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기고를 통해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 사태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간부들을 비판했던 KBS 기자가 느닷없이 제주도로 발령을 받아 ‘보복성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연욱 KBS 기자는 지난 13일 ‘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이라는 제하의 특별기고를 게재했다. KBS 보도국 국‧부장급 간부들이 주축인 ‘KBS기자협회의 정상화를 추진하는 모임’(이하 정상화모임)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언론 기고 이후 이틀이 지난 15일, 정 기자는 18일자 KBS 제주총국 인사발령을 받았다. 이에 언론노조 KBS본부 등 내부에서는 ‘보복성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기자협회보 13일자 정연욱 KBS 기자 기고글.
KBS 경인방송센터 평기자 9명은 이날 성명을 내어 “단칼에 당사자에게는 어떤 언질도 없이 수백 킬로미터를 떠나야 하는 보복 인사가 이뤄졌다”며 “우리가 모두 알고도 모르는 척 이야기하지 않고 있던 그 이야기를, 기자들의 단체인 기자협회의 협회보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이런 식의 보복 인사를 당하는 게 맞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정 기자는 비판한 정상화모임은 지난 3월에 결성됐다. 정지환 KBS 보도국장, 최재현 정치외교부장 등 핵심 국‧부장급 이상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고 그 규모도 130여명 수준에 달한다.

이들은 ‘KBS기자협회’에 대해 ““민주노총 산하 특정노조의 2중대”, “레토릭도 과격하고 정치적이고 편향적”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으며 KBS 기자들이 기수 성명을 통해 청와대 보도개입에 대한 KBS의 무(無)보도를 비판하자 지난 14일 “더 이상 변죽만 울리듯 선동하지 말라. 당신들에게 동조해야만 정의의 편이라는 식의 프레임도 이젠 지겹다. 이렇게 말하면 또 청와대의 보도개입에 침묵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할 건가”라고 폄하했다.

간부들이 KBS 평기자의 전유물이었던 ‘성명’을 통해 평기자나 KBS 기자협회, 또는 KBS 보도를 감시하는 언론시민단체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 이정현 녹취록 파문 때처럼 ‘보도통제’라는 본질을 가린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정 기자는 이들에 대해 “이 목적을 알 수 없는 (정상화모임의) 실명 공개 결성문이 게시된 뒤로 보도국 내부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뚜렷하고 명백한 경계선이 그어졌다”며 “정상화와 정상화가 아닌 기자, 혹은 정상과 비정상 기자. 전례 없이 피아를 갈라놓은 경계선이 생긴 뒤로 살가운 소통은 아예 사라졌다”고 밝혔다.

정 기자는 “KBS 특유의 가족적인 유대감으로 얽혀있던 조직이 순식간에 불신으로 얼어붙었다”며 “간부들이 포함된 ‘정상화’가 비가시적이고도 일상적인 감시를 하고 있다는 공포,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통제되는 일종의 ‘판옵티콘’이 공영방송의 심장부에서 구현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시곤 전 국장과 이정현 전 수석의 통화에 관한 내용을 보도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이 ‘정상화’에 대한 반대선언으로 해석되는 부당한 맥락이 성립됐다”며 “저널리즘의 상식에 입각한 문제제기 조차 정치적인 진영 논리에 희생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장본인은 바로 지금 KBS 보도국을 이끌고 있는 간부들, 최초로 경계선을 그은 기자들”이라고 비판했다.

▲ 김진수 KBS 해설위원의 11일자 KBS뉴스해설. (사진=KBS)
한편,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해 중국·러시아의 반발 소식을 KBS 뉴스해설로 논평했던 김진수 KBS 해설위원은 방송문화연구소로 18일자 발령을 받았다.

앞서 15일 오전 언론노조 KBS본부는 고대영 사장이 김 위원의 논평과 관련해 “KBS 뉴스의 방향과 맞지 않다”는 등의 지적을 했고 이후 수원 연수원으로의 인사 조치 가능성이 해설위원에 통보됐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KBS 측은 15일 오후 “고 사장이 특정 해설위원을 언급하거나 논평한 사실은 전혀 없다”며 “해설위원들에 대한 인사는 인사위에 따른 조치일 뿐이다. 사장의 문제제기가 원인이 됐다는 주장은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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