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들과 삼성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9일과 10일 1박2일 일정으로 강릉에 다녀왔다. ‘인권재단 사람’에서 계속 싸우려면 쉬어야 한다며 인권활동가 ‘쉼’ 프로그램 일환으로 재충전을 제안한 결과였다. 그런데 강릉에 다녀온 뒤 갑자기 반올림을 비난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300일을 앞둔 반올림의 농성이 ‘절박함 없는 대리농성’으로 변질됐다며 투쟁의 진정성에 흠집을 내는 악의적 기사였다.

문화일보는 12일자에서 반올림 활동가들이 며칠에 한 번씩 농성장을 찾고 있다고 전한 뒤 “직업병 문제의 절박함을 외치면서도 농성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피서를 다녀왔다”며 “전문 시위꾼이라는 점을 자인한 꼴”이라고 보도했다. 서울경제는 “매일 노숙농성 날짜를 세고 외부에 알리면서 정작 일정 기간은 쉬고 심지어 남에게 대리 농성을 맡긴 것은 시민운동단체의 행동으로 부적절하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뉴스 또한 “바닷가로 1박2일 피서를 다녀와 뒷말을 낳고 있다”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직업병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시작된 농성이 절박함은 사라지고 피서를 갈 정도로 일상이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 반올림이 '대리 노숙농성'을 시켜놓고 피서에 다녀왔다는 문화일보, 서울경제, 파이낸셜뉴스 보도화면 갈무리. ⓒ민언련
이 같은 보도를 두고 반올림 상임활동가 임자운 변호사는 15일 통화에서 “연대라는 말의 뜻을 기자들이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임 변호사는 “이 싸움은 황상기 아버님 혼자서 시작해 반올림 활동가들이 결합했다. 반올림 운동은 직업병 피해 가족들 곁에 전문가들의 연대가 이어지며 사회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라며 “삼성은 직업병 피해자들 주변에 누가 있는 것을 싫어하는데 최근 언론의 공격은 이 문제가 오직 발병자들만의 문제라는 삼성의 입장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반올림을 응원하는 연대투쟁을 ‘대리농성’으로 보도한 일련의 프레임은 삼성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5일 논평을 내고 ‘잘못된 수단으로 목표를 잃어버린 반올림’(데일리안), ‘대리인 세우고 바다로 놀러간 반올림 논란’(뉴데일리)와 같은 기사들을 가리키며 “삼성그룹이 청부한 기사라고 의심받을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300일이 다 되어가는 반올림 집회에서 주최 측 출석률을 따지는 것은 치졸하며 뜬금없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이들이 비아냥거리며 보도한 이른바 대리노숙농성은 남몰래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난 280여 일 간 진행되어 왔던 공개적 연대활동”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반올림은 자발적 연대발언 프로그램인 ‘이어 말하기’를 지속하고 있으며, 농성연대도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삼성은 경호업체 에스원 직원들을 통해 매일 농성장을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문화일보 등의 악의적 보도를 두고 삼성의 감시와 의도에 따라 등장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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