단체 면담에 참석한 노광희(오른쪽 첫번째) 성주군의회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신중론에 대한 당내 반발도 커지고 있다. 12일 의원간담회에 참가한 의원 다수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당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익표 더민주 의원은 19일 열린 더민주 사드대책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열도록 사드 배치를 철회하고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불만은 단순히 사드 배치 신중론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수권을 위해 정부 정책을 반대해야 하는데 신중해야 한다’는 논리, 즉 더민주의 노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민주의 한 의원은 “그런 논리라면 야당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정권 잡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사드 배치는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도 신중한 입장이고, 전경련도 반대한다. 이념문제가 아니라 국익문제인데 왜 야당이 스스로 이념문제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8월 27일로 예정된 전당대회가 다가오면서 이런 갈등이 본격화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현재 더민주 당권 주자인 추미애, 송영길 의원 모두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송영길 의원은 19일 YTN ‘신율의 출발새아침’ 인터뷰에서 “현 지도체제는 과도체제인 만큼, 8월 27일 전당대회로 정식 지도부가 구성되면 당론이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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