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이어지는 2016년과 2017년은 정치의 계절입니다. 정치뉴스가 가장 잘 팔리는 이 시기에 정치 기사는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됩니다. 미디어오늘이 정치혐오의 탈을 쓴 막장 드라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사실 속의 소설’ 정치기사 안에서 사실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치권이 안 싸우면 기사거리가 없다?

“요즘 당이 너무 조용해서 기사 쓸 게 별로 없다.” 요새 더불어민주당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농반진반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사실이다. 더민주에 김종인 대표 체제가 들어서고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얻은 이후 더민주 내부의 계파갈등이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기자들은 총선 직후 더민주가 전당대회를 빨리 열자는 ‘조기전대론’과 늦게 열자는 ‘전대연기론자’으로 갈려 갈등을 빚을 것이라 관측했다. 하지만 언론이 민망할 정도로 갈등은 보이지 않았다. 더민주가 만장일치로 8월 말 전당대회를 열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갈등이 다시 나올지 주목했으나 전대가 송영길, 추미애 의원 간의 밋밋한 양자 구도로 치러지면서 기자들이 또 다시 할 일이 없어졌다.

기자가 한 더민주 의원에게 물었다. “요새 더민주가 주목을 너무 못 받는 것 같지 않아요?” 이 물음에 의원은 “그런 주목은 안 받는 게 낫다”며 “기사가 많이 실리면 주목도가 높은 것 같지만 결국 안 좋은 인상을 주는 기사가 많으니까”라고 답했다.   

최근 언론이 서영교 의원의 가족 채용으로 촉발된 국회의원들의 갑질 논란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유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계파갈등이 잠잠한 더민주 상황’을 꼽는 시선이 많다. 더민주의 한 보좌관은 “기사거리는 맞지만 서영교 의원 사건이 연일 이렇게 이슈가 될 만한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계파갈등이 여전한 새누리당, 리베이트 의혹으로 시끄러운 국민의당과 달리 더민주는 이슈가 별로 없다보니 더 부각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하는 등 여러 논란으로 위기에 놓인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아이러니한 일이다. 언론은 정치권의 갈등과 싸움을 부각시키며 늘 ‘싸우지 말라’고 한다. 선거 때마다 “제발 싸우지 말고 일 좀 하라”는 유권자의 말을 전하는 것은 언론의 가장 흔한 메시지 중 하나다. 계파갈등이 발생하면 이를 비판하고, 여야가 협치하고 소통하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정작 정치권이 조용하면 기사거리가 없다. 그래서 갈등 요소를 찾아다닌다.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은 이러한 현상을 ‘전시 저널리즘’이라 표현한다. 안수찬 편집장은 저서 ‘뉴스가 지겨운 기자’에서 “일상의 시공간에서 대중은 뉴스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론의 중력이 가닿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소소한 고민에 포박당하여 지낸다”며 “이에 대한 한국 언론의 대응방식은 ‘위기 고조’ 전략이었다. 전쟁에 버금가는 위기와 갈등이 생겼으므로 이 뉴스를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밝혔다.

안수찬 편집장은 “대중이 뉴스에 대한 욕구를 느끼도록 지속적으로 위기, 재난, 갈등의 프레임으로 자극해 긴장시키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작은 전쟁들’을 발굴해 긴박하게 보도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이런 보도 방식은 양날의 칼”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전시저널리즘은 무관심한 대중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의제를 촉발시키지만 반복되면 대중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 안 편집장은 “그 한복판에 정치 보도가 있다”고 말한다.

‘전시저널리즘’ 실현하는 TV조선의 ‘엄성섭 뉴스’

이런 전시 저널리즘을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매체가 바로 종합편성채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콘텐츠는 TV조선의 ‘엄성섭 뉴스’다. TV조선의 엄성섭 앵커는 목소리만 들으면 전시상황 뉴스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자랑한다.

북한 뉴스와 정치 관련(특히 야당) 뉴스를 전할 때마다 붉은 색의 눈에 확 띠는 자막이 아래를 장식하고, 그 자막을 토대로 웅변을 펼치는 듯한 엄성섭 앵커의 ‘톤 업’ 뉴스 진행이 이어진다. 마치 조선중앙TV를 보는 것 같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면 엄성섭 앵커의 뉴스인 경우가 많았다.

식당 주인에게 리모콘을 달라고 해서 볼륨을 줄인다. “저 뉴스 안 시끄러우세요?”라고 물으면 종종 “귀에 쏙쏙 들어와서 좋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엄성섭 앵커의 톤 업 뉴스가 중장년층을 TV조선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엄 앵커의 별명 중 하나는 ‘엄노예’였다. 2013년에는 오후 1시, 4시, 7시 뉴스의 앵커를 모두 맡았으며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 종일 등장한 적도 있다.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 반까지 방송을 진행하고 하루에 뉴스를 여섯 번 들어간 적도 있다. 주목할 점은 뉴스특보가 등장할 때마다 엄 앵커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긴급한 상황을 전할 때, 위기를 전할 때 제격인 앵커라는 의미다.

엄성섭 앵커는 2014년 11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제가 특보를 많이 들어갔다. 작년에 북한의 위협이 많아서 원고도 없이 올라가 속보 석 줄 가지고 방송 한 적도 있다”며 “프롬프트 없이 하다 보니 저도 정제가 안 되고 목소리 톤도 높아졌고 샤우팅이 나왔다. 이틀에 한 번씩 특보가 있던 때도 있었다. 당혹스럽다보니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TV조선 프로그램 '속사정'의 한 장면. 엄성섭 기자의 '톤 업 뉴스'를 풍자한 모습.

종편에 유독 ‘생중계’가 많다는 점도 종편의 ‘전시저널리즘’적인 성격을 뒷받침한다. 보통 방송사들은 매우 급박한 위기상황이거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중요한 순간에 생중계를 한다. 하지만 종편에서는 생중계가 일상이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는 장면도 정치권의 각종 기자회견 및 입장 발표, 회견도 모두 생중계다. 종편이 “이 정치기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증명하는 방법은 생중계나 ‘톤 업 뉴스’ 등 기사의 내용이 아닌 형식이다. 

정치의 무능으로 이어지는 정치와 언론의 공존

이런 정치 기사는 정치를 얼마나 보여줄까? 고려말 조선 초기를 다룬 SBS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는 주인공 정도전(김명민 역)이 백성들 앞에서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정도전은 “정치란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단순한 것이다. 정치란 나눔이요 분배”라며 “정치의 문제란 결국 누구에게 거둬서 누구에게 주는가, 누구에게 빼앗아 누구를 채워 주는가”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정치’ 이슈가 있다. 예컨대 4대강은 정치 이슈다. 22조를 쏟아 누구의 배를 채웠을까? 무상급식, 복지 모두 정치 이슈다. 법인세, 담배세 등 세금도 모두 정치 이슈다. 수많은 법과 정책은 결국 ‘누구에게 빼앗아 누구에게 줄지’ 결정하는 룰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치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연관된 것이다.

한국 언론은, 그리고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정치기사는 이 수많은 정치 이슈를 다루는 대신 이슈를 둘러싼 정치적 싸움을 전한다. 안수찬 편집장은 “(한국 언론은) 사회의 저변에 천착해 여러 문제를 발굴하여 정치 영역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며 “정치가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돕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를 정파 간 쟁투의 영역으로 좁혀버린다”고 강조했다. 정치 기사는 수많은 이슈를 무엇보다 많이 또 세게 다루지만, 무엇보다 금방 잊게 만든다.

우리는 정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로 들어오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정쟁’으로 끝나버린다. 진실을 밝히라고 만들어놓은 수많은 제도, 청문회와 국정조사 등은 정치적 공방으로 끝나기 일쑤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청문회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자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하던 청문회를 하던 언제 속 시원하게 원인 밝히는 걸 본 사례가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반박했다.

권 의원은 또한 “여기는 아무것도 못한다. 국정조사라는 건 정치공방”이라며 “여태까지 국정조사 한 거 보라. 진상 밝힌 것 있나.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정치의 무능을 인정한 셈이지만 맞는 말이다. 국정원 댓글사건도 자원외교도 세월호사건도 국회에 들어온 이후 여야가 대립하는 싸움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전시 저널리즘에 익숙해진 뉴스 소비자들은 정치 기사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이러한 정치의 무능은 정치와 언론의 공존에서 기인한다. 언론은 정치가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있음을 발견하는 대신 정치권의 권력 쟁투에만 집중한다. 기자들이 다 같이 모여 있던 더불어민주당 기자회견장, 한 기자가 다른 기자에게 농담을 던졌다. “또 야권연대 만능론에 입각한 기사를 쓰셨대?” 기자가 답한다. “아니, 그런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오니까.” 농담이지만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다. 언론은 늘 갈등과 권력 쟁투를 보도하며 ‘그런 현상이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언론을 너무 잘 알고,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다. 카메라 앞에서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특위를 만들고 TF를 만들어 공무원들을 불러다 놓고 호통을 친다. 그 때 뿐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능한 언론에 많이 노출돼야 인지도를 쌓고 정치적 성과로 남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슈에 천착해 진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에서 “해바라기가 해를 쫓듯 정치인은 카메라를 쫓는다. 거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카메라에 찍히면 볼 일 다 봤다는 듯 하는 것, 카메라가 없으면 가지 않는 것 그게 문제”라며 “사실 이건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 도덕성, 직업윤리에 기댈 문제는 아니다. 일을 이렇게 만든 건 절반은 언론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 얄팍함이 서로 점점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정치에 대한 협소한 시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단어가 ‘외부세력’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정책과 법안은 결국 룰을 결정하는 것이기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논란이 되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 사드(THAAD) 배치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 동북아 및 한반도 군비경쟁, 북중러 VS 한미일 구도의 강화 등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다.

하지만 몇몇 언론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군민들의 시위를 보도하며 외부세력을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18일 “광우병 사태·강정마을 시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좌파 진영 단체들은 이번에도 반(反)정부 시위 등을 개최하며 개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반대시위에) 헌재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으로 불리는 민중연합당 조직원들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근거는 없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모두 이재복 투쟁위 공동위원장의 말을 빌려 “폭력사태엔 외부인이 개입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재복 위원장은 이 발언이 문제가 돼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인물이다.

▲ MBC, TV조선, YTN 보도화면 갈무리.

언론이 보도하자 정치권이 받았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8일 “외부세력 개입으로 일부 폭력이 있었다고 한다. 직업적 전문 시위꾼들의 폭력행위는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이 시위엔 일부 시위꾼들과 불순 세력이 가담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며 “선동 발언한 사람들 중 옛 통합진보당의 잔존 세력이 아닌가 의심이 들고 학생들이 약 8백 여 명이나 있었다는데 동원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충분히 든다”고 말했다.

언론은 다시 정치권의 목소리를 전하며 ‘외부세력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확대 재생산한다. 이런 외부세력론에 따르면 성주군민이 아니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한반도 전체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줄 사안이기에 대한민국 시민은 누구나 사드 배치에 반대할 권리를 지닌 당사자다. 정치권과 언론의 외부세력론은 의도와 관계없이 사드 배치라는 정치 이슈를 ‘성주군민들이 반발하는’ 지역이기주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뉴스 소비자들은 반복적으로 부각되는 사드 배치 반대시위의 폭력성과 부각되는 갈등에 지쳐 고개를 돌릴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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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상력은 그만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와 언론의, 공존이라는 이름의 공멸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정치기사 바로보기’ 시리즈가 이러한 공존이 사실은 공멸이라는 문제제기를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기자들은 정치 기사에 끊임없이 양념을 친다. 갈등은 가장 중요한 양념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양념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과 같다. 자극적인 전시상황은 잠시 눈길을 끌 수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관심도가 매우 높은 ‘충성층’만 남고 뉴스 소비자는 점점 줄어든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 뉴스에 질린 사람들은 정치 뉴스가 보여주는 정치를 환멸하고 혐오하게 된다. 각 정당에는 충성층의 목소리만 남고 대부분의 유권자는 여도 야도 싫은 정치 혐오자로 남는다.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 사람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가끔 보면 기자들 참 머리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날은 박 대통령이 이원종 신임 비서실장을 임명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언론은 이원종 비서실장 임명 소식을 전하며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끌어들였다. “박 대통령이 ‘충청 대망론’에 힘을 실었다는 해석이 많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통령 후보로 영입하려는 사전 포석 아니냐”는 식이다.  근거는 ‘정치권의 후문’이다.

더민주 관계자는 “어떻게 이원종에서 충청을 읽고 그걸 반기문까지 이어서 해석할까. 상상력이 참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겉은 칭찬이었지만 속뜻은 기자들이 소설을 잘 쓴다는 비판이었다.

이런 정치 기사를 보면 기자가 공개할 수 없는 대단한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언론이 보도하고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면 그게 곧 정치권의 ‘후문’ ‘해석’ ‘사전포석’이 되는 것이다. 팩트 없는 상상력은 그냥 소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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